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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정부는 ‘속전속결’, 기업은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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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정부는 ‘속전속결’, 기업은 ‘당황’


‘대기업 때리기’에도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 대충 2가지 시나리오로 나타날 수 있다.

시나리오 ①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때리기→ 법인세율 등 인상→ 경영진 압박∙기업 확장 억제→ 투자 위축→ 새 상품 개발 부진→ 경쟁력 하락→ 기업 수지 악화→ 고용 축소∙임금 하락.”

시나리오 ②의 경우는 이렇게 전개될 수 있다.

“대기업 때리기→ 투명 경영 유도→ 기업자금 유출 억제→ 투자 여력 증가→ 새 상품 개발 촉진→ 경쟁력 향상→ 기업 수지 개선→ 고용 확대∙임금 상승.”

시나리오 ①의 경우는 반(反)기업정서를 업고 유권자인 국민에게 ‘속이 후련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룹 총수를 혼내고,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도록 지출을 늘리도록 하면 지지율이 높아지고 ‘표’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기업들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일자리를 ‘왕창’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이 줄고 월급도 깎일 수 있다. 기업의 ‘지급능력’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제가 불황일 때는 더욱 그럴 수 있다.

시나리오 ②의 경우는 대기업을 때리더라도 경영을 투명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당장 생색이 날 수는 없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 여력이 증가, 고용이 늘고 임금도 따라서 오를 수 있다. 그런 결과, 노사관계가 좋아져 파업도 자제될 수 있다.
똑같이 대기업을 때리더라도 결과는 이처럼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문제인 정부는 지금 시나리오 ①과 ‘닮은’ 방법을 선택한 듯 보이고 있다. 그 바람에 기업들의 기는 더욱 꺾이고 있다.

우선 사외이사 임기를 6년, 계열회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새행령 개정안이 기업들에게 ‘발등의 불’이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무더기로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59개 대기업집단의 26개 상장기업 사외이사 853명을 대상으로 재임 기간을 분석한 결과, 올해 주총에서 물러나야 하는 사외이사는 7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총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3월말’이기 때문에 앞으로 불과 두 달 사이에 ‘마땅한 사외이사’를 구해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기세가 등등해진 국민연금과 정부의 눈치까지 보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낙하산’이 무더기로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부 기업의 경우는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적지 않은 현실이다. 삼성과 SK는 각각 6명, LG·영풍·셀트리온은 5명씩 새로 선임해야 한다고 했다. LS와 DB는 4명, 현대차·GS·효성·KCC는 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주총에서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76명이지만, 2022년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까지 포함하면 6년 이상, 계열회사 포함 9년 이상 장기 재임한 사외이사는 205명으로 전체의 24%에 달한다는 CEO스코어 집계다. 올 한 해로 끝날 수 없는 사외이사 교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상황이 가장 다급한 기업은 셀트리온이다. 전체 사외이사 6명 가운데 5명을 올해 주총에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의 김동일‧이요셉(11.7년)‧조균석(11년) 이사가 10년 이상 재임 중이었고, 조홍희‧전병훈 이사는 각각 7년, 6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데, 임기가 3월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장기집권’한 사외이사도 적지 않다. 유진기업의 김진호 이사는 2002년 3월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군림’한 ‘붙박이 사외이사’라고 했다.

10년 이상 재임한 사외이사는 ▲김선우(영풍정밀‧16년) ▲장성기(영풍‧15년) ▲김영기(하이트진로‧14년) ▲이석우(한진칼‧13년) ▲최경식(한라홀딩스‧13년) ▲정창영(아시아나항공‧12.1년) ▲김동일(셀트리온‧11.7년) ▲이요셉(셀트리온‧11.7년) ▲조균석(셀트리온‧11년) ▲한봉훈(영풍정밀‧10.1년) ▲권오승(KCC‧10.1년) ▲송태남(KCC‧10.1년) ▲홍석주(삼성SDI‧10년) ▲장항석(DB‧10년)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3월에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 교체되어야 한다고 했다.

2022년 임기 만료인 오호수(16년)‧금병주(13년) LS네트웍스 이사와, 2021년 만료되는 정서진(금호산업‧ 13.5년)‧정종순(KCC‧13.1년)‧박진우(효성ITX‧13.1년)‧김재기(남산알미늄‧13년)‧민재형(대한화섬‧12.1년)‧이재현(태광산업‧10.8년) 이사 등도 재임 기간이 10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많은 사외이사를 바꾸자면 난데없는 ‘인력난’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속전속결 정책’은 후유증을 몰아왔다. ‘왕창’ 올린 최저임금이 그랬고, 법정 근로시간 단축이 그랬다. 사외이사 제도가 후유증을 하나 더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