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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피리, 부인은 소리 국악 대중화에 '찰떡'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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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피리, 부인은 소리 국악 대중화에 '찰떡' 궁합

[스페셜] 부부 국악인 서도소리 유지숙 명창과 최경만 부여충남국악단 감독

느리고 한스러운 '서도소리' 남북한 외면 겨우 명맥 유지

"서양음악이 깔끔하다면 우리음악은 텁텁…그게 매력이죠"

유럽에선 '한국의 소리' 제대로 평가…"이젠 잘난체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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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국악인최경만(피리)부여충남국악단감독과유지숙(소리)명창.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과 최경만 부여충남국악단 음악감독은 국악계의 대표적인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유 명창은 소리로, 최 감독은 피리로 유명한 국악계의 스타로서 서양음악에 길들여져 점점 우리음악과 멀어져가는 대중들에게 국악의 깊은 맛을 알려주기 위해 토종 뮤지컬을 만드는 등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국립국악원 예악당 앞에 선 이 부부 국악인은 봄날에 핀 꽃마저 시샘할 정도로 다정한 부부애를 과시했다. 함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유지숙 명창이 국악 대중화를 위해 대형사고(?)를 치고 나면 최경만 감독이 든든하게 뒤에서 수습한다며 서로 흉(?)을 보다가도 계속 이 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음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서로 뒤질세라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국악계의 대스타 유지숙 명창과 최경만 감독을 만났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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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유지숙명창
-서도소리란 무엇입니까?

“서도(西道)는 한반도 서북쪽인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말합니다. 서도소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소리로 콧소리로 얕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와 큰소리로 길게 뽑다가 갑자기 콧소리로 변해 조용히 떠는 소리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요. 평안도 민요 ‘수심가’, 황해도 민요 ‘몽금포타령’, 잡가 ‘공명가’ 등이 서도소리의 대표적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도소리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크게 부흥했으며 1969년 9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됐다. 명창 김밀화주에 이어 장학선 김정연 오복녀 이은관 김광숙 이춘목 유지숙 등이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관서지방 사람에게 벼슬을 주지 않자 그 서러움이 번져 소리가 되었어요. 노랫가락이 다소 구성지고 서글프며 남성적인 게 특징입니다. 특히 북방민족의 침략을 받으며 이겨낸 이 지방 민초들의 한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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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는 몇 곡 남아 있는지요?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00여 곡이 전해지고 있어요. 엮음 수심가, 물레타령, 간장타령, 금드렁타령,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배치기, 봉죽타령, 연평도난봉가, 야월선유가, 금다래타령, 호무가, 배꽃타령, 굼베타령, 풍구타령, 함경도애원성, 빠른난봉가, 사설난봉가, 개성산염불, 느리기타령, 방아찧기, 긴아리, 자진아리, 산염불, 난봉가, 잡가 공명가, 초한가, 영변가, 배따라기 등이 그나마 알려진 곡들입니다. 대중들에게는 주색이나 잡기 따위의 허랑방탕한 짓을 일컫는 ‘난봉가’가 해학적인 탓에 쉽게 기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는 서도소리가 명맥을 잇기 힘든 형편이지만, 서도소리가 발생한 황해도와 평안도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북한 민족음악연구소에서 모든 서도소리를 모아 정리는 해놓았어요. 그러나 북한은 맑고 곱고 높은 주체발성법으로 소리를 하기 때문에 서도소리의 원형과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수심가’에서 보듯이 서도소리는 수심에 차거나 서러움이 묻어나는데, 북한 민요는 빠르고 경쾌하고 혁명적으로 바뀌었어요. 지난 1995년 북한에 갔을 때 북측 인사들이 저에게 ‘당시 못 먹고 못 입어서 하던 소리를 김일성 주석 지도아래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어려운 시절 노래를 부르느냐, 선생도 가사를 바꾸어 혁명적으로 부르라’고 얘기하더군요. 서도소리는 대부분 끝부분에 ‘어이할까요?’로 마무리 되는데, 지금 북한 민요는 어둡기는커녕 숨을 못 쉴 정도로 몰아치는 게 특징입니다. 북한에서는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느리고 한탄조인 서도소리가 설 자리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남한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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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와 경기민요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경기민요는 밝고 경쾌하여 대중들에게 친숙한 반면에, 서도소리는 느리고 슬퍼서 대중들에게 낯설어요. 다시 말해 경기민요는 시작음을 들었다 놓기 때문에 소리를 들으면 산뜻한 느낌을 받지만 서도소리는 아래서 위로 끌어올리는 탓에 음악 자체가 튼실하지만 무겁습니다. 그러나 서도소리는 음악적 깊이와 선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음악입니다. 물론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리가 ‘이~~이~~’하며 떨면서 나오는 게 특징이고요. 국악은 ‘떠는 소리’인 요성(搖聲)이 없어서는 안 만들어지는데, 그 요성이 가장 잘 발달된 음악이 서도소리라고 할 수 있지요.”

-서도소리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가장 원초적인 음을 쓴다는 점입니다. 장난을 하거나 목과 입안에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배에서부터 끌어올려 떠는 소리가 매력적이에요. 꿋꿋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점점 하면서 좋아지는 매력은 음을 튼실하게 밀어내어 구성짐을 안아가는 음악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금방 좋아지기는 어렵지만 서도소리를 알게 되면 정말 좋은 음악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저는 서도소리의 이 같은 점을 알고 소리를 시작했어요. 음악인으로서의 최고의 자부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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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만피리명인
-최 감독은 피리를 언제부터 접하셨는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좋아서 피리를 잡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놀았어요. 워낙 피리를 좋아하니까 부모님께서 국악예술학교에 보내주셨고, 졸업 후 서라벌예대에서 유일하게 받아줘 가게 됐지요. 국악예술고에 진학하기 전 우리 민요 30여 곡을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물건 하나 나왔다’며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어요. ‘피리 시나위’의 대가 지영희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인 연주 수업을 받았어요. 훗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낸 지영희 선생은 1964년 당시 앞으로는 각 대학교에 국악과가 생긴다고 꿈같은 소리를 하셨는데, 진짜 현실이 되었어요.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지요.”

-피리를 불면 단독 공연이 힘들어 밥벌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밥벌이는 피리가 대금이나 해금에 비해 더 낫죠. 어린 시절 피리와 함께 해금이나 대금 소리를 들었지만 그중에 피리 소리가 유독 끌렸어요. 피리의 모나지 않은 동글동글한 소리가 매력적인 것 같아요. 피리를 너무나 불고 싶어 몸부림치면서 안이 뚫린 대나무만 만나면 피리를 만들어 불었지요. 처음에는 대개 피리 부는 모습을 굿집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형들에게 혼이 많이 났어요. 그러나 처음엔 그렇게 반대하며 공부하라고 매를 들던 큰 형님도 저의 피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신 후 매일 저녁 옆에 앉혀놓고 소리를 해주시며 피리를 따라 불게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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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는 단독 공연이 없지 않나요?

“단독 공연은 없지만 피리산조가 있어요. 그럼에도 피리 음계가 짧다보니까 상하음이 충분한 대금이나 가야금, 거문고처럼 다양한 표현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다시 말해 피리 음계는 올라가다 못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갈 수 없으면 다시 올라가야 하니까 단조롭습니다. 그렇지만 경기민요나 서도소리를 반주하기 위해서는 피리 이상의 악기가 없다고 자부합니다. 산조와는 궁합이 안 맞지만 사람의 목소리처럼 연주를 해내는 게 피리의 매력입니다.”

-우리 소리도 시대에 따라 바뀐 것 같습니다.

“대중들이 어떤 소리를 자주 접하느냐에 따라 인기 순위가 달라졌지요. 초창기에는 라디오에 경기민요가 가장 많이 나왔고, 그 다음에 서도소리가 나오고, 남도소리인 판소리는 거의 안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통 소리 하면 판소리, 경기민요, 서도소리로 순위가 바뀌었어요. 일반 대중들이 자주 어떤 소리를 접하느냐에 따라 친숙도가 달라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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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를 부신 지 벌써 50년이 넘었습니다.

“피리를 손에 잡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피리인생 50년을 회고해보면 처음에는 피리라는 작은 악기가 대단히 좋아서 했고, 피리 하나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들어 역경을 겪었고, 지금에 와서는 역시 피리를 잘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료들은 현역에서 물러나 쉬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피리 하나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어요?”

-부부 국악인으로서 명성이 대단하신데….

“대화를 하면 어떤 얘기든지 다 통하기 때문에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은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요. 소리 하는 사람이나 춤추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상대가 먼저 유지숙 명창과 잘 안다고 얘기를 꺼내니까 행동도 조심스러워요.(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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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감독은 언제부터 유 명창의 서도소리에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이은관 선생의 배뱅이굿, 수심가, 난봉가를 많이 들었어요. ‘으~으~’ 하는 게 암암리에 제 몸속으로 들어왔나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 명창의 수심가를 듣는데, ‘바로 저 소리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리가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사람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유 명창의 소리는 맑은데다가 소리에 따르는 무게가 느껴지고 가슴에 한이 맺힌 소리를 들을 때에는 눈물이 핑 돌더군요.”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하지만 객석에서 남편의 피리 부는 모습을 볼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국악 협연을 하게 되면 피리가 모든 악기를 주도하는데, 평소에는 남편으로 보다가 무대에 올라 예술인으로 보게 되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피리 가락이 가슴으로 파고들 때는 객석에서 너무 좋아서 ‘저기 저분이 내 남편이거든요’, 하고 자랑하고 싶어져요. 결혼하며 살아가는 동안 존경하는 덕목이 있어야 하는데, 음악적으로 남편을 존경하고 있어요. 공연할 때마다 저런 훌륭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 내 남편인데, 앞으로 ‘올곧은’ 음악을 하는 예술인이 되도록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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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창부수(夫唱婦隨)의 모습이 이들 부부 같지 않을까. 함께 무대에 설 때 서로가 배려해서 편안한 부분도 있고,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남은 편안하게 소리를 하거나 연주를 하지만, 그들은 혹시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피리를 부는 최 감독은 특이하게도 소리 음반을 내기도 했다.

“남편은 피리를 연주하지만 소리의 성음(소리색깔)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소리목이에요. 그런 점에서 소리하는 제가 초라한 느낌을 받아요. 제가 음반 낼 때 뒷소리를 받아주는 소리를 남편이 했지요. 노래음반 ‘최경만의 소리 끼’(국악인 박범훈 씨가 ‘자연산의 소리’라고 칭찬해줬다고 한다)를 들어보면 소리꾼으로서 시샘이 나요.”

이에 대해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은 “최 감독의 음반은 일반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문 소리꾼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도 한 번 국악을 해보아야지’하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소리꾼들로부터 ‘참 잘했어! 수고했어!’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최 감독은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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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명창께서는 1995년에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북 화합의 장을 만들기 위해 문화인 450명이 교류하는 대공연에 참가했어요. 저로서는 첫 북한 방문인데다가 서도소리의 본고장에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어요. 서도소리의 대표 소리꾼으로 갔지만 실제로는 그토록 갈망했던 서도소리는 해보지도 못한 채 창작음악을 하고 돌아왔어요. 애당초 만찬장에서 서도소리를 들려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날 노래곡목이 ‘난봉가’라 문제가 되었어요. 난봉은 술 잘 마시고 여자를 좋아하는 한량을 의미하고, 낙엽이 다 흩어졌을 때도 난봉났다고 해요. 난봉가가 재미있는 민요이기 때문에 연평도 난봉가, 사설 난봉가 등 숱한 난봉가들이 생겨난 건데, 북측 인사가 ‘난봉이 뭡니까’하며 따지는 거예요.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는 서도소리의 본고장에 간다고 굉장히 흥분했지만 ‘우리는 어디 가서 기쁨과 음악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하며 서도소리에 대한 회의를 안고 돌아왔어요.”

-서도소리의 맥은 몇 명이 잇고 있습니까?

“중견 소리꾼이 10명 정도 됩니다. 물론 경기민요에 비해 수적 열세지요. 국악 현실을 보면 시조의 가곡이나 가사가 열악하고, 그 다음이 서도소리입니다. 지금 현재 판소리나 경기민요는 배우는 사람이 서도소리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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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소리 보급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도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음반화 작업을 하는 한편, 토종 뮤지컬이나 소리극으로 제작해 관객들과 만납니다. 최근에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걸 기념하기 위해 남북한이 모두 좋아하는 북한, 남한, 중국 연변의 아리랑 20편을 모아 불렀어요. 음반 회사인 신나라레코드가 서도소리 하는 사람이 북한의 아리랑을 부르면 색다를 것 같다고 추천해 다양한 아리랑을 선보이게 됐지요.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대중이 외면하면 그 음악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늘 대중과 좋은 음악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연구하지요.”

-토종 뮤지컬을 만들고 있는데, 제작비 등을 감당하기 힘들지 않으신지요?

“물론 제작비가 만만치 않지요. 일을 벌이면 가슴이 뜨끔뜨끔해요. 국악을 알리자는 차원에서 토종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는데, 자꾸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 처음 계획했던 제작비를 넘기기 일쑤이지요. 대극장용으로 만들었다가 지속적으로 공연을 올리기 위해 소극장 중심으로 바꾸고, 공연이 끝나면 음반 작업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공연한 레퍼토리는 몇 개나 됩니까?

“농사를 짓는 과정의 소리를 연희극으로 꾸민 항두계놀이, 고전소설을 극으로 만든 추풍감별곡, 상가(喪家)에서 졸음을 쫓기 위해 부르는 투전노래 등이 대표적인 레퍼토리입니다. 이들 레퍼토리는 춘향가나 흥보가처럼 허구가 아니라 평안도를 배경으로 한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훨씬 감동적이에요. 배뱅이굿이 서도소리인줄 모르지만 이은관 명창에 의해 배뱅이굿이 유명해졌듯이 토종뮤지컬을 통해 서도소리를 널리 알려야지요.”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음악의 세계화가 가능할까요?

"서양음악은 깔끔하고 맑은 게 특징이고, 우리음악은 밑에서 올라가거나 위에서 끌어내리는 텁텁함이 특징이지요. 유럽에 가보면 한국의 전통소리를 상당히 좋아하는 걸 느껴요. 시나위합주의 경우 서울에서는 15분만 지나면 너무 길어 지루하다고 난리인데 반해 벨기에와 같은 유럽에서는 45분이 짧다고 다음에는 15분 더 해달라고 요청하거든요. 그들은 대금 명인, 판소리 명인이 누구인지 벌써 다 알고 있고,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어 음반 한 장 못낸 친구가 유럽에 가서는 인정을 받아 음반을 내는 게 우리 현실이에요. 이런 반응을 볼 때 김치와 비빔밥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처럼 우리음악도 곧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