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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홍콩주재 전 외신기자가 본 200만 시위 “그 배경에는 중국화에 대한 우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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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홍콩주재 전 외신기자가 본 200만 시위 “그 배경에는 중국화에 대한 우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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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200만 명이 거리로 나선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시위.


홍콩에서 16일에 일어난 약 200만 명(주최 측 발표)시위를 보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마음이 들었다. 홍콩시민이 100만 명 규모로 중국에 ‘NO’라고 외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런 지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홍콩에서 최초로 100만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난 것은 영국령 시대인 1989년 5월21일이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을 무대로 한 중국의 민주화운동 지지를 호소하는 시위였다. 그리고 같은 달 28일에도 150만 명 규모의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다. 겉으로는 중국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중국반환이 8년 후인 1997년에 육박하면서 자신들의 장래를 걱정한 반중시위였다. 홍콩의 중국화를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중국 본토의 범죄용의자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조례의 개정문제를 놓고 이달 9일 103만 명(주최 측 발표)이 16일에는 약 200만 명이 홍콩정부와 그 배후의 중국당국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원래 홍콩은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도시다. 아편전쟁 이후 1842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홍콩은 ‘빌려진 장소, 빌려진 시간’으로 자주 묘사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홍콩에 주재할 당시 주변에는 중국과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민을 가라고 생각했던 홍콩 시민이 적지 않았다.

고도의 자치가 보장된 홍콩의 ‘일국양제’는 반환 이후 50년간 즉 2047년까지만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후엔 공산 중국에 완전히 먹힌다. 당시 시민들에게 홍콩은 반환 후에도 빚진 곳, 빚지는 시간이라는 인식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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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미완으로 끝난 지난 2014년의 ‘우산혁명’때의 반정부시위 군중 모습.


변화가 생긴 것은 반환 이후 태어난 홍콩인이 늘어나면서다. 비식민지인 홍콩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더는 이민의식이 없다. 홍콩이 고향이지 빚진 게 아닌 자신의 장소다.

하지만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까지는 역시 ‘빌려진 시간’이다. 반환의 해에 태어난 홍콩인은 50세의 한창 나이로 2047년을 맞는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10대의 참여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젊으면 젊을수록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

홍콩 반환 전후에 활발하게 행해진 논의가 있다. 반환 후에 가는 것은 중국의 홍콩화인가, 홍콩의 중국화인가. 반환 이후 한동안 두드러진 현상은 중국의 홍콩화였다. 중국은 2001년 세계 무역 기구(WTO)가입을 한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발전을 실현하면, 홍콩의 중국화가 진행되어 간다.

최근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제동이 안 되는 홍콩의 중국화라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에 대한 반발은 2047년이 다가오자 클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홍콩 시민은 이번에 대규모 시위를 통해 중국 당국과 홍콩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면서 “연약한 태도로는 이길 수 없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의기도 오른다.

1989년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톈안먼 광장에서 100만 명 규모의 시위를 벌였으나 결국 공산당에 무력 탄압되고 만다. 16일 200만 명 데모에 참가한 홍콩의 남성(62)는 이런 불안을 말했다. “앞으로 홍콩에서 미니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번 성공체험을 홍콩판 톈안먼 사태로 가는 한 걸음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