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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설은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 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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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설은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 쇠었다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정월 초하루 ‘설’에 얽힌 씨줄날줄

설 동요 속 ‘까치설날’은 양력 12월 22일 경 ‘동지’ 의미

집안의 재복 다스리는 조왕신에게 엿과 찰진 떡 바쳐


설 차례가 끝난 후 가까운 친지나 이웃을 찾아 세배를 한다. 사진은 뉴잉글랜드 한인학교에서 설을 맞아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설 차례가 끝난 후 가까운 친지나 이웃을 찾아 세배를 한다. 사진은 뉴잉글랜드 한인학교에서 설을 맞아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
무엇인가 다시 시작 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며 활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여러 ‘시작’을 정해놓고, 그 시점에서 지난한 삶을 추스르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월 초하루 ‘설’은 우리 생활과 뗄 수없는 시작 중에 시작이었습니다.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원을 우리는 중국 ‘하나라’에서 찾습니다.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 머리령>에 보면 달력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오늘날의 문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기니 해와 달과 별이 빛이 난다. 해와 달은 때맞추어 돌고 별들은 제 갈 길이 있어 일 년 삼백 육십 오 일에 제자리로 돌아오니 동지, 하지, 춘분, 추분은 해가 도는 길로 알 수 있고 상현, 하현, 보름, 그믐, 초하루는 달 모양으로 알 수 있다. 지금 쓰는 역법은 하나라와 한 법이다. 따뜻하고 덥고 서늘하고 추운 기후 사계절에 딱 맞는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말하는 역법은 달의 음력과 태양의 양력을 합친 <태음태양력>이었으며 그냥 줄여서 ‘음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여 한 해 제천행사인 영고·동맹·수릿날·무천 등이 시행되었을 것이고 그 외에도 많은 기념일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특히 한해의 시작을 나타내는 정월 초하루는 분명히 있었겠지만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제사(祭祀)를 지냈다.>라는 내용이 최초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부엌에는 재복을 다스리는 조왕신을 모셨다.
부엌에는 재복을 다스리는 조왕신을 모셨다.
한편, 한 해의 첫날을 일컫는 ‘설’은 그 명칭이 언제부터 쓰였고,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이렇다 할 정설은 없고 추론만 분분합니다. 단지 개인적으로는 설이 ‘처음’, ‘으뜸’, ‘시작’의 뜻이 내포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갖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드는 의문은 과연 ‘설’이 첫 날 즉 단 하루의 기간이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금은 분명히 1월1일 하루만을 설이라 하지만, 예전에는 동지에서부터 섣달그믐을 합친 것을 설로 정해 놓고 쇠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4절기 중 하나인 <동지>는 양력 12월 22일경으로,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양력의 새해 첫 날인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며 명절로 삼았지요. 「동지를 지나야 한 살을 먹는다.」 또는 「동지 팥죽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속담을 보더라도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 동요로 자주 부르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에요”에서 까치설날이란 바로 동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동지는 분명 작은설이며, 한자로는 <아치 亞稚>로 불렀습니다. 아치가 시간이 흐르면서 ‘까치’로 치환되어 까치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까치설은 설의 전날이 아닌 것이지요. 혹자는 신라 소지왕을 살린 까치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크게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아무튼 작은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습니다. 팥이 악귀를 물리치는데 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동지에 가장 비중을 두는 행사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서 이웃들에게 서로 나누어 주던 풍습이었습니다.

악귀를 물리친다며 동짓날 먹었던 팥죽.이미지 확대보기
악귀를 물리친다며 동짓날 먹었던 팥죽.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12월 마지막 날이자 설의 전날입니다. 이날은 아침부터 방, 뜰, 부엌, 곳간, 변소 할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불을 밝혀 놓습니다. 집안의 재복을 다스리는 ‘조왕신(부엌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조왕신을 보통 부엌에 모시는데,
이 신은 음력 12월 23일에 옥황상제에게 올라가서 자신이 거처하는 집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을 일일이 일러바치고 그에 상응하는 복과 불행을 옥황상제로부터 받아가지고 그믐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집을 청소하고 제사음식도 올리는 것이지요.

이것과 관련하여 재밌는 풍습으로, 조왕신이 하늘로 오르는 12월23일에 특이하게 제수용품으로 엿과 찰진 떡을 바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끈적거리는 엿이나 떡을 먹고 조왕신의 입이 들러붙어 옥황상제에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이었답니다. 아무래도 잘못한 점이 더 많았나 봅니다. 아무튼 조왕신을 맞이하는 제사를 마치면 여자들은 다음날의 설음식에 다시 정신없었고, 남자들은 가까운 이웃 친지를 찾아가서 세배를 하게 되는데, 이런 세배를 ‘묵은세배’라 했습니다. 묵은세배를 통해서 지난 한 해 기뻤던 일은 축하해주고, 아쉽고 섭섭했던 일들은 서로 화해하는 자리로 삼았던 것이지요. 참으로 선조들의 정겨움과 넉넉함이 새삼 부러워집니다.

그믐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하면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잠 안자기’로 대신하지요. 제야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전설을 둘러대며 밤새도록 윷놀이를 하거나 지난날의 이야기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러나 그믐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무엇보다 ‘제야의 종치기’였습니다. 원래 ‘제야의 종’은 사찰에서 그믐 밤(제석)에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108번 타종을 하던 불교식 행사에서 유래였습니다. 다시 말해 섣달 그믐날 밤에, 지난 1년간 묵었던 모든 어둠(불행, 근심)을 걷어내고 새로운 해를 맞도록 하는 불교의식이었지요.

그런데 이 행사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도성 성곽의 문들을 열고 닫는데 이용되던 보신각 타종과 연계되며, 이날 밤 만큼은 사람들이 종 주위를 에워싼 가운데 33번의 종을 치며 묵은해를 떠나보냈습니다. 타종이 끝남과 동시에 가장 바빠진 사람은 다름 아닌 ‘복조리 장사’였습니다. 대개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일찍 살수록 좋으며 집안에 걸어두면 복이 담긴다고 믿어서 자시부터 복조리를 사두려 하였습니다.

날이 환해지기 시작하면 거리에 나가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 운수를 점친 것도 설에 볼 수 있던 모습입니다. 이를 청참(聽讖)이라 하는데, 이때 행운으로 치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거나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해도 정월 대보름에 구제받을 방법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설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라는 공동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들 간의 확인도 그러하지만 조상들과의 유대감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아침 일찍 설빔을 하고, 형제와 가까운 친족이 전부 종가 집에 모여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茶禮)의 대상은 돌아가신 조상 가운데 자신으로부터 4대까지 해당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자의 집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상으로 간단히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순서를 따져가며 세배 드리러 다닙니다. 지금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통상의 세배 인사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과세 잘 보내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대세였습니다. 과세란 ‘지난 한해’의 뜻입니다. 세찬으로 내오는 떡국은 희고 긴 가래떡이 주재료이지요. 그런데 떡의 흰색은 ‘무병’을, 긴 모습은 ‘장수’를 의미한다하여 설음식으로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조상의 무덤을 찾아 새해를 맞이했다고 고하는 한편, 정초 삼재(三災)를 물리치거나 야광귀를 쫒는 부적을 문에 걸어두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공식행사가 마무리 되면 이웃들과 술자리를 만들어,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새해 계획들을 서로 응원해주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이나 여자의 경우에는 윷놀이·종정도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모처럼의 민속놀이를 하며 마을을 웃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세상이 변하여 예전의 ‘설’ 모습은 차츰 사라져 가지만, 그래도 해마다 이맘때면 고향을 찾는 우리네 설 모습에서, 일찍이 이 땅을 살다간 조상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