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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핵심은 유족들이 충분히 표현하고 슬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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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핵심은 유족들이 충분히 표현하고 슬퍼하는 것"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8)] 애도사회, 위로사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과 시민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를 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과 시민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를 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써도 변명 한마디 할 수 없는 어이없는 참사(慘事)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또 일어났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4년 4월 15일에 인천을 출발해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그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8년 만에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또 일어난 것이다. 어느 죽음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은 없지만, 두 참사에서는 특히 수학여행에 들뜬 어린 고등학생들이나 코로나19로 위축되었다가 오랜만에 축제를 맞은 젊은 20~30대가 주로 희생됐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애통함을 더하고 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이 이 사고로 졸지에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며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슬픔의 강도를 헤아려볼 수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국정 최고책임자를 비롯해 관계부처 장관들이나 유관 단체들의 애도(哀悼) 성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시중의 여론은 진실성이 없이 마지못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도 자신의 자녀들이 희생당했다면 그럴 수 없을,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형식적 사과나 애도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판에 박은 듯이 책임자 처벌을 크게 외치고 있거나 안전불감증을 탓하고 있을 뿐 사고가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갈 교훈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많은 희생자가 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비탄(悲嘆)에 잠길 일도 많고 애도할 일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시에 위로(慰勞)할 일도 많다는 것이다. 비탄은 사별(死別)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서 충격, 무감각, 분노, 우울, 공허감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애도(哀悼)는 사회문화적 또는 종교적 관습에 의해 유가족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상복을 입고, 곡을 하고,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의 장례 관습 등이 애도 행위이다. 애도는 문화적인 관습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죽음을 수용해가는 과정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Ross)도 사별 가족의 애도 과정을 충격, 분노, 타협(죄책감), 절망(슬픔), 수용의 5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가족이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였다.

첫째, 충격의 단계에서 사별 가족은 정신이 멍해지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등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책(自責)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과정이 시작된다. 지금껏 부정하고 억압해 왔던 모든 감정이 의식화되기 시작한다.

둘째, 분노의 단계에서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과 예기치 못한 부당한 상황에 화가 난다. 분노의 대상에는 가족이나 고인(故人)뿐 아니라 신(神)도 포함되어 있다.

셋째, 타협의 단계에서는 ‘만일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부분을 생각해 낸다. 타협은 유가족이 각 단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으로 흐트러져 있는 혼란 상태에 질서를 부여한다.

넷째, 절망의 단계에서는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때의 절망은 회피함으로써가 아닌 슬픔에 머물면서 충분히 이 감정을 느낌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다섯째, 수용의 단계에서는 고인이 떠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현실이 영원한 현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고인이 떠나버린 새로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위로는 항상 '나'가 아니라 '너'를 주어로 시작해야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있어 주기만 해도 '큰 위로'
국민이 서로 마음의 상처 풀어주는 사회가 선진국

물론 이런 애도 과정은 위에 언급한 순서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각 단계에 머무르는 시간이나 마지막 수용 단계에 이르는 시간은 개인별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유족(遺族)이나 친구 등 남겨진 사람들이 비탄의 감정에서 벗어나는 양상이 달라진다. 그래서 주위의 친지나 동료들이 어떻게 위로해 주는지에 따라 상실의 고통이 다를 수 있다.

애도 과정의 핵심은 유족들이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다. 즉, 체면이나 주위의 시선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별 때문에 느끼는 감정, 즉 배신감, 무기력감, 죄책감, 거부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다. 장례식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유족을 포함해 일가친척이나 친지들이 마음 놓고 슬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는 마음 놓고 통곡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슬픔의 강도는 고인과의 친밀감의 표현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상실한 대상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기 쉬워진다.

인명을 잃는 슬픔뿐만 아니라 오래 정들었던 직장을 잃는다거나 한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도 애도가 필요하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은 「조침문(弔針文)」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의인화해 다음과 같은 애도의 마음을 담고 있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于今)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중략)…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無心)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 년 고락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哀哉)라, 바늘이여.” 바늘 하나를 잃고도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섬세한 여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공연히 위로해준답시고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거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등의 말로 오히려 더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되기보다 '이 사람이 내 슬픈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라는 절망감만 더해질 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얼마나 힘드니?”라는 한마디만 해주고 아무 말도 말고 조용히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유족(遺族)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네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런 말을 하겠니?” 하는 심정으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자. 애도의 과정이 끝나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 유족들에게 ‘슬퍼하지 마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제일 무례한 사람이다. 슬퍼지고 싶어서 슬퍼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위로는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 있는 상대의 마음에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 항상 ‘나’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너’를 주어로 시작해야 한다. “슬퍼하지 마라”는 것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전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위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차라리 아무 말도 말고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좋은 이유이다. 가만 있으면 상대의 비탄의 감정을 방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예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난을 당했을 때 이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요령을 평상시에도 익히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을 배우는 것처럼 갑자기 마음에 큰 상처가 왔을 때 옆에서 효과적으로 공감해주면 극단적인 행동을 방지할 수 있다. 온 국민이 마치 자신이 당한 일인 것처럼 마음 아파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과 구조와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오랫동안 각종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할 것이고 단잠을 이루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식의 시신을 확인할 때마다 절규하며 혼절하는 부모를 옆에서 계속 지켜보아야 하는 경찰들도 한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실정은 겨우 신체적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도에 멈추고 있다. 하지만 이번 참사를 계기로 마음의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교육하고 계몽해야 할 것이다. 90년 가까이 장수하며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불행이나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삶은 고해(苦海)와 같다”는 말이 있겠는가. 마음의 재난은 결국 화, 분노, 절망, 죄책감 등 격렬한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다. 따라서 마음속에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잘 해결하는 방법을 평상시에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마음의 재난에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상담(相談)’을 주고받는 것이다. 상담은 문자 그대로 “서로 상대방[相]의 화[炎]를 대화[言]로 풀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온 국민이 상담자가 되어 서로서로 마음의 상처를 풀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수준별 ‘상담’ 과목이 교과과목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상담의 생활화' 이것이 많은 사건·사고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받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하고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