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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2] 거북선 그려진 지폐‧백사장 사진으로 차관 도입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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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2] 거북선 그려진 지폐‧백사장 사진으로 차관 도입 성공

정주영 창업자 일본 기술‧차관 도입 실패 후 유럽으로
영국서 ‘데이비스’ 만나 바늘구멍 보다 좁은 가능성 인식
롱바톰 회장과 담판서 거북선 그려진 500원 지패 제시
백사장 조선소 부지도 함께 보여부며 설득해 성공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롱바톰 애플도어 회장과 담판을 짓는 자리에서 내놓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짜리 지페.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롱바톰 애플도어 회장과 담판을 짓는 자리에서 내놓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짜리 지페. 사진=현대중공업
일본에 조선소 합작과 투자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정주영 현대중공업 창업자는 노력에 실패하고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실직고했다.

“여기저기 쫓아다녀 봤지만 일본이나 미국이나 아예 상대를 안 해줍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김학렬 부총리에게 지시했다.

“앞으로 정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고 해도 전부 거절하시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정주영 창업자도 그냥 입 다물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한참 흐른 뒤 대통령이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정주영 창업자에게도 권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안 피운다’며 사양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불을 붙여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한참 있는데 침묵을 깨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과 경제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못하겠다고 체념하고 포기해요? 처음에 하겠다고 할 때는 일이 쉽다고 생각했어요? 조선소는 꼭 해야만 하오, 정 회장!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성원을 할 테니까 다시 나가봐요. 일본과 미국으로 다녔다니 이번에는 구라파로 나가 찾아봐요.”

1971년 현대가 스코트리스고우로부터 임대해 온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설계 도면.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1971년 현대가 스코트리스고우로부터 임대해 온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설계 도면. 사진=현대중공업
청와대에서 나온 정주영 창업자는 참모 둘을 데리고 유럽으로 갔다. 1971년 여름 무렵이었다.

향한 곳은 영국이었다. 그해 봄 영국 런던에 현대건설 지점을 설치해 놓고 정희영 상무와 백충기 부장을 보내놨다. 장차 조선사업에 필요한 기술과 기자재 도입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앞서 기술과 차관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데이비스’라는 미국인 국제금융 주선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었던 그는 ‘우선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를 공급할 회사를 정하고, 그 회사가 거래하는 은행을 움직이게 하라’고 조언해줬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발한 방법이었다.

데이비스는 영국의 ‘애플도어(A&P Appledore)’라는 조선 기술회사와 스코트리스고우(Scott Lithgow)’라는 선박회사를 소개했다. 그래서 정주영 창업자가 영국으로 간 것이었다. 1차 목표는 차관이었다. 설계나 용역이 급하지 않았다. 돈줄을 잡는 것이 너무도 절실했기에 애플도어에 도착했을 때도 기자재 상담은 뒷전이고 마음은 오로지 차관 성사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데이비스의 말이 정확했다. 애플도어의 롱바톰(Longbattom) 회장이 영국의 버클레이은행(Barclay’s Bank)을 움직일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에 정주영 창업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주영 창업자는 애플도어와 만나기 전에 일본은 물론 이스라엘의 기술 회사와도 접촉을 했었고, 서독의 아베게세조선사와는 기술 공급·제휴까지 거의 합의했다가 그만두었다. 이유는 시간 때문이었다. 서독 사람들은 조선소의 레이아웃 작성까지 1년 반에서 2년의 시간과 기술료 580만 달러를 요구했다.

돈이 비싼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급한 성격의 정주영 창업자로서는 레이아웃이 나오기까지 1년 반에서 2년이나 기다릴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가 생각하는 조선소의 건설 추진 속도와도 맞지 않았다. 데이비스가 연결시켜준 애플도어는 영국의 몇몇 조선소에서 뛰쳐나온 유능하고 의욕적인 젊은이들 몇이 만든 기술 회사였다.

“기계·건축·토목 분야에서 유능한 한국 엔지니어 몇 사람만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서 6개월 안에 레이아웃을 완성시켜 주겠습니다.”

정주영 창업자에게 그들의 제안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조선소 레이아웃을 완성시킨 다음에 기술 문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영국 글래스고에 있는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에서 27만t급 유조선을 만들고 있는데 그곳에서 ‘현대’ 사람을 6개월씩 2차례에 걸쳐 훈련시켜주겠다고 했다. 이것이 현실화돼 1차로 전갑원·이정상·김형벽을 스코트리스고우 조선소로 보냈고, 2차로 백충기와 또 다른 기술자를 보냈다.

1971년 9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앞줄 맨 외쪽)가 영국 버클레이즈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서명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1971년 9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앞줄 맨 외쪽)가 영국 버클레이즈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서명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기술 협조 계약을 마무리 짓고는 차관 도입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서 곧장 런던으로 가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영국 버클레이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정희영 상무가 앞서 교섭했으나 반응이 별무신통(別無神通)한 은행이다.

정주영 창업자를 만난 롱바톰 회장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업계획서를 보니 25만t급 배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혹시 그만한 배를 본 적이라도 있습니까?”

정주영 창업자로서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냥 봤다는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럴 때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거북선 사진이 도안돼 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그 지폐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회장님은 혹시 400년 전인 16세기에 만든 철갑선을 본 적이 있습니까?”

롱바톰 회장은 거북이 그려진 지폐를 들여다보며 관심을 보였다. 정주영 창업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게 우리의 선조들이 16세기에 만든 거북선입니다. 영국에서 철로 배를 만든 것은 19세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보다 300년 앞선 16세기에 지금의 유조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선진 기술이 필요한 철갑선을 만들어 침략해온 일본을 무찔렀습니다. 영국보다 조선의 역사가 300년이나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후의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 현대도 자금만 확보된다면 훌륭한 조선소와 최고의 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롱바톰 회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정주영 창업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롱바톰 회장이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거북선을 보더니 아주 진지해져요. 자기네가 해양대국이기 때문에 강선은 세계 최초인 줄 알았다면서 3세기나 뒤늦게 강선을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더구나 한국한테 뒤졌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역사적 사실은 우기지 않고 인정을 해요. 그게 신사의 나라 사람들이에요.”

롱바톰 회장은 결국 ‘한국의 현대건설은 원자력발전소를 시공하고 있을만큼 기술력이 뛰어나고, 발전 계통이나 정유 공장 건설에도 풍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형 조선소를 만들어 큰 배를 건조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내용의 추천서를 버클레이은행에 보내주었다. 그리고 정주영 창업자는 사업계획서와 스코트리스고우에서 제작한 선박 도면을 버클레이은행에 제출했다.

서류를 접수한 버클레이은행 관계자는 아주 친절하게 계획서를 두고 가라고 했다. 충분히 검토 후에 연락을 하겠다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조선소를 만들고 배를 건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러자 정주영 창업자는 그게 면접하는 것인 줄 알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얼른 대답을 했다고 술회했다.

“조선소라는 게 별거냐? 도크라는 건 목욕탕 욕조를 크게 만드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고, 선박 건조는 커다란 철 그릇 속에다가 철로 만든 구조물 빌딩을 하나 세운다 생각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렵겠느냐. 우리가 빌딩 한두 채 지어본 게 아니다.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재미있는 말씀이라고 하더군.”

<자료: 현대중공업>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