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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그 길이 그리워…. 나는 지금 영화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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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그 길이 그리워…. 나는 지금 영화관에 간다




"재미있는 영화 안해? 다 같이 보러갈까?"

명절날 아침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으레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사실 영화가 중요한게 아니였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이 어떻게 해서든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알고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주는 귀여운 '꼼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부터 초등학생 손자까지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가족 화합의 장(場)'이었다. 그래서 명절에는 유달리 가족 영화가 많이 개봉됐고 또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가족들 손을 잡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보러간 영화가 '만추'였다.(미안하지만 2011년 리메이크 된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현빈, 탕웨이가 주연한 '만추'가 아니라 1982년 개봉된 김수용 감독 김혜자 주연의 '만추'다)

내용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그렇게 영화 '만추'는 내 인생 영화가 됐다.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극장에서 본 '첫 영화'라는 짜릿함은 지금도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지금은 팔순이 넘어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가 절대 그럴리 없겠지만, 내 곁을 떠나신다면 아마도 혼자 눈물 흘리며 다시 보지 않을까 싶다.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우리는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한 주간의 고단한 직장 생활, 학교 생활이 끝나가는 주말이 다가오면 미리 이번주 개봉영화를 찾아보고는 했다. 영화관 상영 시간에 맞춰 주말 계획을 세우던 모습도 익숙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런 모습들이 점점 일상에서 잊혀져 가고 낯설기만 해 서글퍼진다. 굳이 필름 영사기 시대와 ‘시네마 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 대부분의 삶에 자리 잡고 있던 일상이었다.

TV가 등장하고 대중화돼 많은 가정에서 ‘안방극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때도 분명 그 이전보다는 발길이 줄었겠지만, 영화관은 우리네 인생 속에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 놓을 때면 중요한 페이지를 수놓아 주던 우리의 ‘문화’였다.

사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 보면 ‘내가 저 영화를 봤었나?’, ‘아, 그 장면이 이랬던가?’ 곰곰이 생각해도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는 파편들이 많다. 그렇지만 누구와 함께 봤고,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나서의 '과정의 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내 맘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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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가장 쉽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타인의 간섭없이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 어느 집이나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유튜브와 유튜브 콘텐츠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OTT 채널을 보고 있고, 배우자는 안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각각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이어폰을 끼고 감상하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어도 아니 보고 나서도 나의 소감을 공유하고 타인의 경험을 함께 하는 '소통'과 '공감'의 순간은 사라졌다. 그런 아쉬움에 당장이라도 아이와 와이프의 손을 잡고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력한 맛과 향으로 단장하고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줄 자신이 있다며 늠름하게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팝콘을 한 손 가득히 들고, 팝콘으로 거칠어진 우리의 입을 달래 줄 얼음 가득한 콜라를 마시며 함께 붙어 있지 않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거대한 스크린을 향해 내 심장을 꺼내어 주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다.(이 문장은 단숨에 '롱 테이크'로 가야 맛이 산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휘황찬란한 블록버스터가 아니어도 좋다. 기대만큼 재미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아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내 친구들과 함께 어떤 스토리일지, 그 배우가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영화관으로 가는 길, 그 길이 그립다.

각자의 리뷰를 시끌벅적 얘기 나누며 집으로, 다음 장소로 옮기는 발걸음 하나 하나가 추억이고 삶의 흔적이다.

영화는 항상 우리 옆에 있었고, 영화관은 나의 추억으로, 기쁨과 슬픔으로 내 인생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굳이 사전적 정의를 인용하지 않아도 문화는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우리의 삶의 양식과 행동 방식이다. ‘나’가 아니고 ‘우리’다. 혼밥, 혼술, 혼영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만 함께 하는 추억은 쌓을 수 없다.

그동안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내 기대작 리스트와 초대형 팝콘마저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는 입맛으로 거리두기가 끝나는 그날 코로나와의 '작별 파티'를 즐기고야 말겠다.

나는 지금 영화관에 간다.


석남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ton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