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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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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6)] 종교의 의미

우리 사회는 종교인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종교가 더욱 필요한 사회로 가고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종교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사회는 종교인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종교가 더욱 필요한 사회로 가고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종교를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은 동물계(界) 척삭동물문(門) 포유강(綱) 영장목(目) 사람과(科) 사람속(屬) 사람종(種)에 속하는 동물이다. 현생 인류의 근연종은 모두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한 종만 생존해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약 2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을 때 ‘지혜롭다’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람 이외 영장류들의 인지 능력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그 결과 점차로 영장류들도 우리가 지금까지 추정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도구의 사용이라든지, 사물들 간의 관계를 추리하는 능력들이 예전에 가정했던 것보다 더 발달해 있다. 즉 영장류들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영장류가 지혜롭다고 해도 인간에 비할 수는 없다. 그중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은 바로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마도 사람을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Homo sapiens’가 되도록 만든 소이(所以)일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 중 하나는 종교 활동일 것이다. 영장류도 나름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고유의 특징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인간만이 하는 행동을 찾아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영장류 중에 원시적이나마 종교 행위를 하는 동물은 없다. 하지만 사람은 종교 행위를 한다. 종교적인 사고의 가장 초기 증거는 사망자의 의식적인 매장(埋葬)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같은 종의 죽음에 대해 태연하다. 하지만 인간만이 주검에 대해 매장 등의 사후 처리를 한다. 의식적 매장은 인간 행동, 특히 종교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식적 매장은 삶과 죽음의 인식, 내세나 사후의 생명의 신념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아무리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부족이라도 모두 나름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종교의 의미를 찾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즉 사람마다 제각각의 정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다양한 정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종교를 뜻하는 단어는 ‘religion’이다. 이 단어의 기원에는 두 라틴어가 있다. 하나는 ‘legare’라는 단어이고, 그 의미는 ‘묶다’ 또는 ‘연결하다’이다. 이 어원에서 나온 영어 단어로는 뼈와 뼈를 연결해주고 관절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인대(靭帶)’를 뜻하는 ‘ligament’가 있다. ‘re-’ 는 ‘다시[再]’를 뜻하는 접두사이다. 그렇다면 ‘religion’은 ‘다시 묶다’ 또는 ‘다시 연결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종교는 다시 묶거나 또는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뜻하는 말이 된다.

‘다시’는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하여”라는 의미이다. 즉 원래의 행동이나 상태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묶거나 연결한다’는 것은 원래 묶여 있거나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현재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필요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원래의 상태가 무엇이고, 무엇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religion’의 어원에 관한 또 다른 설명은 ‘religio’에서 유래했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거대하게 큰 힘’에 대한 언급 또는 그 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 감정에 대한 언급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religion’이라는 단어의 두 기원을 합치면 원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종교(religion)라는 단어에는 사람은 원래 거대하게 큰 힘에 묶여 있거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현재는 그 거대한 힘에서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고, 다시 그 거대한 힘과 연결되어 하나가 되려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한자어 종교(宗敎)는 ‘일의 근원이나 근본 또는 우두머리나 가장 뛰어난 것’을 뜻하는 ‘마루 宗(종)’과 ‘가르칠 敎(교)’로 구성되어 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종교는 ‘가장 근본적이고 뛰어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근본적이고 뛰어난 것은 무엇일까? 宗의 본의는 조상을 모시고, 제사 활동을 거행하는 사당, 종묘를 가리키기도 한다. 제사(祭事)는 사람이 신과 교통하고 대화하기 위한 행위로, 신에게 복을 빌거나 신의 힘에 의지하여 재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자어 ‘宗敎’나 영어 ‘religion’의 공통점은 사람을 뛰어넘는 거대한 큰 힘 또는 신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신과 교통하고 대화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려는 사람의 근본 열망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물 이치 빨리 깨닫고 정확히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영장류 인지 능력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사실 밝혀져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는 종교 활동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언명했다. 문화를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형성된 생활양식’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종교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의 모습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문화에 따라 또는 개인마다 그 ‘거대한 힘’을 무엇이라고 주관적으로 느끼는지가 다르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가 다를 뿐이다. ‘Homo sapiens’인 사람이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은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고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하고 거대한 ‘그 무엇’과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본질상 종교적이다.

종교는 사람들의 심연(深淵)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구나 가끔 한 번쯤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 다음의 이야기, 내 삶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후에 대해 말하는 한, 또 인간이 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98년에 개봉된 영화 <아마겟돈>과 2021년에 개봉된 영화 <돈 룩 업>은 여러 면에서 흥미있다. 먼저, 두 영화는 엄청나게 큰 행성이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온다는 공통의 위기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대로 놔두면 결국 지구와 충돌할 것이고 그 결과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영화 <아마겟돈>에서는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최소의 희생을 치르고 결국 지구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2021년 영화 <돈 룩 업>에서는 미국의 대통령부터 언론계, 학계 등 어느 누구도 주어진 위급한 상황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애써 회피하고 딴청을 부리고 있다. 그 결과 지구는 결국 멸망하고 만다. 멸망을 피한 소수의 사람은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그 행성에 살고 있는 조류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최소한 두 영화에 비쳐진 재난에 대처하는 인류의 방식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20여 년간의 변화라고는 믿기 어려운 실정이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마지막에 지구가 멸망하기 전 가족들이 다시 만나 마치 ‘최후의 만찬’을 하듯이 식사하면서 손잡고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전능하신 주여! 오만한 저희가 은총을 구하나이다. 의심 많은 저희를 용서하소서. 또한 주여, 이 어두운 시기를 사랑으로 위로하시고 무엇이 닥쳐오든 당신의 담대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절반을 넘어섰다. 외면적으로는 그만큼 종교는 현대인에게 더 이상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 룩 업>에서 분명히 보여주듯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족들끼리 손잡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실질적으로는 종교가 더욱 필요한 사회로 가고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