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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사이키델릭, 무한대의 정신세계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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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사이키델릭, 무한대의 정신세계 추구"

새달 1, 2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콘서트 여는 신중현씨


[글로벌이코노믹=온라인뉴스팀] "인간의 근본적인 것, 군더더기 없이 포인트 되는 것만 다룬 게 통한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전설' 기타리스트 신중현(74)은 자신의 음악이 장수하는 까닭에 대해 "제 음악의 테두리가 크지는 않습니다. 대신 군더더기가 아닌 결정적인 것만 집어넣죠. 감정과 정신으로 깊이 있는 덕을 추구합니다. 덕분에 뒤떨어지는 것이 없어요"라고 밝혔다.

"그런 음악을 처음부터 하겠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음악 자체가 그런 것이니까요. 장식을 많이 써서 화려하게 만드는 것보다 음악은 음악다워야 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생각입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중현은 1955년 미8군 무대를 오가며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1963년 국내 최초의 록 밴드 '애드훠(ADD4)'를 결성, 한국 록음악의 창시자가 됐다. 지금까지도 가수들이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는 '미인' '꽃잎' '봄비' '님은 먼 곳에' '아름다운 강산' 등 수많은 히트곡들의 주인공이다.

신중현의 음악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 받았다. 2009년에는 미국의 기타전문회사 펜더로부터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스티비 레이 본, 잉베이 맘스틴, 에디 반 헤일런에 이어 여섯 번째로 헌정기타를 받으며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반열에 올랐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의 초청을 받아 로스앤젤레스 엘 레이 시어터에서 공연하며 록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청중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신중현 음악의 사이키델릭한 면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 사이키델릭을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한국에는 그 단어 자체에 환각이라는 퇴폐적인 뉘앙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는 차원이 다르죠."

인간의 틀을 벗어나 고정되지 않은 무한대의 정신적인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음악이라는 평가다. "록이 환각제의 힘을 빌렸다기보다는 맨정신으로 새로운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점입니다. 마약을 하고 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죠. 맨정신으로 정상적인 세계에서 그런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이키델릭은 무한대의 정신세계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사이키델릭한 음악을 하는줄 몰랐다. "70년대 초에 미8군에서 음악을 하면서 AFN(주한미군 국내방송망)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제 음악이 사이키델릭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음악을 형상화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핵폭탄이 터지는 그림, 물결 그림 등 다양한 임팩트가 형성되더라고요."

현지인들로 채운 미국 공연은 반응이 뜨거웠다. "과연 한국 노래를 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반응을 보고 마음을 놓기 시작했어요. 첫 곡인 '떠나야 할 그 사람'부터 마지막곡 '아름다운 강산'까지 반응이 모두 좋았어요. 계속 앙코르가 나오는데 그럴 줄 몰라 준비를 안 했기 때문에 뒷문으로 빠져나왔어요. 길거리에 나갔더니 사인을 해달라고 그러고. 새로운 세계를 느꼈습니다. 하하하."

해외 팬들에게 소개할 만한 자신의 음반은 없다. "제작자가 상업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당시 열심히 했는데 관여는 안 했죠.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그래서 뭐가 좋다는 말씀은 못 드립니다."

다만 1972년 밴드 '더 멘' 시절에 발표한 '아름다운 강산'에 대한 애착은 크다. "미국 레코드 사장도 이 곡을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나중에 이선희가 부른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사이키델릭 붐이 조성되던 시기에 뒤질세라 한 곡이에요."

짧은 머리를 유지하다 어깨 바로 위까지 백발을 기른 신중현은 12월 1, 2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더 기타리스트 신중현 콘서트'를 열고 팬들을 만나다. "귀찮아서 놔뒀더니 머리가 길었어요. 이 참에 록의 진수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콘서트 1, 2부에서 신중현은 정통 사이키델릭 록의 진수를 선보인다. 1부에서는 신중현의 아들이자 뮤지션으로서 활약 중인 신윤철(43·기타·건반)·신석철(41·드럼)이 중심이 된 밴드와 12인 현악단이 신중현의 명곡들을 새로 편곡해 들려준다. 2부에서는 지난 9월 미국 초청공연에서 들려준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1부에서는 대중적인 것을 들려줘요. 하지만 2부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원래 음악하던 시절에 제가 추구했던 음악성이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직접 기타를 치고 노래까지 부른다. "뮤지션들은 자기만의 주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 나름대로의 진정힌 기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그것이 목적힙니다. 저란 인간 자체를 노출시킬 겁니다."

80년대 이후 만든 곡 중 그간 공개하지 않은 1곡도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비밀입니다. 극비지만, 엄청난 장면이 벌어질 것이에요. 하하하."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신중현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새로운 곡을 만들지 않고 있다. "해놓은 것들 중에서도 대중이 모르는 것이 많다"며 웃었다. "활동 금지 등 주로 힘들 때 곡을 썼어요. 그런데 80년대 이후 곡들은 나이가 든 데다가 생활도 힘들고 방탕 또는 방황할 때 써서 곡이 난무하고 대중에게 들려주기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묻어 놓았습니다. 대중에게 들려주는 것이 부담스럽거든요."

'한국 록의 대부'라는 수식어는 마음에 든다.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부할 필요가 없겠다 싶더라고요. 하하하. 미국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더라고요."

록은 '젊은이들이 발산하는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그 때문에 음악성을 폭발적으로 터뜨릴 수 있는 장르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록의 붐이 필요합니다. 록의 대부가 있음으로써 그네들이 의지를 해 가지를 펼치고 부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커들이 뒷전으로 밀려있는데 제가 설치니 떳떳하게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로커고 너네도 로커니까 열심히 하자'고 합니다."

처음 통기타를 손에 쥔 중학교 2학년 때를 떠올렸다. "바이올린을 샀는데 선생도 없고, 아무리 혼자 긁어봐야 깽깽이 소리만 나더라고요. 1년 후에 악기점에 갔는데 기타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꿨는데 묵직한 소리도 나고 하면 할수록 노래도 부르고 간편하더라고요. 일렉기타는 치면 칠수록 깊이가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은 기타 위주인데 기타를 잡은 것이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집에 있는 연습실에 직접 못을 박아 리모델링할 정도로 건강이 괜찮다는 신중현은 30대 때 치던 기타와 70대에 치는 기타가 다르다. "소리가 다릅니다. 30대 때는 힘이 주는 소리로 그 자체가 억세죠. 그런데 지금은 도(道)로 합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육체적인 소리가 아니라 몸에서 입체적으로 나오는 소리죠. 손가락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과 함께 몸, 마음이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공연에서 일흔이 넘어도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 공연을 실황 앨범으로 발매할 생각도 있다. "라이브가 최고죠. 요새 노래 따로 연주 따로 멀티로 녹음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됐어요. 그것은 음악이 아닙니다."

신석철, 베이시스트 송홍섭(58)과 함께 5인 밴드 '카도'를 결성하고 신중현 헌정앨범 '뮤직 오브 신중현'을 발표하기로 한 신윤철에게도 한 마디를 던졌다. "녹음은 멀티로 하지말라고 했어요.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죠."

2006년 말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 신중현은 그러나 팬들의 요청으로 굵직한 무대는 챙기고 있다. "은퇴한 것은 틀림없는데…. 그래서 떳떳하게 방송가서 못하고 숨어서 하고 있다"며 웃었다

미국 등 음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나 자신의 존재가 있다고 여겼다. "LA 같은 경우는 항상 날씨가 좋고 고정적이죠. 그런데 여기는 춥고 덥고 맵고 짜고 굴곡이 심합니다. 이런 것에 부딪혀서 살아서 이 몸에서 나오는 기타소리를 느껴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입니다. 이번에 LA 가서도 그것을 느꼈어요. 그런 역경이 없으면 끝났을 텐데 은퇴를 해도 하늘에서 도왔는지 기타를 주고 변두리까지 왔지요. 한국 덕택에 운명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늙었으니 그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를 알아보면 (어디든)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