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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고잔동 사건과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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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고잔동 사건과 음식윤리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TV를 통해 ‘역학, 역학조사, 예방의학’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용어들의 뜻은 EBS가 10여 년 전에 방영했던 [명의] “의학탐정, 최전선 임상의사”(2010. 8. 14)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BS 방영 내용 중에 ‘고잔동 사건’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사건을 환경과 음식을 중심으로, 음식윤리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994년 인천광역시 고잔동에서 발생했던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 아니라, 환경사건이다. A회사 공장은 1974년 11월 무렵부터 유리섬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규격별 절단 시 유리섬유 자투리가 생긴다. A회사는 이 유리섬유 폐기물을 공장마당에 야적하다가, 1984년 10월 무렵 이를 흙과 함께 불법으로 매립했다.
A회사는 야적이나 매립 시, 보호망과 덮개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리섬유 폐기물이 공기 중으로 퍼져, 인근 토지와 우물, 집으로 날아왔고, 몸에 닿는 따끔한 감촉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리섬유 폐기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식수로 마시는 우물물에서도 유리섬유 가루가 보일 정도였다. 주민들은 20년 동안 유리섬유가 떠다니는 공기로 호흡했고, 유리섬유로 오염된 지하수를 식수로 마셨으며, 지방종이 생겼고, 위장장애와 피부질환을 앓았으며, 암에도 걸렸다.

이 무렵 B대학 의대 예방의학팀이, 주민 152명을 대상으로 약 4개월 동안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유리섬유 폐기물로 지방종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환경부 주관으로 6개월 동안 역학조사를 다시 실시하도록 결정했다. 이 연구용역을 맡은 C대학 의대 예방의학팀은, 지하수와 주민의 지방종 조직에서 유리섬유가 검출되지 않았으므로, 지방종의 원인이 유리섬유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 중앙환경조정위원회는 주민들의 피해보상 청구를 기각했고, 피해주민들은 1996년 4월 인천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으나, 1999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해, 2002년 10월 30일 원고승소 최종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로부터 학술적 논란이 있더라도 책임소재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 가해자가 무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선례가 생겼다.

그런데 음식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다루지 않은 문제가 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공기로 호흡하고,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데, 여기서 음식을 먹는 문제를 간과했다. 공기와 지하수라는 환경에 집중하다 보니, 음식을 통한 유리섬유 섭취에는 신경을 못 쓴 것이다. 왜 이것이 문제인가? 음식은 공기와 물과 더불어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리섬유 폐기물은 호흡기를 통해서도 체내에 들어오지만, 빗물, 지하수, 흙을 매개로 음식 재료나 음식 자체를 오염시키고, 지하수로 음식을 지을 때 잘 파괴되지 않은 채 음식에 섞여 체내에 들어온다. 이는 음식 내의 유리섬유 존재를 실험으로 측정하면 손쉽게 입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색의 모델 식품(예: 착색 겔, 간장 등)에 지하수를 섞어 유리섬유 잔존량이나 잔존비율을 측정할 수 있고, 동물에게 먹여 소화율을 측정하면 식품이 오히려 유리섬유의 체외배출을 돕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에 대한 비도덕적 훼손 행위는 일상에서 멀게 느껴지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윤리적 기준 제시는, 일상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가깝게 체감하도록 한다. 고잔동 사건은 음식윤리의 환경보전, 생명존중, 정의, 안전성 최우선의 원리를 지키지 않았다. 이를 미리 알았다면, 고잔동 사건 예방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고잔동 사건은 미세플라스틱의 예습이므로, 음식윤리의 관점에서 환경과 음식의 관계를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