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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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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흐르는 강물처럼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장마가 끝났다고 하지만 하늘을 덮고 있는 먹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간간이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하지만 연일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났건만 여름은 아직도 절정에 다다르지 못한 듯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는 밤에도 식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열대야로 이어지고 있다.

밤낮없이 후텁지근한 폭염의 나날 속에서 내게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 주는 게 해 질 무렵의 천변 산책이다. 저녁나절은 한낮의 찜통더위도 한풀 꺾이고, 잠자던 바람도 살아나는 때라서 물소리를 벗 삼아 천변을 걷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천천히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선 잠시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새로 피어난 꽃들이나 나무 열매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어제와 다른 천변의 풍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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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비가 자주 내린 탓인지 중랑천의 지류인 방학천의 수량도 넉넉한 편이다. 천변으로 가는 길목에 밤나무 한 그루가 제법 큰 밤송이를 달고 있다. 노란 꽃비를 뿌려대던 모감주나무도 어느새 연두색 풍선 같은 열매를 잔뜩 내어 달았고, 모과나무도 열심히 푸른 열매의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내가 더위에 맥을 못 추고 마치 물 먹은 한지처럼 처져 있던 순간에도 식물들은 이렇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물가의 오리들은 이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 곁을 지나가도 멀뚱히 바라볼 뿐 도망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백로는 경계심이 많은 편이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서면 이내 훌쩍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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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의 수중보가 있는 곳은 내가 즐겨 찾는 곳 중 하나이다. 수중보 중간에 물고기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어로가 있어서인지 그곳에선 다양한 물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청둥오리나 민물가마우지, 왜가리, 백로, 원앙 등 먹이를 찾는 물새들이 날아오는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그곳에 이르면 나는 천변의 바윗돌에 걸터앉아 물새들을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곤 한다. 어느 날은 왜가리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있다. 물속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사냥 삼매경에 빠진 왜가리의 모습은 무릇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내게 일깨워 주었다. 이번 여름 큰물이 지나간 뒤 수중보 아래에는 커다란 모래톱이 생겼다. 여름내 물결에 흘러내린 토사가 쌓여 생긴 것이다. 그 모래톱의 주인인 양 왜가리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다.

새들을 관찰하는 일이 따분해지면 근처의 쥐방울덩굴 군락지를 찾아간다.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 군락지는 사라졌던 꼬리명주나비 복원을 위해 구청에서 조성해 놓은 것이다. 주로 개울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쥐방울덩굴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꼬리명주나비의 개체 수도 줄어들어 일부러 군락지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꼬리명주나비와 쥐방울덩굴과의 관계처럼 많은 곤충이 먹이식물을 정해 놓고 거기에만 알을 낳는다. 붉은점모시나비는 기린초, 왕나비는 박주가리, 애호랑나비는 족두리풀, 호랑나비는 미나리 산초나무 탱자나무 등과 같은 운향과 식물을 좋아한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그 먹이식물의 잎만 먹으며 자란다. 쥐방울덩굴에는 사향제비나비도 찾아온다. 꼬리명주나비의 아름다운 날갯짓 뒤엔 쥐방울덩굴의 말 없는 희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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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방울덩굴 군락지를 서성이는데 꼬리명주나비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나비는 잠시 날았다 풀숲에 내려앉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이내 멀리 날아가 버렸다. 폭염의 여름도 곧 지나가고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를 또 가을이란 계절로 데려다줄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