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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포털서 수면위 부상?... 성실한 우수약품생산업체로서 안정된 지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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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포털서 수면위 부상?... 성실한 우수약품생산업체로서 안정된 지위 구축

해방 이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이 20일 포터에서 관심이다.

유일한은 평양 출생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상인이었던 유기연이며, 어머니는 김확실(개명 후 김기복)로 9남매 중 맏아들이다. 주식회사 유한양행 창업자이다.

1904년 9세 때 외부 참서관을 지낸 박장현과 그의 조카 박용만을 따라 미국에 건너갔다.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상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스탠포드대학원에서 3년간 법학을 전공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전자회사 사원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1922년 자립하여 숙주나물을 취급하는 라초이식품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25년까지 50여만 달러의 거금을 벌었다. 1926년 3월에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귀국하였다. 그해 12월 유한양행을 설립했였다.

1939년 사업상의 이유로 미국을 갔으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귀국하지 못한 채 8·15광복을 맞이했다. 광복 후 미국에서 돌아와 유한양행을 재정비하였다. 유한양행은 1953년 휴전 이후 계속 성장하여 성실한 우수약품생산업체로서 안정된 지위를 구축했다.

1969년 기업의 제일선에서 은퇴하여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에게 사장직을 물려주었다.

이로써 전문경영인 등장의 길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산업동탑훈장을 받았으며, 1965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