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에리 북유럽 80일 (27)] 3등 선실, 폐쇄공포증…

공유
0

[김에리 북유럽 80일 (27)] 3등 선실, 폐쇄공포증…

7월2일 후르티루튼 탑승, 7월3일 루프튼제도

먼 타향에 와서 좌충우돌 홀로 여행을 하면서 내가 받은 대접에 대한 이유를 알게된 시간이 있었다.

트롬쇠대학 언어학강사 손민정씨는 처음 이곳에 올 때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을 타고 왔는데, 짐이 무거워서 승무원에게 선반에 올리는 걸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건 내 일이 아니거든. 다음부터는 네가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게 싸가지고 다녀”라고 하더란다. 그러니 3개월간의 여행을 위해 엄청난 짐을 들고 휘청거리며 다니는 내가 이들에게는 무척 경멸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다닌다고 하는데도 웬 짐이 24인치 캐리어로 그득한지 나도 잘 이해가 안가니.

이들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어떤 면에서는 징그러울 정도로 이기적이다. 분명 어떤 인종차별적 멸시의 함의가 있는 것도 확실했다. 남의 땅에 와서 뭐하느냐는. 우리가 우리땅에 와있는 동남아인들에게 느끼는, 그러한 은근한 거부감이겠지 이해해보려고 해도 계속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연안쾌속선 후르티루튼(후티루텐, 후르티그루텐 등으로들 쓰는데 내가 들은 바로는 이 발음이 가장 가깝다)에서 만난 홍콩 출신 간호사 여인도 같은 말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더 정확히는 동양인)을 싫어해. 왜냐하면 여긴 태국 여인들과 결혼하는 나이든 남자들이 많은데, 그 여자들이 자기 부모, 친척들을 다 불러들이려고 하거든. 요즘엔 파키스탄에서 온 여자들도 그래. 그러니 질색들 하는거야”라며. 어느 교포도 태국여인들을 마주치면 ‘너도 나같은 케이스로 왔구나’하는 식의 눈초리들을 보내는 것이 싫다고 했었는데,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공포의 3등선실, 몰려온 폐쇄공포증

7월2일 새벽 1시30분에 출발하는 후르티루튼에 드디어 탑승하게됐다. 저녁 시간 내내 호텔 로비에 붙어 앉아 원고를 써 보내고는 자정이 넘어 배를 타게 되니 좀 피곤했다. 하지만 난 기대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호닝스보그, 함메르페스트 등을 거치면서 항구에 정박해있는, 붉은 바탕에 H 머릿글자가 새겨진 동그란 마크의 대형선을 보며 곧 저 배를 타게 되리라는 생각에 흥분이 되곤 했다.

‘사랑의 유람선’ 같은 80년대 미드를 보았기 때문일까, 솔직히 연안쾌속선이라는데 일종의 크루즈같이 캐빈이 마련돼있는 큰 배라 무척 기대를 했다. 아마 내가 예약할 수 있는 방중에 가장 낮은 가격을 지불했지만 1박에 50만원이 훨씬 넘었고 나로서는 굉장히 큰 지출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기분 잡치는 속도도 빨랐다.

택시를 부를까하다가, 5분만 걸어가면 된다며 어이없어하는 호텔직원의 말에 짐을 매고 끌고 조금 헤매서 도착했다. 근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참 높은 계단! 일단 큰 캐리어는 내팽겨쳐 두고 입구로 올라 가 체크인을 했다. 남자직원 하나가 앉아있어 “저 계단은 뭐니? 엘리베이터 없나? 짐이 큰게 있는데 도와줄 사람 하나 없나?”하고 물었더니 “계단이 있는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 배 출발을 쉽게 하기 위해서 좀 올려져 있는 상황이야”라고 대강 떨떠름한 표정으로 설명을 한다. 대단한 환영식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좀 웃어줄 수는 없나. 여하튼 인구가 많지 않고 인건비도 비싸니 그런 식의 서비스 인원을 배치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 내부에서는 엘리베이터 탈 수 있겠지?” 하고는 선실을 찾아갔다. 선실이 어디 있다는 설명 하나 없이 탑승카드 하나 내주고는 끝이다. 내일 아침 6시에 샤워할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는 것은 캐빈없이 그저 표만 끊고 탑승하는 이들에게 하는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은 선실 가격이 워낙 비싸니 아예 캐빈을 예약 안하고 타는 것들 같다. (구글에서 후르티루튼을 검색해보면 ‘hurtigruten without cabin’이 가장 먼저 검색된다)


방 카드 내주면서 “네 방은 2층이야”하고는 한마디도 안한다. 먼저 “몇층으로 가야돼?” 물어야 대답해준다. 정말 동양인이 싫어서 나한테만 그러는건가? 아마도 이런 선원들의 세계는 더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 그럴까 싶기도 하다. 나중에 배안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700명쯤 되는 승객들 중 가족단위로 탄 돈많아 보이는 인도인이 좀 보이고, 노르웨인들과 동행한 중국계 여인이 동양인의 전부다.

내가 알아서 뒤져서 발견한 안내서에 따르면 내가 탄 MS NORDKAPP호는 7층 구조로 돼있고 리셉션은 3층, 내 선실은 가장 아래쪽인 2층이었다. 2층에 사우나가 있는데 여기서 샤워할 수 있다는 것 같다. 3, 5, 6층은 선실로 꽉 차있고 4층에는 식당, 카페와 컨퍼런스룸, 기념품숍 등이 있고 7층에 야외데크와 라운지가 있다.

어찌저찌 선실에 짐을 풀어놓고 잠을 자려는데 해가 지지 않아 너무 밝아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아래쪽 3등선실이라 그런지 밀폐된 두개의 원형 창이 나있는데 두꺼운 철제 뚜껑을 닫아야만 한다. 도저히 닫는 방법을 알 수가 없어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더니, 덩치가 헐크같은 선원을 하나 보내주는데 “보통 날씨가 나쁠 때만 이 창을 닫는다”면서 “이거 굉장히 무거워서 넌 못할거야”라며 고정된 쇠막대기를 뽑아 뚜껑을 덮고 순식간에 커다란 돌림쇠로 고정을 시키고 돌아갔다. 근데 좀 지나자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밀폐된 공간에 갇혔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폐쇄공포증이었다. 나에게 좀 답답한 걸 싫어하는 기질이 있다는걸 알고 더 가격이 낮은 창이 없는 방 대신 바깥쪽 선실을 선택한 참이었다. 근데 컨디션이 나쁜 기간인데다가 너무 피로해있던 탓인지 갑자기 제어할 수 없는, 생전 처음 겪는 공포감이 밀려들어왔다.

얼마나 돌림쇠를 꽉 잠궈놨는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가 없어 리셉션에 열어달라고 전화를 하고 방을 나왔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아래쪽 3등선실은 배가 가라앉는데도 철문을 잠궈놓고 열어주지도 않더만, 이거 진짜 원 공포스러워서. 리셉션 직원에게 “나도 나한테 클로징 포비아가 있는 줄 몰랐어”라고 했는데,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보니 약 하나 얻어먹기 힘들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증상이었지만 가뜩이나 별 환영도 못받는 처지에 망신스럽고, 스스로가 창피해서 미치겠다. 방에 돌아오니 뚜껑은 다시 열려있었고, 피곤해 바로 곯아 떨어졌다.

새벽 3시40분께 됐는데 휴대폰 전화벨이 울려서 어렴풋한 잠에서 깼다. 케이블TV 사용료가 미납됐다는 전화다. 해외로밍이라는 안내멘트가 나올게 분명한데도 꼭 전화를 걸었어야하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직도 나는 아날로그TV 보는데 몇 천원 못받은게 급한 용무인가 화가 난다. “저 지금 외국이거든요” 하니 금방 끊긴 하는데, 문자메시지로 또 미납금 내라고 계좌번호를 쏴 보냈다. 이사갈 집을 알아보며 분양사무실 한군데 남긴 전화번로 온군데서 2년 넘게 스팸문자가 날아와, 외국까지 와서도 자다가 깨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정말 짜증나네. 게다가 다른 날도 아니고 이런 날.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밖이 밝으니 도저히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샤워를 하고 원고 쓸 시간을 벌었다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후르티루튼에서의 즐거운 이벤트들

나는 트롬쇠에서 승선, 오후 6시30분 루프튼(역시 로포텐이라고 한국에서는 쓰는데 현지 발음을 들어봤을 때는 이 발음표기가 가장 가깝다)에 있는 스볼뵈르 항에서 내린다. 배 안에서는 중간 중간 재밌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침뷔페를 제공하는 식당엔 사람이 엄청나게 바글거리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니 나도 사람멀미가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승객이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들이다. 다들 창가에 몰려들어 탄성이 나길래 보니 고래떼 잔등이 보인다는 것이다. 망원경 가져온 것은 가방 어디에 처박혀있다. “나도 좀 볼래요” 했더니 친절하게들 길을 내준다. 멀리 뭐가 꼬물꼬물 보이는데 내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자리를 못잡아 빈 자리에 좀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좀 싫어하는 티를 내는 할머니가 하나 있긴 하지만 하나 같이들 친절하다. 내가 계란을 깨먹으려는데 잘 안되니까 한 할아버지가 옆에있는 쇠기둥을 가리킨다. 거기에 대고 삶은 계란을 두들겨 깨니 가볍게 웃음이 터진다.

중간에 5번 기착지에 배가 서는데 그때마다 다음 출발시간까지 잠깐씩 하선할 수 있게 해준다. 사건은 오전 10시45분 Risøyhamn항에 내렸을 때 일어났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 날씨가 좋지 않다. 사람들이 뭔가 보려 걸어가는 쪽으로 비맞으며 가기가 싫어서 마침 홀로 서있는 남자에게 “저기 가면 뭐 있니? 가면 좀 볼 거 있나?”하고 물었다. 돼지 같은 인상에 덩치가 있는 남자가 사람좋게 웃으며 “그냥 앵커(닻) 하나 있는데 별 거 아냐” 한다. 근데 갑자기 그의 와이프 같은 여자가 나타나서 남자의 팔짱을 끼며 얼굴은 웃음을 지으면서 눈으로는 나를 막 흘겨본다. 어쩌라고? 말도 한마디 못나눠?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한다. 솔직히 이 배안에서 홀로 다니는 젊은 동양여자는 온 남자들의 눈길을 다 끌고 있다. 대부분 다 은퇴한 노인들이고, 좀 젊은 사람들이 있어도 다들 커플들이다. 캐빈 없이 탑승한 젊은 남자 두어명은 거의 지쳐서 의자에 널부러져 있고 내가 뭐 관심을 가져야할 여지는 전혀없다. 한국에서도 워낙 큰 키라 사람들 눈길 받는 것에 익숙해져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여지껏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근데 그 적대적인 눈빛을 접하자 소심해진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나? 웃으면 색기 흘린다고 할테고 뚱하면 아시안 기분 나쁘다고 할테고. 감정상태가 엉망이 된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낮 12시30분쯤에는 소틀랜드(Sortland)항에 서는데 그 직전 배 선미로 나와들보라 해서 나가보니, 비가 죽죽 내리는 가운데 두 명의 선원이 흰 타월을 나눠준다. 이 항에서 이 배를 타는 승객들이 단체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오는데 정확히 이 배가 다리밑을 지나는 시간에 마주치게 된다. 그 버스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타월을 흔드는 거다. 버스안에서도 손들을 흔들며 호응하는데 비를 쫄딱 맞긴 했지만 흥겹다.

오후 2시15분에는 Stokmarknes항에 한 시간동안 정박하는데 여기에는 후르티루텐 박물관이 있어 볼만하다. 그때 배에서 봤던 중국계 여인이 나에게 “니아호”하고 인사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중국인들은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에 사투리도 많고 생김새들도 달라서, 딱히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종종 있긴 하다. 홍콩 출신으로 노르웨이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동료들과 여행을 왔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중에 배에서 내리기 직전 다시 만난 그녀가 노르웨이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길래 “노르웨이인들 참 불친절해” 했더니 앞서 했던 것 같은 얘기를 들려주며 “우리 동양인들은 항상 남을 배려하려고 하지.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상황에 따라 좀 달라질 수 있어. 좀 더 사람에게 다가가도록 해”라는 조언을 해줬다. 타향살이에 지쳐보이는 그녀의 말 한마디가 진정 고마웠다. 나중에보니 같은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우린 마주칠때 마다 눈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말은 정답이지만 현실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카페에 커피를 한잔 마시러 갔더니 일부러 계산을 미루며 미적댄다. 핀란드에서도 겪었던 일인데, 타인종 무시한다는 티를 내는 것이다. 바이킹의 후예임이 분명한 키큰 금발 여자는 팔뚝에 시커멓도록 문신을 잔뜩 해댔다. 크림을 넣고 싶은데 안보여서 이곳에서는 ‘화이트너’라는 상표명이 있는 걸 알고 있기에 봉지를 하나 들고 한창 딴청 피는 애를 불러서 “이거 화이트너니?”하고 물어보니까 대강 “응”한다. 뜯어보니 가루설탕이다. 하지만 7층 라운지에서는 아주 활달하고 다정다감한 금발 여직원을 만났다. 그저 그러려니, 개인차려니 하고 상처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조용한 학교에서 글을 쓰는 행복감

배안에 인터넷이 되는 곳은 Fembøringen 라운지 뿐이다. 대부분 거기 앉아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자리를 비운 동안 맞은편 의자에 남유럽인인 듯한 남자가 와 앉아있다. 요즘 유럽인들은 왼손 대신 오른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게 유행인가보다. 그 역시 웨딩링을 끼고 있는데 곧 칙칙한 머리색깔의 부인이 옆에 와서 앉는데 끊임없이 기침을 하고, 내 노트북 컴퓨터를 향해서도 계속 요란하게 기침을 해댄다. 독한 감기에 걸린거 같은데 가만히 선실에 박혀있든지 하지. 사라져서 들어갔나보다 하면 또 나타나고, 뭔가 마시면서 자리를 비웠다 다시 왔다가 남편과 얘기하다가 입을 맞추다가 한다. 설마 내가 신경 쓰여서 그런건 아니겠지? 신경이 거슬려 미치겠고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배안에는 곳곳에 선장의 경고문이 붙어있는데, 폐쇄된 배안에서 전염병 등의 위험이 높으니 손을 깨끗이 닦으라는 것이다. 손을 어느 경우에 어떻게 닦아야하는지 상세한 설명도 돼있고 곳곳에 손세정제도 배치해놨다. 그녀의 침과 분비물 포탄이 날리는데도 나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정말 다른 자리로 피해앉고 싶은데 노트북, 자료들과 함께 옮기려면 너무 성가신데다가 마침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트롤피요르드를 지나는 중이다. 비가 쭉쭉와서 다도해 풍경이 그저그렇긴 하지만 구경도 하고 싶고, 사진도 찍어야한다. 거기에 비켜나고 싶지 않은 일종의 오기랄까, 바보같은 선택이지만 확 짜증나는 얼굴을 하고 그냥 버텼다. 결국 몸의 저항력도 떨어져있던 시기인데다가 감기기운도 좀 있었는데, 내 상태만 더 나빠졌다. 내가 바보같은 선택을 했으니 그에 대해 감당도 해야하는 것이다.

미리 짐을 싸들고 와 하선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입구가 미어터지도록 몰려들고 문은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17시간의 항해가 이제 겨우 끝났다. 배의 흔들림에 휘청대자 옆에 있는 노부인이 잡아준다. 하선 예정시간보다 15분쯤 지체된 후에 내려서 나는 대기실이 있는 건물을 나오자마자 아무 생각없이 그냥 택시를 잡아탔다. 비용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이미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스뵐보르항에서 5㎞쯤 떨어진 카벨바그 호스텔인데 본래는 학교건물인 것을 여름방학 기간에만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로 공개한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은 고교를 졸업하고 가는 일종의 전문학교라는데 스킨스쿠버부터 사진까지 각종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 기숙사 2박에 예약비와 디파짓까지 500크로네 남짓을 지불했는데 택시비만 191크로네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닐 정도로 서있기도 힘들만큼 정신이 없었다. 분명 짐때문에 택시를 탄다고 얘기했건만 택시기사는 도와줄 생각이 없고, 나도 이제 그려려니한다.

정신이 없으니 영어도 잘 안되고 영어가 잘 안들린다. 학교 캠퍼스라 인터넷이 되는 로비와 아침을 주는 식당이 한 건물에 있고,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 기숙사는 각기 다른 건물에 흩어져 있다.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해 비를 쫄딱 맞으며 넓지도 않은 캠퍼스를 헤맸다. 그나마 지하층에 있는 방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럴때 다행인게 그나마 물렁물렁한 내 살들이다. 지금도 손가락이 뒤로 90도로 젖혀질만큼 어린아이처럼 여물지 않은 이상한 체질이라 기운을 전혀 못쓴다. 스스로를 남들에 비해 핸디캡이 있다고 여길만큼 병뚜껑하나 못여는 부족한 인간인데 당최 이 여행이 가능한 거였는지나 모르겠다. 대신 유연성이 좋아 여차하면 뼈가 부러질만한 상황에서도 다친 곳은 없었다.

동남아계 여자애인 리사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부엌에 저녁 해먹으러 같이 가자는데, 나는 인사를 받는둥 마는 둥 짐을 던져놓고 오리털파카를 입은 채로 거의 기절하듯 쓰러졌다. 선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온갖 회의감과 공허감에 떨었다. 정말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고 공포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악몽인지, 망상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내가 여기 살러 온 것도 아니고 견문도 넓히고.

한번 깨서 샤워를 한번 하고 또 자고, 아침에 한번 깨서 호스텔에서 주는 뷔페를 먹고 또 잤다. 꿈속에서 로포텐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나는 그에 대한 글을 또 쓰고 썼다. 호닝스버그에 머물 때 내가 머물던 방에 들어왔던 한 동양 여자애가 커튼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시간 내내 자길래 달리 해줄 일도 없고 깨울 수도 없어 무척 걱정이 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 짝이 된 것이다. 여독에 더욱 아프고 슬프다.

7월3일 오후1시쯤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살아난 거 같다. 로비 소파에 앉아 배를 타기 전에 세븐일레븐에서 사뒀던 머핀과 커피를 마시며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는데 집중하니 안정감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방학중의 인적없는 한적한 캠퍼스. 밖에는 한창 짝짓기 중이라는 기러기들이 시끄럽게 울어댔지만 방한을 위해 두꺼운 벽으로 지어놓은 건물 안은 조용하다. 이 너른 공간이 무척 맘에 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루프튼제도. 내셔널지오그래픽스에서 꼽은 페로제도보다 낫다고 입모아들 말하는 곳이다. ‘바다위의 알프스’, ‘신들의 영역’ 같은 요란한 수식어도 붙는다. 밖은 영상 10도 정도 된다는데 섬바람 때문인지 미열이 있는 나에게는 무척 춥게 느껴진다. 앞으로의 긴 여정을 위해 체력을 소비할 수 없어서이긴 하지만 이곳 관광을 포기하고 숙소에 갇힌 내가 어찌 보면 바보 같다. 하지만 글쓰며 사는 삶을 원했으니 나에게는 이 시간도 나쁘지 않다. 내 존재의 이유를 여기서 찾는 이유가 이런 만족감 때문 아닐까.

어제 리셉션에서 나를 맞아줬던 10대중반의 금발소녀가 청소를 하다가 어제 짐 나르는거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이럴 때도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온다. 갓 어린애 티를 벗어난 여린 소녀한테 큰 짐을 맡길 생각도 없었고, 쏟아지는 손님맞이에 혼자서 정신이 없기에 내가 알아서 간다고 소리 지르고 왔는데 못들었나 보다. 그 일만 해도 이 소녀에게는 얼마나 큰일일텐데. 자기가 같이 가준다고 하는 것이다.

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자란 이 소녀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 내 마음까지 정화되는 것 같다. 내가 오늘 아파서 관광을 못갔다고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니 한참 시간을 들여 인터넷 검색을 해서 꼼꼼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런 어린아이다운 맑은 심성이 우리를 구원한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