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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Biz 24] 마야문명 몰락은 치열한 전쟁 후 기후변화로 곡물재배 어려워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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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Biz 24] 마야문명 몰락은 치열한 전쟁 후 기후변화로 곡물재배 어려워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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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멕시코 및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한 인디오 문명인 마야문명의 몰락 이유에 대해 새로운 이론이 나왔다. 치열한 전쟁을 벌인 후 기후변화로 곡물 재배가 어려워 결국 멸망했다는 것으로 기존의 이론을 반박하고 있다.

고대 마야 문명에서 가장 유성기인 고전기(Classical Period)로 불리는 700년 정도의 기간(기원전 250년경부터 950년경까지) 동안 전쟁은 하나의 ‘의식화(儀式化)’된 사건이었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정설이다. 즉, 왕족이 납치되거나 상징적인 건조물이 해체되는 경우는 있어도 대규모 파괴 행위가 되거나 대량의 사상자가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고전기의 종말에 이르러 가뭄이 커져 식량이 부족한 결과 왕국 간의 전쟁이 격화되어 문명이 쇠퇴를 향해 갔다는 설이다.
그러나 지난 8월 5일자 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기후의 영향으로 마야의 농업이 붕괴하기 훨씬 앞서 군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말려든 치열한 전투 행위(총력전, total warfare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전 기후학자 데이비드 월(David Wahl)은 2013년 처음으로 중남미 과테말라 북부에 있는 라구나 엑나브(Laguna Eknave) 호수 탐사에 나섰다. 고전기 후기로 불리는 시대(기원 800년~950년)에 일어난 가뭄의 증거를 찾아 그것이 농업에 미친 영향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호수는 고대 마야의 도시 유적 위투날(Witunal)이 있는 벼랑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월 연구원은 이 호수 밑에 쌓인 퇴적물을 살펴보면 과거 이곳에서 번영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수에 가라앉은 불의 흔적


"호수에는 매년 약 1㎝의 속도로 퇴적물이 쌓인다. 그래서 퇴적물은 여기서 일어난 일을 꼼꼼하게 비춰내는 거울이 된다. 퇴적물이 급속히 쌓이고 있어 숲이 벌채되어 땅은 개활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퇴적물에서 옥수수의 꽃가루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 근처에서는 주로 옥수수가 재배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월 연구원이 라구나 엑나브 호수바닥에서 찾아낸 것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큰 숯 덩어리를 포함한 두께 3㎝ 정도의 층이었다.

"땅을 개간하기 위해 숲을 태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근처 호수의 퇴적물에서는 흔히 숯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호수에 대해 20년간 조사를 했지만 이 정도 두께의 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고 월은 말했다.

미국지질조사국의 전 기후학자 데이비드 월 연구원
미국지질조사국의 전 기후학자 데이비드 월 연구원

당초 월 연구원은 이 숯층이 대규모 화재로 생긴 게 아닌가 의심했다. 이 화재 이후 수십년부터 수백 년간 퇴적물에 담긴 옥수수의 꽃가루는 줄었다. 이 화재와 꽃가루의 감소는 그가 애타게 즐기던 고전기 후기 가뭄에 따른 것일 수 있다. 다만 그 이전(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기원 690년부터 700년 사이)에 호수에 쌓인 숯에서는 가뭄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의도적으로 훼손된 건조물이 많아 화재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불은 침입자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심지어 희귀한 것도 발견됐다. 고대 마야인이 이름 붙인 '바람 홀(Bahlam Jol)'이라는 도시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비석이다.

이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도 이러한 비석이 발견되고 있다. 그들에 새겨진 단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던 중 옆에 있는 나란호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비석으로부터 인근 왕국에 대한 일련의 군사행동이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기에는 697년 5월 21일에 해당하는 날 "바람 홀은 태워졌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것은 바로 숯이 호수에 퇴적돼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기술 내용과 화재가 났다는 사실을 확실히 연결할 수 있었다고 월 연구원은 말했다.

놀랍게도 나란호의 비석에 "자랑스럽게 태워버렸다"고 새겨진 도시는 바람 홀만이 아니다. 오히려 인근의 최소 3개 도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중 1개, 현재의 비스타 델 카요에서도 최근 대규모 화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전기 후기에 처음 '총력전'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논문의 저자들은 생각한다.

월 연구원은 그래서 도시가 태워진 것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쟁이 심해 마야가 쇠퇴했다는 생각은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월 연구원은 마야 문명 붕괴의 원인이 정말 기후변화 때문인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대규모 화재 뒤 옥수수 생산량은 크게 감소한 것 같지만 완전히 재배되지 못하는 것은 기원 후 1000년경이다. 그 무렵 가뭄이 이 지방 전체를 덮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서 드러났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비록 격렬한 전쟁은 있었지만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곡물의 재배가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마야가 쇠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고전기 후기보다 훨씬 전부터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최근 들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월 연구원의 연구로 또 하나 늘어난 것이다.


김형근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hgkim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