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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안 팔린다…글로벌 제조사 재고 사상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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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안 팔린다…글로벌 제조사 재고 사상 최대

수요 부진·공급망 혼란…삼성·포드 등 1조8000억 달러 물건 쌓여

포드 브롱코 아우터뱅크스 실내. 포드 자동차의 재고는 146억 달러로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김정희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포드 브롱코 아우터뱅크스 실내. 포드 자동차의 재고는 146억 달러로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김정희 기자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가운데 소비자 수요가 약해지면서 삼성에서 포드에 이르는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의 재고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장기간의 경기 침체에 직면해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기업 재무 데이터 조사업체 퀵 팩트셋(QUICK FactSet)에 따르면 2349개의 상장된 글로벌 제조 회사가 보유한 재고는 3월 말 현재 1조8700억 달러로 3개월 이전보다 970억 달러 증가했다. 이것은 10년 만에 또는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나온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재고 축적은 공급망 차질로 인한 제품 이동의 어려움, 일부 기업은 품귀 현상에 대비한 의도적인 비축 등의 요인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일부 기업은 코로나19 확진자 감소에 따른 경제 재개로 소비자 수요 증가를 예상해 재고를 확보하기도 했다.

현재 문제는 이러한 높은 수준의 재고와 느린 소비로 인해 제조업체가 생산에 제동을 걸고 이미 진행 중인 경제 둔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수요 둔화는 특히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글로벌 상품 가격 인상 속에 소비자들이 물가상승으로 구매력이 줄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970억 달러 재고 증가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 세계 재고 수준이 급증했던 2018년 1분기 기록된 830억 달러 증가보다 크다.

백분율로 따지면 2022년 1~3월의 증가율은 5.3%로 2018년 1~3월의 6.1% 증가 이후 가장 높았다. 이로 인해 재고 회전율이 더 길어졌고 2022년 1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3% 감소했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도하는 데 걸린 시간은 81.1일로 4분기보다 3.6일 늘어난 것으로,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하였던 2020년을 제외하면 지난 10년 중 가장 길었다.
12개 제조업 부문 모두에서 재고가 증가하였다. 전자, 자동차 및 기계의 3개 부문이 전체의 61%를 차지했다.

전자 제품은 267억 달러(6%) 증가한 4570억 달러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개별 기업 수준을 분석해보면 원자재가 가장 큰 이익을 얻었고 가공품이 그 뒤를 이었다.

분석 대상 기업 중 삼성전자가 달러 기준 44억 달러로 전분기에 비해 13% 증가한 392억 달러로 가장 큰 재고증가율을 기록했다. 증가분 중 25억 달러는 원자재 증가로 인한 것이다.

삼성은 1분기 매출이 전분기와 비슷하다고 보고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메모리 생산을 위한 원자재 조달 차질을 빚었고,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재고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만 PC 제조업체인 에이수스(Asus)의 경우 원자재와 완제품이 모두 약 5억 달러 증가하면서 매출이 9% 줄어든 반면에 재고는 18% 늘었다. 에이수스는 전자 재료의 재고를 늘렸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도 판매가 둔화되었다. 에이수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닉 우(Nick Wu)는 자사가 현재 수준의 재고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의 재고수준은 148억 달러(6%) 증가한 2730억 달러를 기록했다. 포드 자동차는 매출이 8% 감소하고 재고가 21% 증가한 146억 달러로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품 부족으로 5만3000여 대의 차량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포드 CFO 존 롤러(John Lawler)는 재고축적이 자사 현금 흐름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주가는 9% 상승했다.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는 부분적으로 부품 부족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배송 문제로 인해 미완성 제품이 증가했다. 이 회사 CFO인 하랄드 윌헬름(Harald Wilhelm)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측면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재고율이 곧 심각한 현금 위기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2349개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3월 말 기준 2조2000억 달러로 월 매출의 2.3배에 달한다. 2이상의 숫자는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한 예로 삼성은 1000억 달러의 현금 또는 5개월치의 매출에 해당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의 현금은 6조 엔(441억9000만 달러)으로 2.3개월치의 매출이다.

그래도 기업은 신중한 자세를 기해야 한다. 미국과 유로존 모두 6월 구매관리자지수가 손익분기점인 50대까지 하락한 반면에, 중국은 5월까지 3개월 연속 50 이하를 유지했다. 50 미만의 숫자는 경기 위축을 나타낸다.


김세업 글로벌이코노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