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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의 의학소설(11)]소산, 진여스님 찾아 '무상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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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의 의학소설(11)]소산, 진여스님 찾아 '무상사'로

[정경대의 의학소설(11)] 생명의 열쇠


3. 볼 수 없는 존재


소산, 진여스님 찾아 '무상사'로


[글로벌이코노믹=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 소산은 삼우제를 지낸 그날 오후에 집안일을 끝내기 무섭게 진여 스님을 만나고자 집을 나섰다. 그는 무엇을 하고자 마음을 정하면 한시라도 지체하지 못하는 성미였다. 뛰다시피 급한 걸음으로 제법 높은 약초밭 뒷산 고갯길을 빗줄기 같은 땀을 줄줄 쏟아내며 올랐다. 그리고 산마루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추고는 양쪽으로 흘러내린 긴 산자락 그 안쪽 중턱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암자를 바라보았다. 암자는 큰 바위 절벽 아래 숲에 싸여 있어서 푸른 기와지붕만 아득히 보였다.

“무상사라……. 항상 빈 절집이란 뜻이니 스님의 마음 또한 그럴 테지.”

오래 전에 보았던 진여 스님의 누더기 승복이 생각나 무심코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텅 비었다면 지혜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스님을 더 급히 만나고 싶어 늦가을 선들바람에도 아직 덜 마른 땀이 멎지도 않았는데 산 아랫길을 뜀질 걸음으로 내려갔다.

암자로 오르는 길은 여간 가파르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직도 너부러진 돌이 그대로여서 20년 전의 거친 길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정든 옛길처럼 느낌이 새삼스러워서 기분이 상쾌하고 걸음도 힘들지 않았다.

문이 없는 뜰을 들어서자 암자가 산중보다도 더 적막했다. 산중이기는 해도 사람이 사는 집이고 보면 기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버려진 고택인양 쥐 죽은 듯이 고요해서 혹시 스님이 암자를 비웠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살펴보니 진여 스님은 방이 두어 칸 정도인 작은 요사채 툇마루에 혼자 앉아 앞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늦가을 해질 무렵 산중이라 제법 쌀쌀하기는 하지만 스님이 앉은 자리에는 작은 햇살이 남아 있어서 정겹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소산이 다가가며 합장해 인사하자 진여 스님이 힐긋 쳐다보며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는 아까처럼 단풍이 곱게 물든 저만큼 나가앉은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산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등산객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님, 저를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저의 선친의 함자가 소자 범자 수자이고 저의 이름은 스님께서 지어주신 산이라 합니다. 몰라보시겠습니까?”

소산이 댓돌 위로 올라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들은 체도 않던 스님이 소범수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돌려 이윽히 쳐다보았다.

“자네가 범수 아들 소란 말이지!”

진여 스님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만연했다.

“예, 제가 소입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암, 알고말고 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허! 이렇게 장성했군! 그러고 보니 아버지를 쑥 빼닮았네 그려……. 자, 자 어서 올라오게.” “예, 스님!”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hs성북한의원 학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