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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 포비아②] 포비아 단어에 매몰된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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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 포비아②] 포비아 단어에 매몰된 한국사회

스타벅스 가방서 나온 발암물질…안전관리 기준 부재
정부, 유해물질 논란 '갈팡질팡' 대응에 소비자 불안감 커져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시내 스타벅스 매장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시내 스타벅스 매장 모습. 사진=뉴시스


스타벅스 서머 캐리백, LG생활건강 물티슈 등에서 유해물질이 잇달아 검출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케미포비아(화학 공포증)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제품 성분 관리 기준에 대한 정부 법령이 명확하지 않거나 정부 조치가 일관적이지 않으면서 과도한 불신과 공포를 확산, 소비시장을 혼란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활화학용품 법 개선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비재들 속에서 발암물질이 검출, 국민 불안이 조성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 프로모션 증정품 서머 캐리백에서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검출됐고 LG생활건강 물티슈 '베비언스 온리7 에센셜55 캡 70매(핑크퐁 캡 물티슈)'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 성분이 나왔다.

이에 앞서선 홍콩과 대만에서 판매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현지 판매가 중단되고 회수 조치가 내려졌다.

위법성 있는 물질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1년전 수면 위로 드러난 '가습기살균제 사건'뿐만 아니라 '가습기살균제 치약 파동',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등 생활용품 속 함유 금지 성분 검출로 기시감이 들만큼 케미포비아 문제는 역대 정부 때마다 되풀이 되어 왔다.

◆ 안전관리 기준이 없다...'케모포비아' 키우는 정부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 체계 부실이 근본적인 원인이란 지적이다. 실제 스타벅스의 경우 발암물질이 들어간 가방이 소비자들에게 닿기까지 유해물질 안전기준에서 법적 공백이 있었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안전관리법(전안법)'에 따르면 가정용 섬유제품에서 포름알데히드 안전요건 기준은 내의류와 중의류의 경우 75mg/kg 이하, 외의류 및 침구류의 경우에는 300mg/kg 이하다.

그러나 서머 캐리백은 가방으로 분류돼 포름알데히드 안전요건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안법상 가방은 '기타 제품류'에 해당하며, 기타 제품류는 유해물질 안전요건 적용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업이 제품에서 포름알데히드를 검출했으나 유해 여부를 판단하고 제조·유통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었단 의미다.

포름알데히드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는 이유에 대해 국가기술표준원 측은 섬유 제품은 인체에 직간접적으로 접촉되는 경우 안전관리 대상이 되지만, 가방은 인체에 접촉하는 빈도가 낮고 접촉도 일시적일 것으로 판단해 안전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물티슈 이슈 중심에 선 CMIT·MIT 역시 해석이 모호한 실정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현재까지 재판부로부터 CMIT·MIT의 유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생활용품에는 CMIT·MIT 유해성을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5년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을 통해 샴푸, 바디워시 등 사용 후 씻어내는 제품에 대한 CMIT·MIT의 제한적(15ppm) 사용을 허락한 반면 물티슈 제품에는 해당 성분의 함유를 금지했다.

물티슈가 씻어내는 제품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미국의 경우 씻어내지 않은 화장품에도 7.5ppm 이하 기준으로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논란이 된 LG생활건강 물티슈에는 CMIT·MIT 2.4ppm이 들어 있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CMIT·MIT의 독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생활용품에서는 위해성을 이유로 보존제로 못 쓰게 하는 상황"이라면서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한 소비자들의 혼란과 공포감을 키운다고 강조했다.

◆ 기업의 늦장 대응보다 더 심각한 것...'관리체계 부실' 및 ''정확한 정보'


물론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해당 기업들의 안일했던 늦장 대응 역시 책임의 무게가 크다. 스타벅스는 프로모션 사은품인 서머 캐리백에서 발암물질을 제조 과정에서 발견했음에도 이벤트를 강행했고 LG생활건강은 물티슈에서 위법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2~4일이 지난 후에야 자사 홈페이지와 언론에 알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경·생활용품 사용자들의 막연한 공포감과 불안감을 키우기보단 1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가 관리 체계 보완과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 가방은 인체에 많이 접촉하는 품목이다. 유해물질이 소량이어도 축적되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를 우려하는 것"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 유해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감성이 커졌다.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을 기반으로 유해물질 안전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CMIT·MIT는 사용하는 용도, 총량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해당 성분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공기 중에 미립자로 떠다니는 '에어로졸'로 호흡기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 질환 등 유해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나 바디워시, 샴푸 등 사용 후 씻어내는 제품에 소량이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건 괜찮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는 "화학물질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유해성이 다르다"면서 "CMIT·MIT는 호흡으로 흡수되면 인체에 문제가 발생하지만 일시적 접촉, 섭취에 한해서는 괜찮다"고 전했다.

박은정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 역시 "CMIT·MIT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면 유해증상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면서 "씻어내는 제품은 피부를 통해 흡수, 노출되는 양과 빈도가 상대적으로 적어 단시간 사용하는 건 무해하다"고 했다.

◆ 소비자를 극도의 공포로 몰아가는 대한민국


국내 소비자들의 케모포비아가 월등히 높다는 점도 문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유아용품인 물티슈에서 해당 성분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일부 맘카페 커뮤니티에서는 물티슈를 비롯한 기저귀 등의 유아용품 사용에 대한 불안을 잇달아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가 유해물질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소비자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아모레퍼시픽의 치약제품 회수다. 식약처는 지난 2016년 CMIT·MIT 성분이 들어간 아모레퍼시픽의 치약 제품을 회수한 바 있다.

당시 식약처는 해당 성분이 미국, 유럽 등에서 치약 보존제로 제한적(15ppm)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물질이라는 이유로 이 같이 조치했다. 그러나 뒤늦게 CMIT·MIT가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점을 감안해 해당 성분을 사용한 치약 제품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켰다.

박 교수는 "모두가 유해물질을 바라볼 때 성분 자체의 유해성을 판단하기보다 해당 성분이 노출되는 총체적인 양 등 과학적인 고민을 통한 접근을 해야한다"며 "현재는 생활화학용품에 사용된 화학물질들의 위해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료 확보 등을 통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고 그전까지 소비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를 줄이는 등의 방법과 과학적 설명을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희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hj0431@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