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넷플릭스 TOP10에 따르면 '정이'는 16~22일까지 총 1930만 시청시간을 기록해 비영어권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정이'가 1월 20일 공개된 점을 고려하면 단 3일만에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나르비크'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정이'의 기세는 매섭다. 미국에서는 공개 후 4일동안 영화 부문 전체 1위를 차지하다 26일 3위로 내려앉았다. 태국과 대만에서도 공개 후 3~4일동안 1위 자리를 지켰으며 필리핀, 파나마, 파라과이, 멕시코, 브라질, 홍콩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얻었다.
'정이'의 이 같은 반응은 공개 초반 평단의 평가와 관객 반응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편이다. '정이'는 글로벌 평점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토마토지수(평론가) 50%, 팝콘지수(관객) 60%를 유지하고 있다. IMDB 평점도 10점 만점에 5.5점으로 좋은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이'를 본 일부 한국 관객들 역시 기대보다 "액션이 밋밋했다", "후반부에 신파장면이 거슬린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SF의 성취가 압권이었다" 등의 반응도 보이며 호불호가 갈렸다.
'정이'의 이 같은 반응은 흡사 '부산행' 개봉 당시를 떠올린다. '부산행'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좀비영화로 극장에 처음 등장했지만, 개봉 초기 국내 관객 반응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후반부에 신파장면이 거슬린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으며 할리우드의 대비되는 CG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제한된 공간에서 좀비들과 싸운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관객이 많았으며 후반부에 대해서도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부산행'은 이 같은 반응에 힘입어 로튼토마토 지수 94%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미국 개봉 당시 21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부산행'의 성공에 힘입어 연상호 감독의 작품인 '서울역'과 '반도' 모두 미국에 소개될 기회를 얻었다. 두 작품은 현재 미국 공포영화 전문 OTT 플랫폼인 셔더에서 독점 공개하고 있다.
'정이'의 초반 기세에는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작 '부산행' 이후 많은 작품이 글로벌 무대에 소개되면서 관객들이 다소 객관적 평가를 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역'과 '염력'은 평론가들로부터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들에게 외면당했으며 '반도'는 토마토지수 55%, 팝콘지수 76%를 기록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처음 협업한 드라마 '지옥'은 토마토지수 97%, 팝콘지수 69%로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IMDB 평점 역시 6.6점으로 무난한 편이다. 특히 넷플릭스 공개 직후 11일 동안 글로벌 1위를 유지했으며 누적 시청시간도 1억4285만 시간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에서는 일찌감치 '지옥'의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다.
이 때문에 '정이'는 사실상 "'부산행', '지옥'의 연상호 감독 작품"으로 해외에 소개된 셈이다. 여기에 SF 액션을 표방하고 있고 사이버펑크적 분위기가 풍기는 예고편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여기에 '정이'가 표방하고 있는 사이버펑크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훌륭하다는 반응이다. 사이버펑크 장르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분위기를 담은 것으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대표적이다.
사이버펑크 영화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으나 세트와 미니어처, CG 등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정이'는 미국 외 지역에서 나온 흔치 않은 사이버펑크 영화인 만큼 낯선 분위기와 이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이 해외 관객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이'는 2194년 미래를 배경으로 최고의 용병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전투 AI를 만들려는 연구팀장 서현(강수연)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액션영화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