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연간 최대 수준인 ㎾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함에 따라 이달부터 전기 요금이 일제히 오른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연료비 조정단가가 오르면 전기요금도 연쇄적으로 오르는 구조다.
따라서, 전기요금의 영향을 받는 한전 전력 판매량을 따로 떼어 보아야 하는데, 지난해 한전의 국내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29만1333GWh(기가와트시)였다. 이 판매량을 이달 인상안으로 단순 계산하면, 국내 산업계에는 지난해에 비해 1조4567억원을 더 부담하게 된다.
5일 한전과 산업계에 따르면,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한 제조업종은 철강‧비철강업종과 반도체 및 전기전자 업종, 종이 및 펄프 제조업, 석유화학업종 등이 꼽힌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전기요금 인상의 타격을 받는 기업은 철강업종이다.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전기로 제강사인 현대제철의 경우 현재 약 6000억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했는데, 이번 인상으로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 가까운 전기요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에 비해 전기로 비중은 낮지만 전기요금 납부 규모가 큰 포스코와 동국제강도 수백억원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 효과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체로 봤을 때 매년 납부하는 전기요금 규모는 4조원이 넘는데, 전기요금이 1%p 인상될 경우 400억원 내외의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조서 결과가 있다”면서 “전기요금 인상으로 원가부담이 가중되면서 철강업계의 영업이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며, 전기로 업체들은 흑자 달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연초 계획한 전기요금 지출 계획을 넘어서면서 더 힘들게 됐다”고 전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드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연간 1조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업계는 자체적인 노력으로 자체 전력을 늘리고, 절약 활동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라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철강과 전자 등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는 업체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생산의 주요 요소이기 때문에 그만큼 전력 품질이 좋은 한전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전자제품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데다, 전기요금 자체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24시간 공장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 업종으로서는 전기료 인상에 따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산업계 전반에 걸쳐 생산 원가에 대한 부담이 급증하면서 연쇄적인 물가 인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기요금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가중치는 15.5다. 전기요금을 1% 인상할 때 소비자물가가 0.0155%포인트 오른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지역경제보고서 ‘최근 물가 상승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라 전체 기업의 69%는 제품·서비스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산업 성격에 따라 원가 부담을 제품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하반기 실적에도 먹구름이 끼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철강, 정유 등 업종의 기업은 글로벌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며, 생산비용 등을 감안해 최종 제품가격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