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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는 비관주의보다는 일상 살아가는 데 훨씬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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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는 비관주의보다는 일상 살아가는 데 훨씬 건강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2)] 비현실적 낙관주의와 안전불감증 사회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팽목항) 방파제에서 추모객들이 8년전 희생자들을 기다리며 설치됐던 노란리본과 깃발·조형물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팽목항) 방파제에서 추모객들이 8년전 희생자들을 기다리며 설치됐던 노란리본과 깃발·조형물을 보며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한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진도 본섬과 거차도 일대를 오가는 H선사의 여객선 횡포가 극심하다.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불친절한 것을 넘어 위협을 느낄 만큼 거친 언동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맹골수도(孟骨水道) 주변을 운항하면서도 미흡한 운항 관리로 주민과 관광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 배는 세월호로 유명한 팽목항에서 출발하는 노선이다.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다. 여객선 승선 전 탑승자 신원 확인이나 탑승객 차량 하차 등의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승객 신원 확인은 세월호 사고 당시 탑승객 신원과 숫자가 확인되지 않아 혼란을 겪은 후 강화된 규정이다. 304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고 강화된 규정인데도, 이 규정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팽목항에서 아직도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운항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H여객선 관계자는 "매일 같이 탑승하는 주민이 많은데 굳이 신분증 검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물론 신분증 검사를 못하는 날도 있지만 가급적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승선 시 자동차에서 승객을 내리게 하는 것 등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요구하는 게 어려워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규정을 철저히 지키지 않고 선장 이하 선원들이 자의적 판단에 의해 운행하고 있다고 실토하면서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있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춘천의 한 사거리에서 5톤 트럭에 실려 있던 맥주병 2000여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한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을 가지고 나와 30여 분 만에 정리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 반 후 춘천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두 사고가 모두 동일한 차량과 동일한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단순히 주민들의 미담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의식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만약 당시 주류차량의 뒤를 따르던 다른 차량이 있거나 지나가던 행인이 있었다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운전자는 다량의 맥주를 운송하면서 적재함 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아 같은 사고가 두 번씩이나 발생한 것이다. 큰 사고를 당하고 나서도 무신경하게 운행을 계속하였다.

팽목항을 떠나는 H선사의 경우나 춘천의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나 개인이 얼마나 안전 의식이 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서조차 이 같은 짓이 반복된다는 것은 다른 항만에서도 안전에 대한 의식이 미흡한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을 '안전불감증'이라고 부른다. 안전불감증은 "위험에 둔감해지거나 익숙해져서 위험하다는 생각이나 의식을 못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전불감증은 우리에게만 있는 증상은 아니고 어느 나라에도 있다. 영어에도 'safety frigidity'라는 단어가 있다. 모든 문화 현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것은 증상의 유무가 아니라 강도(强度)이다.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어제 오늘의 일은 물론 아니다. 그동안 수없는 사건 사고에서 안전불감증이 그 원인인 경우는 부기지수(不知其數)였다. 그렇다면 이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자체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신념·태도 사고방식 의미
어려움에 부딪쳐도 용기 잃지 않고 목표 달성
이겨낼 수 없는 과거의 현실적 고통은 없어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이다. 일단 낙관주의(樂觀主義)는 비관주의(悲觀主義)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훨씬 건강한 것이다. 낙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 태도 및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낙관주의자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고 만족감은 높고 불안과 우울은 낮다. 따라서 이들은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면을 보므로 어려움에 부딪쳐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목표를 이루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낙관주의의 모토(motto)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에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낙관주의의 기저에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믿음의 본질은 "힘들 때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신념이다. 믿음의 근거 위에 희망(希望)이 자라고, 희망을 먹으며 낙관주의가 자라는 것이다. 믿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또 낙관적이 되는 선순환(善循環)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낙관주의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려면 현실적이어야 한다. 즉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그 기반 위에서 낙관적인 것이 중요하다. 즉 현실적 낙관주의가 되어야 한다. 만약 낙관주의가 비현실적이면 이는 오히려 현실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데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턱없이' 근거 없이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현실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심하면 망상(妄想)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현실적 낙관주의의 문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5000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지극히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일반 서민들은 끊임없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려 왔다.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는 사방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약소국으로서 불리한 지리적 조건에 놓여있다. 특히 오랜 역사 속에 중국과 일본 등은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침공해왔다. 지속되는 크고 작은 외환 속에 일반 서민들은 불안하고 무기력한 삶을 강요받아 왔다. 또 내부적으로도 지속되는 탐관오리(貪官汚吏)들과 지주들의 횡포에 지속적으로 고통 받아왔다.

외부적 환경에서 오는 불안과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처음에는 당연히 이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책략을 사용하여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 의해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환경에 효율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이 경험은 현실적 낙관주의를 키우게 되고, 현실의 장애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미래의 희망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이나 조직의 노력이나 책략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환난이 지속되면 두 가지 성향이 발달한다. 첫째는 외부적 환란에 무기력해지고 결과적으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게 된다. 더 이상 환란을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되고 소위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학습된 무력감 현상은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이다. 개를 묶어놓고 전기충격을 주면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목줄에 매어 있어서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한 개는 목줄을 풀어주어도 더 이상 도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충격이 멈추기를 기다릴 뿐이다.

둘째는 현실적 위험이나 환란의 정도를 주관적으로 축소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이 너무 암담하기 때문에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길러진다. 비록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절망하고 주저앉기보다는 비현실적이나마 낙관주의를 가지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훨씬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현실을 감내하는 유용한 집단적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특징으로 '한(恨)'을 꼽는다. 한은 사전적으로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의 특징 중에는 '신명'도 있다. 신명은 한 맺힌 상황에서 오히려 해학을 통해 웃거나 한 바탕 신명나게 노는 것을 통해 한 맺힌 현실을 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한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습득했다. 예를 들면,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빠져 비통해하는 유족들과 잡기(雜技)를 하면서 시끄럽게 노는 것을 둘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비현실적 낙관주의로 볼 수 있다.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고통스런 현실을 감내하는 유용한 방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보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록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직시하고 고난을 타개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적합한 방안을 강구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더 이상 요행을 바라거나 자의적인 인지적 왜곡을 통해서는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이제는 이겨낼 수 없는 과거의 현실적 고통은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과거에서 벗어나 안전불감증의 사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