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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되어 아이의 눈으로 그림 그린 '착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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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되어 아이의 눈으로 그림 그린 '착한 화가'

음양으로 보는 미술사(2회)-동심의 화가 장욱진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 같은 삶 산 화가 장욱진

해,달,별, 사람 어우러진 단순함이 장점
순수하지 않고 이악스러운 파블로 피카소



▲ 장욱진 작 '날이 샜다'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듯이 화가들 중에도 착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착한 사람은 실제로는 착한 듯 보이려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선이 꼭 선일 수 없는 것과 같이, 악도 꼭 악이라 확신할 수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야단치고 질서를 가르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참기 어려운 고역이 될 수도 있으며, 선이라는 포장 아래 자라서 악을 공공연히 행할 수도 있는 기틀을 만들어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 스페인 출신의 서양화가 호안 미로(1893~1983), 서양화가 김점선(1946~2009) 등의 그림은 아이들을 주제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이들이 되어 아이들의 시각으로 그린 그림이다.

장욱진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화면은 색깔이 그다지 현란하지도 않고, 전체가 뚜렷한 구별 없이 황토색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풍경인 듯 인물인 듯 주제조차 불분명하고, 시골길, 해, 달, 별, 그리고 단순하기 이를 데 없이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그림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오히려 그럼으로 해서 잘 그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대단히 훌륭한 그림이라 여겨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이라면 이보다 더 월등하고 더 재미있게 그릴 수도 있고, 더 보기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보다 보기 좋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화가가 화폭에 담는 어떤 의지로서의 결과물로 봐주기는 어렵다.

▲ 장욱진 작 '봄아 어서 오너라'장욱진은 수십 년 간에 걸쳐 여러 번의 자기 내적 변화과정을 거쳐 그 나름의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그의 삶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화가로서 장욱진과 대조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피카소가 좋은 예일 수 있겠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순수한 척 하지 않고 이악스럽게 살았다.

피카소가 옳은 모습인지, 장욱진이 옳은 모습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미술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피카소가 유럽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어떤 조형적인 패기가 있었다면, 장욱진은 그러한 조형적 패기를 갖춘 치열함이 아니라 본인의 인생 전체를 온전히 걸었을 뿐이다.

대학 시절 읽은 장욱진의 수필 한 구절엔 이런 것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졌으나 무념무상의 상태여서 그런지 넘어진 충격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러한 일단의 모습이 바로 장욱진이다.

그의 작품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서울대 교수로서 많은 후배를 길러내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훌륭한 경력 없이 단지 작품만으로 살았다면 그는 그저 평범한 한 촌로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그와 비슷한 그림을 그려낸 중광이라는 화가가 그 자신의 부족한 경력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기행을 일삼았는지를 보면 된다. 그러한 기행으로 중광은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그의 사후에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 김점선 작 '무제'김점선 화가는 잠깐 동안 필자와 친구로 지냈다. 함께 전시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는 스스로 단순해지고 싶어했다. 대학 졸업식 때 관을 메고 들어가는 퍼포먼스로 자신을 작가로서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끝내는 아동화와 같이 약화되고 단순화된 소재를 화면에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김점선은 그냥 화가이고 싶어 그림을 그렸다. 몇 날 며칠 머리도 감지 않고 산발한 채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젊은 날 미국 유학이 좌절되었을 때의 상처 때문에 현대 미술, 특히 서양 미술에 대해 일종의 환멸을 가지고 있었다. 겨우내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새 꽃이 만발한 화단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은 그때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 때문에.

김점선은 무척 밝으면서도 예쁜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다. 그것은 아이들처럼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특징만을 잡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회화라기보다는 일종의 도안화나 스케치, 약화(略畵) 등에 가까워 보인다. 무엇보다 그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김점선과 같은 화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김점선은 그런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받아주었다.

자기와 비슷한 류의 그림들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해 좀 더 독창적인 화면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아파트 벽이나 아이들 방에 걸어도 정말 예쁜 그림이 되도록 애썼다. 하지만 김점선의 그림은 아동처럼 그리기 보다는 그런 단순하고 예쁜 그림을 찾는 이들의 요구에 충실한 장인의 모습을 갖추려한데서 나왔다.

반면 장욱진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의 작은 오두막에 틀어박혀 무위도식 내지는 무위자연하며 틈틈이, 양심상 마냥 놀 수만은 없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선비 취향의 기질로 살았다. 유유자적한 선비 정신으로서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를 닮아보려 했던 단순하지 않은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인 사유에서 오는 영감에 대한 표기에 가까운 집합체인데, 비교하자면 스페인의 유명 화가 호안 미로와 같은 선‧면‧구성에 의한 화면적 조형이라기보다는, 폴 클레(Paul Klee)의 우주와 사물의 확장 또는 축소로 나타나는 이미지와 비슷한 한국적 세계관과 자연관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의 일생이란 어릴 적에는 자기중심적으로 양기를 중심으로 살지만, 점점 자라면서 음양이 얼마쯤 조화를 이룬 채 살다가,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져서는 양기가 오른 노인으로 살아간다.

그림에서 양기가 오른 상태의 붓질이란 결국 조급함과 과격함을 함께 띠고 있게 마련인데, 장욱진의 그림에서는 오히려 말년에 가까울수록 더 안정되고 느린 붓질로서 페인팅이라기보다는 드로잉에 가까운, 문인화에 있어 사군자를 치는 듯한 모습의 화면을 보여준다는 것에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서양화가 중 문인화에 능한 선비에 근접한 화가라 할 수 있다.

사실 서양화의 구상화와 동양화의 실경산수 가운데 사물을 묘사할 때 이루어지는 빠른 붓놀림의 중첩과 비교해본다면, 장욱진의 그림은 몇 번 붓질하지 않고도 느긋하고 느린 손놀림에 의한 안정적인 음기로써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형상을 화면에서 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린아이 같은 조급함이 아니라, 선비의 넉넉함이 화면을 채우고 있어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다른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이 되고 있다.

/글 한오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