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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공리주의와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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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공리주의와 음식윤리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느낀다. 같은 음식이라도 임신 중 입덧이 심할 때는 불쾌감과 고통을 느낀다. 모두 다 음식의 냄새, 맛, 색깔, 감촉 등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고소한 냄새, 담백한 맛, 과일의 예쁜 색깔, 졸깃한 감촉 등…. 한편 고향의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왜 그리도 마음이 푸근해지는지, 또 맛있게 먹는 자식을 보면서 어머니는 왜 그처럼 기뻐하시는지…. 이때 느끼는 것은 정신적 쾌락 또는 행복감이다. 이렇듯 쾌락에는 육체적 쾌락과 유쾌한 경험의 의미로서의 정신적 쾌락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 행위에서 두 가지 쾌락을 모두 얻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키레네학파는 육체적 쾌락을, 에피쿠로스학파는 정신적 쾌락을 중시했다. 키레네학파는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쾌락의 대부분은 결국 불쾌를 초래하기 때문에 쾌락을 잘 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주의는 간소한 생활 속에서 영혼의 평화를 찾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공리주의는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의 두 가지 쾌락을 망라했으며 개인 윤리에 중점을 두었던 키레네학파나 에피쿠로스학파와 달리 사회 윤리로 윤리의 영역을 확장했다. 음식 윤리도 공리주의와 쾌락이라는 핵심 요소를 공유한다.
이기주의가 사익(私益)에 초점을 맞춘 개인 윤리의 관점에 머무는 반면 공리주의는 공익(公益)까지 고려하여 관점을 확대한다. 공익을 목표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을 추구하는 사회 윤리가 바로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이기적인 개인이 공익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도록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이루고자 하는 윤리다.

공리주의를 음식 윤리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비만 문제에 적용해보자. 만약 쾌락주의나 이기주의를 비만 문제에 적용한다면 비만은 온전히 개인의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비만에 대한 윤리적 적용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만과 이에 기인된 성인병의 증가와 삶의 질 저하는 철저히 개인의 문제이므로 이에 따른 사회적 경비(의료비의 증가 등)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비만 문제는 그 규모로 인해 이미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비만 문제에 공리주의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미국의 경우 성인의 64%가 과체중이고, 비만이 담배에 뒤이어 전체 사망 원인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비만에 의한 직·간접적인 사회적 손실이 117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만 예방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만약 비만 인구를 줄일 수 있다면 이런 손실도 막을 수 있고,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아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렇듯 비만은 질병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고, 질병에 걸리면 의료비를 소진하게 되며,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의 질도 떨어지게 된다. 결과가 좋아야 선으로 간주하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비만을 초래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등의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선한 행위가 된다. 음식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입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자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음식을 자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가 질병 증가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음식에 대한 철저한 윤리적인 예방 교육이 시급하고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윤리적인 자제 호소마저 통하지 않을 경우 공리주의 창시자이자 법학자인 밴덤이라면 법적 제재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