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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산업은행 이전 반대와 총파업, 길 잃은 공공기관의 자율·책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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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산업은행 이전 반대와 총파업, 길 잃은 공공기관의 자율·책임경영

금융증권부 이종은 부장
금융증권부 이종은 부장
6년 만에 금융노조의 총파업이 지난 16일 시작됐다. 주최 측 추산 약 3만명(경찰 추산 1만3000명)의 노조원이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청 사거리까지 한 쪽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한 목소리를 냈다.

이날 총파업에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반대', '금융 공공기관 혁신안 중단' 등이 거론됐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소속 노조원들의 파업 참여율도 다른 시중은행들보다 높았다. 산업은행의 경우 전체 직원 약 3400명 중 1600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전체 노조원(약 2100명) 기준 76.2%의 참여율을 보였다. 산업은행 노조는 총파업 가두행진에서도 선두에 나서면서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결사 반대' 등의 구호 등을 외쳤다. 1시간 가량 진행된 가두 행진도 주도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그동안 산업은행이 거래해 온 일부 우량 거래처를 시중은행에 이관할 것으로 보고 우려한다.

총파업 당일 국회 기획재정위소속 김주영 의원은 산업은행이 작성한 '우량·성숙단계 여신 판별기준 시나리오' 문건을 확보해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보유한 전체 영업자산 243조7000억원 중 이관 대상이 되는 자산 규모만 106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신용도가 최고 수준인 우량기업만 골라내 최대 18조3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자산이 민간은행에 넘어 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김주영 의원실은 산업은행은 물론 기업은행에서도 IBK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전체부서에 '정책금융 역할 재편' 관련 문건 작성을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주영 의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는 분명히 공공기관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되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 기관 혁신의 내용을 보면 이미 법률 조항은 사문화(死文化)됐다"며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국책은행의 우량여신 매각은 공공기관 민영화를 넘어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위는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에 강석훈호가 출범한지 100일이 넘었지만 '부산 이전'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 구조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관련, 대내외적으로 부정적 의견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 중심의 금융 클러스터 정책이 분산 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위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당국과의 공조가 쉽지 않은 점,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따른 협력사들도 부산으로 이동해야 하는 등의 업무상 비효율성만 커진다는 부정적 견해가 주를 이룬다.

필자도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간다고 지역균형발전이 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에 반대한다. 그간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부산으로 옮겨 왔음에도 자산운용·증권·보험사 등 민간 메이저 금융사들의 이전은 사실상 없었다.

특히, 산업은행 직원들의 퇴사가 늘어나며 인재들만 유출되고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부산 이전 갈등으로 앞서 1년동안 퇴사하는 인원에 맞먹는 40명의 인원이 상반기에 이미 퇴사했다. 7~8월에도 20명 가량이 더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산업은행 수장이었던 이동걸 전 회장도 재임 당시 "산은의 지방이전은 진보가 아닌 퇴보다"며 "산은의 지방이전은 금융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산은이 금융경제 수도인 서울에서 전체를 아우르며 전국의 균형적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산업은행은 명실공히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휘하고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주력 산업들이 무너지지 않게 지원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은 국책 은행이다. 대부분의 기업 본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가운데 산은만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지역간 균형 발전이 될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국정 과제이기에 거부할 수 없다는 발언 역시 전형적인 책임 회피적 논리에 불과하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자율·책임경영을 인지하고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귀 기울일 때다.


이종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zzongyi@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