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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 비상 걸린 보험사, 자본성증권이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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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성 비상 걸린 보험사, 자본성증권이 돌파구?

보험사 재무위기 심각…자본성증권 발행 등으로 자본 확충 나서

최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최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들어 금리가 오르면서 보유 채권 가치가 급락하자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RBC) 비율도 급격히 떨어졌다. 보험사들은 고금리 우려에도 자본성증권 발행으로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나섰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보험사가 발행한 자본성증권 발행액 만 약 2조6000억원(지난 5월15일 기준) 이다. 상반기 기준 자본성증권 발행액은 2017년(2조1990억원)을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NH농협생명이 총 8000억원 규모로 후순위채를 발행한 데 이어 DGB생명(950억원), 흥국생명(500억원), 푸본현대생명(500억원) 등이 후순위채나 영구채 발행에 나섰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 발행에 나선 이유는 바로 보험사의 지급여력(RBC) 때문이다. RBC는 보험금을 청구 시 보험사가 일시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보험사 재무건전성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로 보험업법상 100% 이상을 유지토록 규정한다. 반면 금융당국에선 보험사들에게 보통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자본성증권은 금융당국의 재무건전성 평가에서 자본으로 인정받아 RBC 비율을 방어할 수 있다. 최근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보험사의 RBC 비율은 위험 수위까지 떨어졌다. 금리 상승으로 보유한 채권(매도가능증권)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회계상 원가로 처리되는 만기보유증권과 달리 시가로 평가받는 매도가능증권은 금리 상승 리스크에 취약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올 들어 연 3.434%까지 치솟았다. 2014년 6월16일(연 3.315%) 이후 약 8년 만에 가장 높다. 일반적으로 장기 국고채 금리가 0.1%p 오르면 RBC 비율이 1~5%p 하락하는 것으로 본다.

실제 보험사들의 RBC 비율은 위험 수준이다. 올 1분기 실적 발표 상 KB손해보험의 RBC 비율은 지난해 말 179.4%에서 올 1분기 말 162.3%로 떨어진 데 이어 한화생명도 184.6%에서 161.0%로 23.6%p 낮아졌다. DB손해보험은 203.1%에서 188.7%로 감소했다. 메리츠화재는 207.5%에서 178.9%로 떨어졌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와 삼성생명도 RBC 비율이 하락했다. 올 1분기 삼성화재의 RBC 비율은 271.3%로 지난해 말보다 34.1%p 내려갔다. 삼성생명도 올 1분기 RBC 비율이 246%로, 지난해 말보다 58.6%p 떨어졌다.

RBC 비율 방어를 위해 자본확충에 총력을 다한 NH농협생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NH농협생명의 RBC 비율은 지난해 말 210.5%에서 올 1분기 131.5%로 79%p 급락했다. 올 들어 총 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이어 자본성증권도 8300억원 발행했지만 RBC 비율 급감은 막지 못하고 있다.
RBC 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 금융당국은 '적기시정' 조치를 발동하고, 최악의 경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다. 실제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기준 RBC 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진 MG손해보험에 대해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 바 있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상대적으로 발행이 까다로운 유상증자 대신 '자본성증권 발행'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후순위채는 발행사가 파산 시 다른 채권자 빚을 모두 갚은 후에나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정해져 있으나 발행회사의 선택에 따라 만기를 연장할 수 있어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일정 이자만을 영구히 지급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유상증자에 대한 투자심리도 빠르게 위축되면서 자본성증권으로 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자본성증권의 조달금리가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 장기적으로는 부담이다.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은 비상시 변제 순위가 뒤로 밀리는 만큼 발행금리가 더 높다.

지난 13일 발행된 메리츠화재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메리츠화재는 공모희망금리로 4.30~4.90%를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 대다수가 금리 상단에 매수 주문을 넣어 4.87%의 고금리로 책정됐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메리츠화재가 같은 만기로 발행한 후순위채의 최종 발행금리는 3.40% 수준이다. 자본성증권 발행 러시가 향후 금융비용 급증이라는 '후폭풍'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보험사들의 노력은 회사채 시장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확산되고 있다.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사전적으로 부동산 매각에도 나선 탓이다.

내년에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되면 부동산 자산에 따른 현금 보유 금액이 늘게 된다. KB손해보험은 서울 합정빌딩과 경기 구리빌딩 및 수원빌딩, 대구빌딩, 경북 구미빌딩 등 5개의 건물을 최근 국내 한 자산운용사에 매각했다. 한화생명은 서울 신설동 사옥 매각을 진행 중이다. 신한라이프는 2020년 신한L타워를 매각한 데 이어 천안연수원도 시장에 내놨다.

금융당국도 위기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한다. 내년 RBC 비율을 대체해서 도입되는 신지급여력비율(K-ICS)이 적용시 부채 평가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금감원이 지난달 22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20명을 모아 긴급 간담회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찬우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과도기적 단계에서 보험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이도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ohee194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