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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中 실패한 제로 코로나 강행이 시진핑 파멸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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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中 실패한 제로 코로나 강행이 시진핑 파멸의 시작일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 反체제 시위 확산

11월 29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규제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개인보호복(PPE)을 입은 전경들이 소셜미디어 영상을 찍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11월 29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규제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개인보호복(PPE)을 입은 전경들이 소셜미디어 영상을 찍고 있다. 사진=로이터
중국의 독재자 시진핑이 국가를 확고히 장악하고 3연임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일 수도 있다. 그의 잔혹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는 지난주 중국 여러 도시에서 발생했으며 일부 시위자들은 공개적으로 시진핑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탄광 속 카나리아는 신장의 수도이자 수백만 명의 위구르 무슬림과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우루무치의 고층 아파트 화재 사건이다. 이 화재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했다. ‘탄광 속 카나리아’는 역경이나 위험을 예고하는 조기 경보, 선행 지표를 뜻한다.
많은 사람들은 주민들을 아파트 안에 가두기 위해 지방 당국이 세운 장벽을 비난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탈출과 소방관의 구조작업이 방해되어 불필요한 사망이 발생했다.

화재 피해자들이 구조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가슴 아픈 동영상은 검열관이 동영상을 제거하기 전에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냈다.

중국 대중은 그들이 본 것에 격분했고 그들과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비극이 일어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지자체에서는 아파트 정문 전체를 봉쇄하거나 금속 장벽을 사용해 주민들을 집 안에 가두는 것이 관행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처음에 베이징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지했으며, 코로나 감염을 통제하기 위해 봉쇄, 일일 대량 PCR 검사, 의무 격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시진핑은 2020년 3월 중국이 코로나19와의 ‘인민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중국 정치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 많은 전염성 코로나19 변종으로 인해 중국이 계속해서 코로나 발병을 경험함에 따라 정부의 정책은 실패했다. 지난가을부터 중국 정부는 46개 도시와 3억4300만 명의 주민을 봉쇄했다. 그러나 지난주만큼 최근 중국은 또 다른 기록적인 코로나 감염 건수를 보고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그의 부하들은 문화혁명(1966~1976)을 연상시킬 정도의 잔인함과 열성으로 정책을 시행하려고 더 많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시안에서는 8개월 된 임신부가 코로나 테스트가 너무 길어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한 후 아기를 잃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번영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의 봉쇄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봉쇄 기간 동안 주민들은 광범위한 굶주림을 보고했다. 만성 질환이 있거나 의료 응급 상황을 맞은 개인은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일부는 사망했다. 어른들은 집에서 끌려 나와 열악한 대규모 격리수용소에서 몇 주를 보내야 했고,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가장 순종적인 중국 시민들조차 “이 불행은 언제 끝날까요?”와 같은 의구심(질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 외에도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 경제에 피해를 입혔다. 분석가들은 중국의 2022년 GDP 전망치를 베이징의 공식 목표치인 5.5%보다 훨씬 낮은 2.8%로 하향 조정했다. 16~24세 중국 청년의 실업률은 거의 18%에 달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은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민간 기업을 탄압함으로써 중국의 경제 위기를 악화시켰다. 그의 가혹한 접근 방식은 중국에서 부동산 위기를 일으켰고, 대부분 중국 가계의 부(富)가 부동산 시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소비자 신뢰를 손상시켰다.

중국 중부 정저우시 당국이 현지 은행 예금자들이 은행 밖에서 예금 동결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코로나19 감시용으로 구축된 건강 코드 시스템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시민들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 사건을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건강 코드를 또 다른 감시 도구로 전환했다는 확인으로 간주했다.

시진핑이 ‘제로 코로나’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희망은 10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사라졌다. 시진핑은 상하이의 치명적인 봉쇄를 담당한 상하이 공산당 서기인 리창(Li Qiang)을 중국에서 둘째로 강력한 지위로 끌어올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공약을 두 배로 낮췄다. 리 서기의 승진은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이다. 이번 당대회는 또한 시진핑 주석이 임기 25년의 임기 제한을 깨고 황제처럼 중국을 다스리는 시작임을 알렸다.

시진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권력을 강화하고 정치적 도전자를 제거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는 데 보낸 후 자신의 통치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의 분위기를 잘못 읽었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 사이에는 불문율의 사회계약이 있다. 중국 인민은 생활수준, 고용, 경제성장의 향상을 대가로 정치적 자유를 덜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진핑의 파멸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과 사람들의 삶과 경제에 대한 파괴적인 피해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계약 위반으로 간주된다.

우루무치 화재 사건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금융 항구인 상하이를 포함해 전국적인 시위를 촉발시켰다.

수많은 시위자들이 자국 정부의 검열에 반대하는 방법으로 백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일부는 ‘시진핑, 물러나라!’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한다, 더 이상의 봉쇄는 필요 없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인 이후 중국공산당(CCP)에 대한 대규모 시위와 대담한 구호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중국인들은 변화를 간절히 바라는 나머지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 같다.

시진핑은 잔인한 무력으로 이 광범위한 불안에 대응하고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위기는 그의 통치가 그가 믿었던 것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는 때때로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시진핑은 개인의 충성심과 사회적 안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발원하고 정부 지원 연구실에서 탈출했을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를 다루기 위해 실패한 정책을 강행하려는 그의 고집은 결국 그의 충성심과 사회적 안정을 앗아가고 파멸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김세업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