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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品 치장보다는 '名品人生'을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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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品 치장보다는 '名品人生'을 살아야"

[생생인터뷰-'명품 딜러' 박석규 블루밍 대표]

비싸다고 다 명품 아니야…디자인·색감·차별성 함께 갖춰야


명품시계 200여개 포함 의류‧앤틱가구 등 수백 억 원대 소장


수입업 접고 '한국 떡' 세계적 명품화로 中·日에 수출 꿈꿔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우리 사회가 명품(名品)에 빠져 있다. 최소 100만원이 넘는 루이뷔통 가방이 ‘여성 국민 가방’이 돼버린 대한민국 수입 명품의 소비 현주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소비자원이 최근 조사한 한국인의 명품소비 실태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평균 9개의 명품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2개 정도를 새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구매에 지출하는 비용도 한해 평균 271만원에 달한다. 이처럼 명품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소비 특성 탓에 수입 명품은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30%나 더 비싸다.

30여 년 동안 국내 유명 기업인이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명품을 소개하거나 판매해온 박석규 블루밍 대표. 그는 시계, 보석, 의류, 자동차 등의 명품을 고객의 손에 전달하며 명품 치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명품으로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박석규 대표를 만나 한국인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와 어떤 제품이 명품이 되는지를 물었다. <편집자 주>

-국내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강남 리츠칼튼 호텔에서 명품을 팔아오셨는데….

"리츠칼튼 호텔 1층에 명품 가게 ‘블루밍’을 오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영해왔어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명품 시계를 중심으로 판매했는데,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면서 ‘명품 수입’에서 ‘명품 수출’ 인생으로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동안 애지중지 컬렉션 한 명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한국 떡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어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으로의 수출을 꿈꾸고 있어요.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한국 떡이 최고의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흥분됩니다."

-명품에 눈을 뜨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명품에 관심을 가진 건 중학교 때이고, 눈을 뜨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부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요즘 접할 수 있는 명품들이 거의 수입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품을 접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선친께서는 멋쟁이신지라 ‘오메가 시계’를 차고 다니셨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그 손목시계가 얼마나 탐나던지 선친께 달콤한 말(?)을 해 형님을 제치고 제가 물려받게 되었어요. 그 인연으로 명품시계를 보는 안목이 조금씩 생겼고 남다르게 시계나 의류 등의 명품에 빠져들었습니다."

-요즘은 오메가 시계가 명품의 반열에도 못 들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자부심을 가졌겠습니다.

"그렇지요. 세월이 흐르며 숱한 명품시계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당시에는 오메가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어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명품시계 쇼에는 10억 원에서 20억 원 대에 이르는 고가의 명품시계가 선보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명품시계는 디자인이 독특하고 품격이 남달라요. 어떤 특정 패턴의 디자인을 따르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가 순간적인 영감이 떠오를 때 디자인이 멋지고 훌륭한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입술모양으로 찌그러진 까르띠에 여성용 시계는 한 고객이 실수로 밟는 바람에 고치기 위해 가져온 망가진 시계를 보고 디자이너가 영감을 얻어 한정판을 내놓았지요. 롤렉스 시계가 한 가지 디자인으로 수십 년간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 달리 까르띠에는 아무리 멋진 시계라 하더라도 한정판으로 수량을 제한해 명품의 지위를 누려오고 있어요."

-벤츠, BMW 등 수입명차도 판매하셨다면서요?

"1995년도부터 독일의 명차를 수입해 불티나게 팔았어요. 지금은 대부분 대기업들이 외국의 명차를 수입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수입업체가 많지 않아 저 같은 딜러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았어요. 탤런트 박철 씨를 영업이사로 위촉하고 유명 연예인들에게 외제차를 팔았는데, 1997년 IMF 직전까지 전성기를 누렸어요."

-마음에 드는 명품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는지요?

"저 뿐만 아니라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명품을 손에 넣기까지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명품의 경우 수백 만 원에서 수십 억 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격을 고려하여 제 수입의 몇 퍼센트를 투자할지 결정하지요. 보통사람은 수입의 몇 퍼센트만 투자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개념이 없어요. 자기 수입의 70~80%를 투자해서라도 원하는 명품을 꼭 수중에 넣는 게 명품 소비자의 특징입니다."

박 대표는 명품소비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자칫 젊은 여성들이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고 했다. 명품이 분명히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자기의 분수에 맞게 누려야 명품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지, 억지로 무리를 해서 명품을 소유한다면 ‘명품인생’이 아니라 ‘거품인생’이 된다는 지적이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명품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본능에 해당하는 과시욕이 명품을 소비하게 만드는데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인생이 빛나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는 명품을 들고 다닌다는 생각에서 기분은 우쭐할지 몰라도 명품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니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명품이라 해도 명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사람들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명품은 한 마디로 말해 물건 값어치가 있어요. 제작자가 장인 정신을 발휘해 정성껏 만들어내는 게 명품이죠. 흔히 명품을 흉내 낸 짝퉁이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듯이 명품은 디자인에서부터 색깔이나 바느질 등에 이르기까지 완벽에 가까워 오래 지닐수록 싫증이 나지 않아요. 짝퉁이 처음엔 화려하지만 금방 싫증이 나는데 비해 명품은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한 맛이 우러나와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맛이 나옵니다."

박 대표는 의류 명품 가운데 조지 아르마니 블랙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의류 명품은 먼저 소재부터 다르고, 직조기술이 뛰어나며 봉제의 땀수와 끝처리가 다르다고 했다. 디자이너가 끝처리를 할 때 포인트를 살짝 줌으로써 마치 화가가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조지 아르마니, 지아니 베르사체, 크리스티앙 디오르, 이브 생 로랑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에요. 30대 초중반에 배우 하정우의 부친 김용건 등과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들의 명품 의류를 사기 위해 청담동과 압구정동을 휩쓸고 다녔지요. 요즘에는 너무나 많은 명품 의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명품시계를 상당수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제가 소장한 명품시계는 200여 개로 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어요. 대부분 구하기 힘든 희귀성 높은 시계인데, 30개 정도는 누구에게도 팔지 않고 가보(家寶)로 꼭 물려주고 싶어요. 200여 개의 명품시계 가운데 파텍필립 시계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스웨덴 국왕에게 선물로 바친 파텍필립 핑크골드 회중시계는 제 손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아요. 사실 제가 소장하기 위해 사두었는데, 가게 점원이 산 가격의 두 배로 미국인에게 팔아넘겼어요. 그 미국인도 이 시계를 얼마나 탐을 내든지 카드로 결제가 안 되니까 미국에서 돈을 송금해와 사갈 정도였어요. 지금이라면 그 시계를 절대 팔지 않았을 겁니다. 만일 살 수만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다시 구매해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시계라고 할 수 있어요."

박 대표는 지금 파텍필립 핑크골드 회중시계를 소장하고 있다면 그 가격은 매길 수 없다고 한다. 소더비에서 경매로 부쳐질 경우 시계 마니아는 적게는 몇십 억 원에서, 많게는 몇백 억 원에 거래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당시 이 시계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도매하는 분이 스웨덴어로 새겨진 이니셜을 몰라 제게 보여주었고, 저는 얼른 사전을 찾아보았어요. 그랬더니 ‘시계 명장’ 파텍필립이 핑크골드 회중시계를 제작해 스웨덴 국왕에게 선물한 것임을 알고 무조건 구입했었죠. 100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회중시계의 핑크 골드 빛깔은 지금도 내기가 어려울 겁니다. 아마도 집 한 채 값은 주어야 그 정도의 명품을 만들 수 있겠지요. 지금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원이 미국인에게 팔겠다는 전화가 왔을 때 팔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데…."

-10년 전 파텍필립을 시집보내고 나서 그 아쉬움은 어떻게 달랬습니까?

"왕에게 선물한 시계는 아니지만 120년 된 파텍필립 회중시계를 하나 더 구해 아쉬움을 달랬지요. 시계 수리공이 아니기 때문에 기계는 잘 몰라서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제 전공인 디자인과 다이아몬드의 세팅기술을 꼼꼼히 살펴보았어요. 100개의 다이아몬드가 똑같은 광채를 낸다고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멋져요. 사실 다이아몬드 100개를 시계에 장식하려면 손실이 많이 납니다. 똑같은 크기 똑같은 빛을 내야 하니까요."

-명품시계를 수집하며 뭔가 달라진 건 없습니까?

"명품시계도 시계 가운데 하나잖아요.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듯이 명품시계를 하나하나 수집하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비즈니스를 하면서 상대방과 약속하면 정확히 시간약속을 지키는 것도 명품시계를 수집하면서 생겨난 좋은 습관이지요. 사실 간절히 원하는 명품시계를 손에 넣게 되면 어떤 것보다 만족감이 크고 기다리는 순간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에요. 그게 명품 마니아의 근성이자 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가장 어렵게 구한 명품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입니다. 명품시계를 구하기 위해 홍콩, 마카오, 일본 등지를 자주 다녔는데, 홍콩에서 5개 한정판으로 나온 예거 르쿨트르 가운데 0번을 구했지요. 최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예거 르쿨트르 부티끄가 총 12억 상당의 투르비옹 시계 8점을 함께 선보여 업계 최대 투르비옹 라인업을 갖췄다는 기사가 나왔잖아요. 그 시계는 세계 최초로 초 단위 시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요즘 압구정동에 중고명품점이 성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품을 갖고 싶은데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중고명품을 찾아요. 압구정동에만 중고명품 가게가 60여 군데나 있는데 호황을 누리고 있어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압구정동에 생긴 후 여기저기서 중고명품 가게가 생겨난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에서 명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압구정동에 들어선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국내 의류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지춘희 디자이너의 ‘미스지 컬렉션’이 들어갔어요. 강남에서 잘 나가는 고급 술집의 종업원들이 명품의류를 많이 사 입는 등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쉽게도 명품관에서 사라지고 청담동에 가게를 낸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의류를 중심으로 거의 명품에 근접해가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최근 현대차에서 나온 에쿠스를 타보고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 외제차만 타다가 에쿠스를 타보았는데,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것 같았어요.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 도요타가 벤츠를 따라잡기 위해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듯이 현대차도 중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벗어야 명품 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요. 물론 예전에 비해 디자인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외제차에 비해 디자인 감각은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번 명품의 반열에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은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자녀분들도 명품에 열광하는지 궁금합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그들은 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의류, 신발, 가방 등 명품을 구해주어도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싫어하는 표정이에요. 사람마다 명품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다른데, 무조건 명품에 열광하기보다는 자신의 형편에 맞게끔 사는 게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도 삶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명품인생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겉으로는 명품을 가짐으로써 폼 나는 명품인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짜 명품인생은 멋진 인생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명품인생을 사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하고, 명품을 하나 덜 사는 대신에 어려운 사람도 도울 줄 알아야 해요. 특히 아무리 명품 마니아라 할지라도 절제하지 못한다면 결코 명품인생이라고 할 수 없어요. 명품은 분명히 마약과 같아요. 마약을 잘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남용하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요. 명품도 마찬가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