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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물선 ‘장수산’호, 출생신고 안하고 생일파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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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물선 ‘장수산’호, 출생신고 안하고 생일파티 했다

23일 출항식 당시 선체에 ‘IMO 넘버’ 표시 안해
부여 안 받으면 항해 정보 막혀 루트 파악 안돼
UN 경제제재 속, 감시 피하고 불법 항해 가능성

지난 23일 1만2000t급 화물선 ‘장수산호’ 출항식 소식을 전하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TV 영상의 한 장면. 선미에 동그랗게 표시한 부분에 선박의 신분증번호인 ‘IMO넘버’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있다. 사진=NK NEWS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3일 1만2000t급 화물선 ‘장수산호’ 출항식 소식을 전하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TV 영상의 한 장면. 선미에 동그랗게 표시한 부분에 선박의 신분증번호인 ‘IMO넘버’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있다. 사진=NK NEWS
북한이 건조해 지난 23일 출항식을 가진 1만2000t급 화물선 ‘장수산’호가 신분증 없는 정체불명의 선박으로 항해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NK뉴스(NK NEWS)는 장수산호 출항식 뉴스를 전하는 조선중앙통신TV 영상 가운데 선미에 ‘IMO 넘버’가 표시되지 않은 장면을 캡처해 보도했다.

건조 과정서 지워지지 않도록 표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도 고유번호인 ‘IMO 넘버(IMO Number)’를 부여받아야 한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을 식별하기 위해 표시하도록 하는 선박고유의 일련번호다. 영국 로이드(Lloyd) 선급에서 단독으로 본 번호를 발급하기 때문에 ‘로이드 넘버(Lloyd Number)’라고 부르기도 한다. IMO 넘버는 조선소 또는 선주가 각 선급으로 발급의뢰를 하면, 각 선급이 로이드로 등록신청을 해서 번호를 부여받는다.

발급받은 IMO 넘버는 선박의 종류나 경우에 따라 엔진룸의 벽면이나, 선체의 선미, 선수의 양현, 거주구의 양현 등에 표시하는 데, 주로 선미 혹은 선수에 표시한다. 정확한 표시 위치는 지정되지 않지만, 표시할 때는 지워지지 않도록 영구적으로 마킹해야 한다고 IMO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또한 IMO는 2004년 7월 1일 이후에 건조된 모든 선박은 IMO 넘버 표시를 의무화했다. 국제 항해에 종사하는 300t(여객선은 100t) 이상 모든 선박은 IMO 번호를 갖고 있으며, 선박 이름, 소유자, 등록 국가가 바뀌더라도 한번 부여받은 IMO 번호는 변경할 수 없다.

IMO 넘버 없으면 외국 항해 불가


통상 출항식 전에 IMO넘버를 부여받지만, 절차가 늦어졌다거나, 부여받아놓고 의도적으로 표시를 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IMO 홈페이지에서 장수산호의 IMO 넘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들도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IMO 넘버가 없다는 것은 대포차와 같은 것”이라면서, “당장 화면상으로는 장수산호는 운항을 할 수 없다. 대외교역에 사용 하려면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MO 넘버의 가장 큰 역할은 특정 선박에 고유번호를 지정해 여러 정보를 관리하기 용이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누구나 선박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십파인더’(Shipfinder)나 ‘마린트래픽’(Marine Traffic) 홈페이지 등에 접속해 IMO 넘버를 조회하면 현재 해당 선박이 어느 위치에서 운항하고 있는지, 선박 운항속도는 어느 정도 인지도 알 수 있다. 선박의 구체적인 스펙, 선박 이름과 사진, 국적, 건조 연도, 건조한 조선소, 스케줄 등 정보도 나온다. IMO 넘버가 없기 때문에 장수산호의 정보는 물론 선박 건조를 감독한 선급 정보도 알 수 없다.
외국 항구에 입항하려고 신고를 할 땐, 신고 서류에 IMO 넘버를 반드시 기재해야 하므로, IMO 넘버가 없는 선박은 사실상 해외 항해가 불가능하다.

북한, 수 차례 불법 선박활동으로 제재 받아


장수산호의 IMO 넘버 미표시는 과거 불법 선박활동으로 화물선 몰수 등 강력한 제재를 받았던 북한이 이번에도 비슷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북한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제재 대상 국가에 포함되어 있다. 북한과의 경제활동이 제한되며, 북한과 교역한 기업과 국가에 대해 강력히 책임을 묻고 있다. 정상적인 대외무역의 길이 막히자 북한은 선박 불법 행위를 통해 부족한 물자를 들여오고 있다. 이에 IMO는 방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IMO에 따르면, 다수의 IMO 회원국들이 자국 선박에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항해하거나, 선박 국적이나 정보를 임의로 변경하는 등 해상 불법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북한은 IMO 회원국이지만 UN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고 편의치적 방식으로 해상 불법 환적 행위를 하는 등 위반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2019년 5월 영국 합동군사연구소는 지난 5월 북한 화물선 ‘태양호’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몽골 국적 선박의 선박 정보와 선박식별장치 AIS 신호를 도용해 해상 불법환적으로 약 160만 달러어치의 석탄을 판매한 혐의를 포착했다.

2018년 2월 미국 재무부는 대북 유류 환적 의심 선박으로 지정된 뒤 고철 처리된 ‘카트린(Katrin)’호가 파나마 깃발을 달았지만 한국 혹은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는 두영, 혹은 도영 쉬핑이 실제 선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UN안보리‧IMO, 북한 감시 활동 강화


IMO 사무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회원국 해양행정기관의 승인 없이 선박을 임의로 등록하고 등록 기간 만료 후 갱신 없이 운영하는 행위, 또는 IMO에 허위문서를 제출해 등록을 승인 받거나 선박식별정보 변경, 자동선박식별장치 AIS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등의 불법 행위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IMO는 각 회원국의 선박 등록기관이 등록 신청을 새로 받을 경우 반드시 선박의 IMO 넘버를 확인하고, 선박 이력 확인을 위한 기록 제공 요구와 안보리 제재 목록을 사전에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북한의 경우 UN 안보리 차원에서 직접 제재하기 때문에 IMO는 제재 권한이 없지만, UN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 대상 선박에 대한 불법 행위 단속이 원활하도록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키로 했다.

장수산호는 UN과 IMO 등 국제기구와 서방국가들로부터 불법행위 사용에 대한 강력한 관찰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IMO 넘버를 정식으로 받지 않고 운항할 경우 감시의 정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장수산호는 북한이 지난 2017년 무역선 ‘자력’호 이후 5년 만에 건조 소식을 알린 화물선으로 1만2000t급이다. 북한은 과거에 주력 수출 품목인 석탄과 철광석 등 광물 운반에 만 7천t급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를 운항했으나, 대북제재 혐의로 미국에 몰수된 바 있다.

뉴시스 등 국내 언론들은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따른 국경봉쇄로 대외무역이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도 새 화물선을 건조한 것은 향후 코로나19 이후 무역 재개 등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