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리뷰] 인공미인 강요하는 시대의 우울한 풍경…최원선 안무의 '취(醉)'

기사입력 : 2019-06-2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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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지난 6월 8일과 9일 성남아트센터(예술감독 박명숙) 앙상블시어터에서 공연된 '자・아・도・취(Narcissism)'에서 최원선(본(本)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안무의 '취(醉)'는 인간의 몸을 주제적 동인(動因)으로 삼는다. 인위적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슬픔을 조망한 춤은 그 과정에서 '물든다, 빠진다, 취한다'라는 그릇에 감정을 이입하고 이미지를 구축한다.

황홀(fascination)에 이르는 길은 몽유도원처럼 이름답지만 영속될 수 없는 한계와 슬픔이라는 정해진 답을 제시한다. 정답을 알고 저지르는 일은 모험을 수반하고, 떠밀려 의도치 않은 자신의 행위로 벌어지는 결과는 드러나지 않는 슬픔을 낳는다. 세태에 민감한 현대 여성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저질러지는 자학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주관세우기에 미숙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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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취'는 응시의 대상이 된 여자의 삶, 타고난 아름다움을 배반한 여성의 몸이 현대판 코르셋에 갇혀 자박됨을 주목한다. 몸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잔인함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하고 되묻는 여성은 타인의 시선에 투영된 피사체와 당당히 맞서고자 다짐하지만 '아름다운 여성의 몸' '아름다워서 슬픈 여성의 정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여성의 자유'에 무너진다,

'취'는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삼는 일군(一群)의 인간들의 심리적 욕망,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만연해 있는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주입하는 왜곡된 여성의 외적 기준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과 그것에 얽매여 고통 받는 여성들 자신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담는다. '취'의 외양은 낭만적 단자(單子)를 달지만 이면에는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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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침청(沈靑)을 두른 여인(최원선)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궤적은 슬픔을 가중시키는 진중한 모습이다. 달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반사판(거울)이 오르내리면서 작은 고민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채집한다. 몸의 기(氣)와 기계의 기(技)가 만나 동작 하나 하나가 긴장감을 부르고 때론 수련(修鍊)의 모습이거나 동정 없는 사회에서 서로의 아픔을 감싸는 동정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작품은 부드럽고 굴곡진 여성의 신체, 가녀리고 처연하기까지 한 한국적 여성상을 한국 춤의 부드러운 선과 유연한 움직임, 넓은 치마폭의 조합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무대 위의 움직임과 영사막이 어울리는 '간 동작'(인터렉티브) 영사기법을 사용한다. 둥근 대형 거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를 바라보며 확인받음과 동시에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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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실제의 춤이 투사되는 영상에서 움직임은 다양하게 파생되고 변형・왜곡된다. 거울은 다시 여성 자신의 내면세계로 넘나드는 통로가 되어, 심리적・정신적으로 강박에 싸여 고통 받는 여성의 모습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강한 몸부림의 군무로 구체화 된다. 독무로 여인의 춤이 집중되면 '여인의 몸이 짊어진 삶의 무게'에 대한 슬픔과 억눌린 감정이 춤으로 용해된다.

'취'는 다양한 몸, 그 자체의 당당함이 최고미를 만들어내는 모습들과 모든 움직임의 자취들이 중첩되고, 유의미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영상과의 어우러짐으로 마무리된다. 안무가 최원선은 원초적 여성성 주장의 입장에서 유난히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왜곡되고 변형되어 본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현대 사회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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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최원선은 디지털시대의 테크놀로지와 인터렉티브 기술을 활용하여 춤과 함께 무대화하는 작업에 대한 의미 부여와 예술적 가치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왔다. '취'는 디지털 미디어아트 쇼나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점・선・도형과 같은 형태로 추상화된 모습이 아닌 한국 춤과 데코롬을 이루는 회화적 이미지를 견지한 주제성 부각에 노력한 진지한 작품이었다.

'취'는 한국 창작춤이 성취한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영화가 수용했던 타 장르와 학문에 대한 포용을 창의력이 빛나는 춤에서도 적용시키고 있다. 융복합적 차원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비주얼의 극대화는 미학의 상부구조에 접근한다. 상징과 은유로 짠 움직임은 들뜸을 가라앉히고 꼭 필요한 기교적 절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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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선 안무의 '취(醉)'

새로운 문화담론의 고리가 된 '취'는 예술지상주의를 넘어 몸에 관한 여성의 자기주장을 독려한다. 여성 4인무는 여성을 감싸고 보호하는 동지적 역할을 하며 때론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전사적 이미지이다. 남한산성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공간에서 작금의 여성이 외침당하는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깨우침이었다. '취'는 일침을 소지한 동시대의 교본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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