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글로벌 반도체 전쟁(상)] 미국, 자체제작 선언 '반격의 서막'
[글로벌 반도체 전쟁(하)] 유럽·중·일 변화와 한국 생존전략
최근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디지털 기반 산업 전반에 파급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미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다 좌절을 겪은 중국, 그동안 민간에 맡겨 두었던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경쟁적으로 반도체 자체 생산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반도체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전후로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촉발된 각종 전자기기의 사용량 급증 등 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4차 산업 변화의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코로나19 이후 사회구조 변화에 대해 4차 산업 혁명의 가속화를 예언했다. 디지털 지원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미국의 생산성이 2020년 2분기 10.6%, 그 이후 3 분기 4.6% 증가했다면서 과거 혁신 기술이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던 것에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위기는 AI와 디지털화와 같은 영역에서 전환을 몇 년 단축해 관련 산업 전반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맥킨지는 진단했다.
특히 맥킨지는 온라인 소매의 폭발적 증가로 미 기술기업들의 성장과 투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재택근무 확산 등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 온라인 구매의 속도전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재조정 등 예상보다 미래가 빨리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 모든 전자 장치의 '두뇌'인 반도체의 부족을 초래했다. 완성차는 물론이고 전자 기술이 많은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가동 중단, 아이폰12 출시 2개월 연기 등이 겹치면서 반도체에 대한 기업, 민간, 정부 모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0년 국내 총 수출 5382억 달러 가운데 반도체는 992억 달러로 대략 18.4%를 차지했다. 단일 품목으로 단연 1위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왜 자체 반도체 생산력 강화하나?
우선 미국이다. 미국 반도체협회 보고서를 보면 자체 생산력 강화에 대한 그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미국 반도체협회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 1등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독점적 반도체 기술 보유 덕분이다. 반도체 시장 전반에 있어 미국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반도체 시장 규모에서 50% 가까이를 차지하는 절대강국이다.
그런 미국이 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일까?
그동안 미국은 반도체 산업 설비와 인력에 대한 강력한 투자를 기반으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최근 대만과 한국의 추격으로 미국과 대만・한국간 기술격차가 2010년에는 2년에서 2019년 현재 거의 사라진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1년 거의 30개에 달했던 첨단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드는 많은 비용과 고급 기술 인력난 등의 어려움으로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기술 기업에서 대만과 한국이 1위로 자리 잡고 있는 데 위기감을 표하고 있다.
생산 투자 규모도 한국(31%)이 미국(28%)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고 2019년 기준으로 반도체 전체 생산 가운데 12.5%만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79%가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데다 2030년에는 더 심해져 아시아 비중이 83%로 증가할 것이라는 데 대해 공급망 차질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협회는 2020년 6월 미 정부에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타격, 반도체산업 내 혁신 비용 증가, 아시아국가 추격 등을 고려해 제조, 인력, 무역, 지식재산권 분야에 대한 강력한 지원 확대를 건의했다.
미국 반도체협회는 ▲반도체 기술 개발 관련 정부 투자 50억 달러 증액, 소재과학, 컴퓨터공학, 응용수학 등 반도체 R&D 연방투자 2배 확대 ▲첨단 로직 파운드리, 첨단메모리, 아날로그 반도체 시설 미국 유치 지원 프로그램 신설 ▲STEM 졸업생이 미 반도체 산업에 근무하도록 이민제도를 개혁하고 2029년까지 STEM 교육투자 50% 확대 및 졸업생도 두 배 확대 등 인력 확보 ▲무역・지식재산권 관련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포함해 자유무역협정을 승인하고 현대화해 지식재산권 보호 및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등 4개 분야에 대해 아주 구체적 제언을 담아 정부에 전달했다.
한편 2020년 6월 동 보고서가 생산된 시기에 초당파 의원들이 미 의회에 '반도체 지원을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미국 반도체 생산 촉진을 위한 연방정부 지원책(CHIPS for America Act)' 제하로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수준 세액 공제, 반도체 인프라 및 R&D에 총 228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인텔의 태도 변화다. 그 변화를 주도하는 인텔의 CEO들이다.
최근 파운드리 사업에 20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한 패트릭 폴 겔싱거(60) 직전의 인텔 CEO 밥 스완은 지난 해 11월 바이든 당선자에게 반도체 굴기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그는 당선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을 위한 국가적 제조 전략'을 촉구했다.
미국에 도발하는 중국이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제조 산업을 구축하기 위해 1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 신생 기업이 미국 최고의 반도체 기업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다고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은 미 반도체 제조 역량 손실이 경제 및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제하고 '다양하고 세분화된 반도체 투자'라는 특단의 대책을 건의했다.
그가 보낸 공개서한에는 ▲기존 반도체 제조 공장 지원 및 반도체 전 분야 신규 공장 건설에 수십억 달러 투자 ▲미국산 반도체 구매 장려 및 외국 제조회사에 대한 처벌 강화 ▲반도체 기술 부서를 구축하는 대학에 인센티브 제공, 숙련된 전문가 양성 등을 담고 있다.
이후 지난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자동차 가동 중단 등을 목도하며 반도체 공급망 전면 재검토를 담은 행정명령을 하달했다. 6월경 나올 것이라는 결과물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전대미문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한편 최근 인텔 CEO 패트릭 폴 겔싱거가 200억 달러 투자를 밝힌 것은 이러한 환경 변화를 위기에 놓인 자신들의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폴 겔링거는 18세 때부터 인텔에서 근무했다. 인텔에 근무하면서 산타클라라 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1985년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 직접 인텔 80486 프로세서를 설계한 전문가다.
현재 월가는 인텔에 대해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임을 인정하면서도 AMD와 엔비디아 등 강력한 도전자들의 추격과 스마트폰 시장 경쟁력 차질, 최첨단 10나노 공정 관련 문제 등을 지적하며 신중한 투자를 주문하고 있다. 인텔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엿보인다.
미국의 한 반도체 전문가는 대통령께 드리는 인텔 CEO의 공개서한이나 200억 달러 투자는 어쩌면 미 반도체협회 등의 숙원을 표출한 측면도 있지만 인텔 자신만의 힘으로 글로벌 반도체 1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를 반도체 수요 부족이 일으킨 전 국민적 관심을 환기해 기업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전환해 달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이상 일련의 과정을 보면 미국의 반도체 굴기는 단지 코로나19가 불러일으킨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미 반도체 산업 전반의 목소리가 시차를 두고 강화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일시적인 바람만이 아니고 이들의 요구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법안으로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반에 지각 변동은 확실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