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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강아지와 선호 공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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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강아지와 선호 공리주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보신탕 문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와 친구처럼 지냈고, 나이든 지금도 여전히 친구처럼 지낸다. 강아지는 만나자고 전화나 카톡으로 약속할 필요도 없고, 한 달 만에 만나도 오늘 처음 만난 듯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이처럼 한결같이 신실하게 대할까?”

그런데 강아지와 사람에게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에는 생각이 좀 복잡해진다. 가장 비슷한 점은 강아지와 사람이 둘 다 ‘이익’(interest)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늘 이익에 관심을 두고 이익을 추구한다. A가 B보다 더 큰 이익을 주면 A를 B보다 ‘더 좋아’(like better)한다, 즉 ‘선호’(prefer)하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회사 A가 회사 B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면, 더 큰 이익에 대한 선호(preference)를 충족하기 위해, 회사 A로 직장을 옮길 수 있다. 강아지의 경우 맨밥에 뭔가 더 맛있는 것을 섞어준 적이 있으면, 더 큰 이익에 대한 선호를 충족하기 위해, 배고파도 더 맛있는 것을 섞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사람이나 강아지에게 쾌락과 고통을 기준으로 하는 제레미 벤덤의 쾌락 공리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 사람도 강아지도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그럴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월급이 오르는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강아지도 더 맛있는 걸 위해 맨밥을 안 먹어서 혼나는 고통을 안다. 그런데도 사람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힘겹게 토플 학원에 다니고, 강아지도 가장 좋아하는 ‘말린 오리 목뼈’ 간식을 먹기 위해 눈에 샴푸가 들어가도 참고 목욕한다.

이렇게 쾌락을 접어두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더 큰 이익의 선호 충족을 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선호 공리주의라고 부른다. 선호 공리주의에서 좋은 결과란 선호 충족을 최대화하거나, 선호 충족의 방해요소를 최소화함으로써 관련된 모든 사람의 선호를 증진하는 것이다.

선호 공리주의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선호 충족의 개념을 사람에게서 동물로 확대하자면서 동물해방론을 주장했다. 싱어는 사람 사이의 차별인 인종차별(racism)이나 성차별(sexism)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사람과 동물 사이의 차별인 종차별(speciesism)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싱어는 사람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을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고려하자는, 이익 동등 고려의 원리(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을 주장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이익은 이익일 뿐, 그것이 사람의 이익인지 동물의 이익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나의 이익이든 강아지의 이익이든 평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원리가 강아지의 이익을 나의 이익과 똑같이 대우하라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와 침대에서 같이 자고 식탁에서 같이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개집에서 자면서 개밥을 먹는 것이 사람의 이익이 아니듯, 강아지의 이익은 강아지의 수준에서 평등하게 고려하면 충분하다.

한여름 보신탕 문화를 미리 떠올리면서 싱어의 동물해방론을 되새겨 본다. 그동안 선호 충족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강아지들이 동물해방론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면 좋겠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김석신의 밥 이야기, https://blog.naver.com/kimsu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