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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우리 삶에 이렇게 깊게 관여한 외국계 기업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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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T] 우리 삶에 이렇게 깊게 관여한 외국계 기업이 있었나

넷플릭스 요금제·콘텐츠에 SNS 화제 만발…지상파 방송사 수준
외국계 기업 중 이례적 성공…투명한 경영·사회공헌 해야 할 때

'피지컬:100' 캡쳐. 사진=넷플릭스이미지 확대보기
'피지컬:100' 캡쳐. 사진=넷플릭스
한국에서 글로벌 브랜드가 성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점유율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많은 기업들이 야심차게 한국 공략에 나섰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적인 마트 체인인 월마트와 까르푸를 예로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점유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애플은 중국과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20% 내외의 점유율에 그쳤다. 세계 1위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도 한국에 진출했지만, 기대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하고 있다.
음원 플랫폼의 경우 유튜브 뮤직의 상승세가 매섭긴 하지만, 스포티파이는 토종 플랫폼인 멜론, 지니뮤직, 플로와 경쟁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토종 브랜드가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한국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성공은 단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15년 한국 진출 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넷플릭스는 2019년 1월 '킹덤' 공개 후 대한민국 미디어·콘텐츠 시장을 송두리째 바꿨다.

넷플릭스의 상승세는 코로나 팬데믹과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더 가속화됐다. 이제 월 사용자 수는 1000만명 내외 수준이지만, 사소한 요금제나 콘텐츠 예고편부터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흡사 과거 '모래시계'나 '젊은이의 양지' 시절 지상파 TV의 영향력을 보는 듯하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가입자 수가 정체기에 접어들었던 넷플릭스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광고요금제를 마련하고 서비스 개편을 꾀했다. 광고요금제는 말 그대로 광고를 시청하면서 더 저렴한 요금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넷플릭스가 갖는 이미지는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던 '실험적인 기업'이었다. 그런 넷플릭스가 가입자 유치에 집중한 광고요금제를 선보인 것은 마치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스마트폰에 대한 자부심과 기술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애플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이 같은 영향력은 계정 공유 요금제로도 이어졌다. 이미 남미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던 계정 공유 요금제는 넷플릭스 주주 서한을 통해 올해 중 글로벌 확대될 거라고 공식화된 바 있다.
넷플릭스는 2017년 "계정 공유는 사랑"이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의 계정으로 여러 이용자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을 장려해왔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 이용자에게 계정 공유 요금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배신'과 같았다.

배신에 대한 이용자들의 분노가 커질 즈음, 넷플릭스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매체들은 이를 기사화했고 계정을 공유해가며 콘텐츠를 즐기던 이용자들에게 다가올 '배신'이 공식화됐다.

특히 넷플릭스의 이번 결정은 최근 가스요금과 택시요금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요금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넷플릭스마저 돈을 더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더해지면서 배신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다음날 넷플릭스는 이 공지사항을 부정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계정 공유 단속 방법이나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해당 공지사항은 지난해에 작성됐다. 넷플릭스는 확정하는 대로 추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계정 공유 공식화 해프닝을 빚었던 넷플릭스 공지사항. 이미지 확대보기
계정 공유 공식화 해프닝을 빚었던 넷플릭스 공지사항.

당장은 해프닝에 그쳤지만, 넷플릭스의 계정 공유 단속이 한국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같은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요금정책뿐 아니라 콘텐츠에서도 입증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더 글로리'는 한국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낳았다. 블로거나 유튜버들은 '더 글로리'의 장면을 해석하기 시작했고 3월 10일 공개를 앞둔 파트2에 대한 예상을 하기 시작했다.

정성일과 차주영, 김히어라 등 이전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연기하던 배우들은 '더 글로리'를 계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무엇보다 영화의 핵심 소재가 된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더 글로리'의 긍정적 영향력에 비하면 '피지컬:100'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제를 낳았다. 첫 번째 퀘스트인 1:1 데스매치 중 한 남성참가자가 여성참가자를 지목하고 경기 중 '니온밸리'(무릎으로 상대 가슴을 압박하는 기술)을 썼다는 이유로 여성 시청자들과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해당 여성참가자가 직접 SNS에 글을 남기며 논쟁을 진화하기에 나섰고 지난달 31일 3, 4화가 공개된 후에야 논란이 수그러들었지만, '피지컬:100'의 인기와 콘텐츠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넷플릭스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지널 영화 '정이'의 배리어프리 상영을 진행하고 시청각 장애인들의 볼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국계 기업 중 한국에서 이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구글의 영향력이 막강한 편이긴 하지만, 개별 콘텐츠 하나만으로 SNS를 뒤흔들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했다. 특히 구글은 유튜브가 동종업계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지만, 포털사이트 점유율은 네이버에게 밀려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람들의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그만큼 투명한 요금정책과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