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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과 ‘헤어질 결심’이라면 "레그테크 하라!"

오스템부터 11개월간 67건, 5730억원 사고 터져
IT로 본인확인, 자금세탁방지, 이상거래감지 등
700억대 횡령 혐의를 받은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올해 5월 6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700억대 횡령 혐의를 받은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올해 5월 6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횡령 범죄가 늘면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6일 "최근 대형 자금횡령 사건이 발생하는 등 부정위험에 대응하는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 제기되고 있다"며 '자금횡령 방지를 위한 체크포인트' 등을 참고해 부정위험에 대한 내부통제 현황을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범규준에 따른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운영,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등 외부감사에 철저히 대비, 자금횡령 등 부정 예방·적발 위한 내부통제 등이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횡령 범죄를 줄일 효과적 대책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시 감시 확대, 시스템 수준 제고, 직원 윤리교육 강화, 순환근무제, 명령휴가제 등 기존의 자율에 근거한 대책의 답습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보기술(IT)로 금융 규제 및 감독 업무를 자동 처리하는, 레그테크(Regulation + Technology)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 10월 발간한 ‘분기별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재산범죄 16만1879건 중 가장 많이 발생한 범죄 유형은 사기(8만6140건)였고 절도(4만6373건), 횡령(1만4111건), 손괴(1만4019건), 배임(1156건), 장물(80건) 순이었다.
올해 2분기 횡령 발생 건수는 1만4111건으로 지난해 동기(1만2648건) 대비 11.6% 증가했다. 1분기 역시 1만3458건으로 지난해 1분기(1만394건)에 비해 29.5%나 늘었다.

법조계와 경제계에서는 횡령이 늘어난 이유를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횡령 증가 원인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침체가 본격화되면서 횡령과 사기 등 재산범죄도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횡령 증가 원인과 관련 “사회적으로는 최근처럼 주가 하락, 코인시장 붕괴, 부동산 침체 등으로 개인들의 범죄 유인이 커져가고 한탕주의가 팽배해진 사회 분위기도 범죄 유발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무려 2215억원 횡령사건이 발생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은행에선 지난 4월 700억대 횡령사건이 터졌다. 이밖에도 대명종합건설 사주의 419억 원 횡령, 계양전기 직원의 회삿돈 246억 원 횡령, 강릉 사천새마을금고 직원 2명의 129억 원 힝령, 강동구청 7급 공무원의 공금 115억 원 횡령 등 기업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횡령사건들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현재 사회 분위기나 불황 등도 있지만 횡령을 저지르기 쉽고 적발돼도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상황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우리은행 횡령사고 원인을 보면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10년 이상 같은 부서에서 일하면서 같은 업체를 맡았다. 그 직원은 명령휴가 대상도 아니었고 약 1년간 파견을 거짓 보고한 뒤 무단 결근했다.

공문 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발신 공문의 내부공람도 없었고 전산등록도 되지 않았다. 통장과 직인 관리자도 분리되지 않아 수기 결재문서를 사용했다. 출금전표와 대외발송공문이 결재 내용과 달랐지만 그대로 직인이 찍혔다. 출자전환주식의 경우 출고신청자와 결재 원 타임 패스워드(OTP) 관리자 분리가 돼있지 않았다.

은행 여‧수신 서류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자점검사도 없었다. 횡령 직원의 행동은 이상거래 모니터링 대상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최근 횡령 등 재산범죄에 대해 예전보다 무거운 형량을 구형하고 있다. 이것은 재산범죄 처벌을 강화하라는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9일 열린 30억대 사기 혐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무려 징역 17년을 구형했고 지난 10월11일 머지플러스 사건 결심 때에는 권보군 최고운영책임자에게 징역 14년이 떨어졌다.

그래픽=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그래픽=뉴시스

업계 전문가들은 횡령을 막기 위해서는 ‘건전한 의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3선 감시 체계, 즉 1선은 일선 점포에서 직원 업무가 내부통제 측면에서 이중점검되고 2선은 상시감시 측면에서 이상행동이나 거래들이 적출, 점검돼야 하며 내부감사 측면에서 내부통제 준수 여부를 지켜보는 것이 3선”이라며 “그러나 현실은 단계별 내부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각종 이상감시 시스템의 정교화도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로 완벽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내부감사 측면에서도 특정 정보 없이 범죄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그래서 일선에서 상시감시 강화, 시스템 업그레이드, 직원교육 강화 등의 노력과 함께 순환근무제, 명령휴가제 같은 제도적 부분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인들은 이러한 내부통제가 조직문화 안에서 잘 버무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평판 리스크가 중요한 만큼, 누구를 꼭 범죄자로 의심해서가 아니라 내부통제 측면에서 ‘건전한 의심’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욱희 한국고용정보원 비상임감사는 “지난해 12월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고를 시작으로 올해 10월 말까지 불과 11개월 동안 언론 보도된 횡령 건수가 무려 67건, 5730여억 원에 달했다”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위조, 변조, 공모를 통해 내부통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일이 잦다. 철저한 직원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서 위조를 통한 횡령 시도가 잦다"며 " 장부와 실물을 반드시 대조하고 현금 등의 감사 대상 물품은 장부에 기록하며 은행 예금잔액증명서 같은 경우 발급 은행에 위조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횡령 범죄 관련 모든 은행 계좌이체를 대표나 관리자가 은행 앱에서 건별로 승인해야 이체가 되는 시스템만 활용해도 상당 부분 막을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횡령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덕태 고등지능원 대표는 “거래시 신분증, 도장 등을 눈으로 확인하는 전통 화폐와 증권은 계속 횡령, 배임, 부실 회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신원인증 기술을 사용하면 신분증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진위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IT업계와 금융권에서는 레그테크(Reg-Tech)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레그테크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머신러닝 등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회사의 규제 이행 및 당국의 감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말한다.

핀테크가 금융서비스의 편의성 및 보안성 개선을 강조하는 기술이라면 레그테크는 금융회사의 업무처리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성 개선이 목적이다. 우선 활용 가능 영역이 넓다. 대표적으로 고객 본인 확인(KYC), 자금 세탁 방지(AML), 이상 거래 감지 시스템(FDS), 고객 데이터 유출 방지, 시장감시 등이 모두 레크테크에 속한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선 전세계 레그테크 시장 규모가 2026년 195억달러(약 25조3305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범죄 발생이 늘면서 레그테크 시장의 성장이 촉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은행권은 레그테크 도입에 적극적이다. 올해 직원의 대형 횡령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하나은행은 레그테크 기반의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한, 차세대 국외점포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완수했다. 우리은행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불완전판매를 잡아내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신한은행은 정보보호 관리체계와 현장점검업무를 전산화했다.

하지만 레그테크 활용화를 위해서는 규제에 어긋나는 상황이 초기 단계에 감지될 수 있도록 당국과 기업 간 정보교류가 필요한데 관련 전문인력 부족과 대규모 투자 필요성으로 인해 여타 회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AI를 활용해 불완전판매와 사기행각을 잡아내는 레그테크를 연구 중이지만 진척이 더디다는 입장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및 금융거래 정보, 제재 대상 명단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려면 민관 협업이 필수적인데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간 정보공유에 필요한, 자료 저장·공유 방식과 통신 프로토콜 등까지 합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호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luckykh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