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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74세에 금속펀드 투자자로 컴백한 '미스터 코퍼' 마이클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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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74세에 금속펀드 투자자로 컴백한 '미스터 코퍼' 마이클 파머

'미스터 코퍼(구리)'가 돌아왔다. 영국 런던의 유명한 헤지펀드 레드카이트의 공동창업자 마이클 파머(Micael Farmer)를 두고 한 말이다. 올해 74세인 그는 정치인이자 구리 트레이딩(중개매매)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펀드매니저다. 은퇴소문이 나돈 그가 새로운 금속 펀드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미스터 코퍼(구리)' 마이클 파머
'미스터 코퍼(구리)' 마이클 파머

미국 광산업 전문 매체 마이닝닷컴에 따르면, 레드카이트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릴리(David Lilley)가 지난해 '드레이크우드 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하고 이 펀드를 떠나자 파머도 60년 경력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는데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머는 레드카이트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한 한 시니어 트레이더가 운영하는 새로운 펀드에 투자하고 나선 것이다. 이 펀드는 레드카이트가 만든 것으로 역시 레드카이트의 다른 펀드를 운영한 조지 대니얼이 운영한다.

대니얼과 파머는 그들의 말을 빌자면 '소액'을 펀드 종잣돈으로 넣었다. 이 펀드는 주로 기초금속과 귀금속 단기 투자에 집중하는 펀드다. 이들은 펀드 규모가 커지면 외부 투자자를 모집할 생각이다.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에 있는 완티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18살부터 런던금속거래소 회원사 'AJ스트로스'에서 주급 8달러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2~3년 뒤 그는 영향력있는 금속 트레이더인 만프레드 코플만의 눈에 뛰었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시티오브런던에서 보내면서 기초금속 특히 구리 중개와 매매업에 종사했다. 파머는 1980년대 말 필브로새먼브러더스에글로벌 기초금속 트레이딩 부문 대표를 지냈다. 그는 '금속상품회사(MG Metals Company)'를 설립해 10년을 경영했는데 이 회사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최초의 금속 트레이딩회사였다.

파머는 2005년 광산융자와 선물투자를 하는 헤지펀드 레드카이트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2001년부터 보수당인 토리당의 혈혈 지지인 그는 토리당이 2015년 의회 다수당이 되자 재무장관에 올랐다. 영국 상원 의원이기도 한 파머는 자기 시간 대부분을 정치와 개인 명분을 추구하는 데 쓰고 있지만 정기로 레드카이트 사무실로 출근해 시장 흐름을 쫓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을 보는 게 그의 낙이라는 평도 나온다.

레드카이트는 파머와 릴리 등이 2005년 출범시킨 세계 최대 금속 투자 헤지펀드였다. 레드카이트는 2000년대 초 구리 가격이 10년 이상 장기 상승세를 보인 '상품 수퍼사이클' 시기에 약 35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했다. 당시 중국이 소비하는 구리의 약 15~20%를 책임지고 공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머는 '미스터 구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레드카이트는 대담하게 모든 것을 다 거는 거래로 큰 돈을 챙겼다.
이후 레드카이트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큰 수익을 남기는 다걸기 매매 비중은 축소했다. 또 손실도 봤다. 2010년 초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와 구리 시장을 놓고 혈전을 벌이다 크게 손해를 입었다. 2016년 운용자산이 약 20억 달러로 추정됐다.

레드카이트는 지난 4월 바클레이스의 트레이들이 부당거래를 하고 구리가격을 조장했다는 주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받아들였다. 법률 분쟁 종결로 파머가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더욱이 지난 몇 년간 시장 변동성이 줄고 글렌코어와 트라피규라그룹과 같은 라이벌들이 구리와 기타 금속시장 장악력을 강화함에 따라 실물 트레이딩을 계속 축소하기도 했기에 이런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복귀한 미스터 코퍼가 금속 시장에서 다시 한 번 명성을 날릴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