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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대화와 문화를 빗는 '神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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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대화와 문화를 빗는 '神의 술'"

"와인은 대화와 문화를 빗는 옛 친구같은 '神의 술'이지요"


“세상이 뜀뛰기 할수록 난 아날로그의 감성에 빠져든다”

음악 들으며 좋은 친구와 와인 한 잔! 멋지지 않아요?



"가격 비싸다고 꼭 좋은 와인은 아니죠.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깊은 맛 나요"


mp3, HDTV, 스마트폰,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 디지털기기는 분명 우리 일상생활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런데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거꾸로 우리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손으로 직접 만지고 귀로 듣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다시 말해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디지털 문명 시대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능가하는 디지털은 없다”며 아날로그 감성을 대표하는 와인과 LP음반을 보듬고 사는 이가 있다. 일산 백석역 2번 출구에서 직선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한 ‘와인&아날로그’의 이재술 대표(54)가 그 주인공이다.

‘와인&아날로그’는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에서 잃어버린 추억을 새록새록 되새겨주는 보물창고와 같다. 7000장에 달하는 LP음반과 타자기, 다이얼 전화기, 주판, 연필깎이 등 아날로그 기기들이 와인 한 잔과 함께 가슴 아련한 추억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2004년 안양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 근무할 때 ‘18홀에 65타 치기’라는 스토리텔링으로 1865와인을 국내에 크게 유행시킨 소믈리에이기도 한 이재술 대표와 와인과 아날로그 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주>



▲ 와인&아날로그 이재술 대표./사진=홍정수 기자■ 와인과 LP음반을 사랑하는 남자 이재술 와인&아날로그 대표

-LP와인바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지난 27년간 레코드판을 7000장 수집했는데, 이 LP들은 수집할 때부터 제 혼자 듣기에는 아까우니 여러 사람들과 같이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와인바를 내게 되었어요. 특히 가수들은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조금씩 변화되기 때문에 그 전성기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LP들이 너무나 소중해요. 그러나 93년 이후에는 LP 생산이 중단되어 일반인들은 접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제 주전공이라 할 수 있는 와인과 LP음반을 결합시켜 와인바를 만든 것이지요. 지금은 7000장밖에 안 되지만 앞으로 계속 수집을 해서 LP 3만장이 사방을 둘러싸게 만들 작정입니다. 그 때의 와인바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흥분되고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LP음반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 바뀌면서 점점 문화가 작아지는 것 같아 저라도 그 문화의 크기를 지키고 싶어요. 예컨대 지금은 디지털화 되어 CD에 음악을 저장하다가 최근에는 mp3에 저장하는데, LP크기의 큰 문화의 넓이가 CD처럼 약 4배 정도 작아졌다는 생각이에요. LP자켓에는 그 가수의 최대의 아름다운 장면을 담아 놓아서 자켓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그 시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론 디지털 문명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현대인은 조금 느리게, 때로는 천천히, 자연과 더불어 지혜를 간구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낳은 스티브 잡스조차 집에서는 턴테이블로 음반을 들었다고 합니다. 디지털 문명을 주도한 그도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쉼표를 찍고 쉬면서 자기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안양 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 칠레의 ‘1865와인’을 유행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와인은 그냥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입니다. 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 근무하던 시절,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께서 미리 디캔팅을 해놓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와인과 골프장의 관계를 머리에 떠올리며 ‘18홀에 65타 치기’라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1865와인’을 유행시켰지요. 칠레에 와인투어를 갔을 때 매니저로부터 한국에선 왜 ‘1865와인’이 잘 팔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와인전도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와인예찬론자이신데….


“국내 내로라하는 최고경영자들도 한때는 폭탄주 문화에 빠져 있었어요.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안양 베네스트 골프클럽에서 근무하면서 이 폭탄문화를 와인문화로 바꾸어보자는 결심을 하고 그룹 회장님이나 사장님, 그리고 유명 가수 등이 왔을 때 와인의 우수성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요. 와인은 고급 비즈니스에서는 필수인데다가 ‘꾸준히, 적당히, 그리고 반주로’ 마시기만 하면 최고의 건강 음료가 되니까요.”

이 대표의 와인에 대한 칭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와인을 마시면 우선 치매에 걸리지 않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와인은 하나씩 공부하면서 배워나가는 재미가 쏠쏠한데다가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 다양한 외국어를 조금씩이라도 공부해야 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유명인이 우울증에 빠진 나머지 자살한 현장을 살펴보면 소주나 위스키 병은 흩어져 있어도 와인 병은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은 절대로 자살하는 법이 없어요. 와인은 대화의 술이기 때문에 자살하기 전 친구를 불러 와인을 마신다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분명히 그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보면, 한국은 취하는 문화이고, 서양은 즐기는 문화이에요. 외세의 침략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막걸리의 발효 문화에서 소주의 화학 문화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화학주에서 발효주로 다시 바꾸어 우리 민족의 끈기와 인내의 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와인이 몸에 좋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어요. 프랑스인은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에 심장병환자가 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미국인의 1/3밖에 안 된다는 통계가 있어요. 지난 1991년 미국 CBS의 ‘식스티 미니츠(60 minutes)에 이 같은 내용이 방송되자, 미국 의사들이 몇백 명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어요. 3년 동안 실험을 한 끝에 1994년에 다시 방송하면서 프랑스인은 레드와인을 즐겨 마시는 덕분에 심장병에 덜 걸리고 오래 산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 방송이 미국의 식생활을 바꾸어놓았어요. 우리나라도 2003년 7월 무렵 KBS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레드와인, 녹차, 마늘, 토마토가 노화를 방지한다고 하자 슈퍼마켓에서 레드와인이 동이 난 적이 있어요. 프랑스인이 미국인에 비해 배 나온 사람이 적은 것도 다 와인 덕분입니다. 그러나 몸에 좋은 와인도 한국인처럼 한방에 끝낸다는 생각을 갖고 과음을 하면 오히려 해롭습니다. 남자는 두세 잔, 여자는 한두 잔으로 꾸준히 적당히 마셔야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모든 술은 적당히 마시면 혈액순환에 크게 도움이 된다. 정종, 위스키, 소주는 산성에 가까운 술이고, 와인은 약알칼리성의 술이다. 산성에 가까운 술은 혈액순환에는 도움이 되지만 몸을 나쁘게 만든다는 게 이재술 대표의 지적이다. 운동부족, 식생활습관, 공해, 스트레스로 몸이 산성화 되어가므로, 산성인 몸에 산성술을 들여붓기보다 약알칼리술인 와인을 마시는 게 건강이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제 건강의 비결도 와인과 반신욕에 있습니다.“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친구와 와인은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지요. 그러나 와인을 자세히 보면 병뚜껑 위에 구멍이 2~4개 뚫린 보통 와인은 2~3년 내에 마시는 게 좋고, 그렇지 않은 와인은 10년 이상 지난 뒤에 마시는 게 좋아요. 보통 와인은 1~2년 가면 맛이 떨어지지만, 고급 와인은 10년이나 100년이 지난 뒤에 맛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와인의 빈티지를 따지는 겁니다. 이렇게 구대륙인 유럽은 그해의 작황을 중심으로 한 빈티지를 꼼꼼하게 챙기는 게 중요한 반면, 미국, 호주, 칠레,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은 일조량이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빈티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양조기술이 더 중요해요. 와인이 만들어지는 모든 환경, 즉 포도가 자라는 토양과 기후조건, 자연조건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정성 등 테루아가 문화를 만들어요. 유럽의 베토벤, 브람스 등이 흐리고 안개가 낀 떼루아의 영향으로 창가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작곡을 하여 명곡이 탄생한 것이지요.”



-와인을 마시기 전 디캔팅의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빈티지를 보면 연도가 나오지요. 그 연도에 와인을 병에 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와인은 병 안에서 움츠리고 있었던 탓에 개봉을 하는 즉시 본연의 향을 내지 못해요. 디캔팅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와인 본연의 향이 살아나고 잡향이 날아가며 탄닌이 좀 부드러워집니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실 때 끝까지 마시지 않고 약간 남기는 것도 예절이에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병 끝부분에 주석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소믈리에가 고급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게 와인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이지요.”

-와인은 어떻게 보관하고 마시는 게 좋습니까?


“레드와인은 16도에서 18도, 화이트와인은 4도에서 8도 사이에 눕힌 채로 보관하는 것이 좋아요. 와인을 눕혀두면 코르크 마개에 와인이 닿아 팽창하기 때문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되지요. 와인은 빛, 온도, 진동에 민감해요. 그래서 디캔팅 과정을 거쳐 와인을 개봉하면 본연의 향이 은은하게 울려퍼집니다. 그리고 와인을 마실 때는 눈, 코, 귀, 입, 손 등 오감으로 맛을 느껴야 합니다. 와인 잔과 잔끼리 부딪힐 때는 볼록한 부분을 부딪히면서 상대방과 눈을 맞추어야 하고, 천천히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합니다. 비즈니스에서 소주나 위스키를 마시듯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문이 열렸을 때 비즈니스 얘기를 꺼내는 게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LP레코드판과 어떤 추억이 있습니까?



“1975년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에게서 국민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 LP판과 야외전축을 어렵게 빌려서 집에서 들어보았어요. 그 전까지는 라디오로만 음악을 들었는데 LP판으로 음악을 들으니 너무 좋았어요. 그것도 혼자 방에 앉아 야외전축으로 음악을 들었던 그 시절의 추억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조용필과 나훈아의 음악이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면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추어 서서 다 듣고 지나가곤 했어요. 집에서는 라디오에서 그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계속 채널을 돌리다가 누나에게 혼나기도 했고, 너무 채널을 열심히 돌린 탓에 라디오가 망가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조용필과 나훈아의 LP판은 지금 200여 장이 넘습니다.”


-좋은 와인이란 어떤 와인입니까?



“가격이 비싸다고 꼭 좋은 와인은 아닙니다. 저렴하지만 품질이 좋은 와인도 있고, 무엇보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좋은 친구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게 좋은 와인이지요. 고급 와인을 마시면 분명 맛과 향이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좋은 음악과 좋은 친구가 좋은 와인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태리 북쪽 피에몬테 지방의 바롤로 와인이 묵직하고 좋습니다.”




-직장인들이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기려면?



“와인 가격이 사실 부담이 되지요. 비싼 고가의 와인이 다는 아니에요. 와인에는 왕도가 없어 자주 마시다보면 좋은 와인을 알게 되고 또 찾게 됩니다. 고급와인을 마시다가 저급와인은 못 마십니다. 가격대로 보면 3만원에서 5만원 사이의 와인이 좋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와인의 맛이 깊어지는데,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은 가능하면 달콤한 화인트와인으로 시작해서 레드와인으로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레드와인으로 시작하면 텁텁하고 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애호가로서 추천하고 싶은 요리와 와인이 있다면….



“서양인들이 와인을 즐기는 이유는 고기가 느끼하고 산성이기 때문이지요. 약알칼리의 와인을 마시면 소화가 잘되고 기분이 좋고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한국인은 삼겹살을 즐겨먹는데, 이태리 와인을 추천하고 싶어요. 삼겹살 와인이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이태리 와인과 삼겹살이 참 잘 맞는 것 같습니다.”



7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커피. 이재술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와인은 우리에게 감성을 자극하고, 커피는 지성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In Vino, Veritas).’


/글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