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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미일 반도체 전쟁 vs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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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미일 반도체 전쟁 vs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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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정보과학기술부장
#1980년대 초 세계를 제패하던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그 자리를 일본업체들에게 내줬다. 30여 일본 반도체업계가 세계시장 절반을 장악했다. 1985년 6월 미국반도체협회는 마침내 일본 반도체업체들을 미무역통상대표부(USTR)에 제소했고 미·일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덤핑 관행, 그리고 미국반도체의 일본 시장 진입 제한이 이유였다. 이듬해 USTR은 저 유명한 통상법 슈퍼301조를 적용했다. 일본 반도체 덤핑마진율은 21.7~188%로 매겨졌고 30% 관세가 붙었다. 잘 나가던 일제 TV엔 보복관세가 100%나 붙었다. 미국의 주문자상표생산(OEM)으로 성장한 일본 반도체업계가 지나치게 잘 나간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인텔이 반도체 혁신의 칼인 중앙처리연산장치(CPU)를 만들어 1992년 다시 세계 반도체를 제패할 때까지 미국의 공세는 이어졌다. 결국 이 전쟁은 일본내 미국반도체 비율 20% 달성 시점인 1996년 미·일반도체 협정으로 막 내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일반도체 전쟁 30여년 만에 중국과 글로벌 경제를 흔드는 전쟁을 시작했다. 명분은 3750억 달러 규모의 대중무역적자 해소에 미국 기술지재권침해, 일자리 감소 회복이다. 취임 초기부터 잇따라 국제 무역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을 선언한 그다. 지난해 3월 철강, 알루미늄 고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7월에는 중국산 제품의 절반인 2000억달러 6031개 품목에 줄줄이 고율 관세가 매겨졌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맷집은 과거 일본과 달랐다. 미국산 제품에 똑같이 25%의 보복관세를 매기며 맞대응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하나의 불씨가 숨어있었다. 2~3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화웨이 통신장비였다. 화웨이가 사용자들의 정보를 빼내간다는 보안문제였다. 전세계 언론은 이 회사와 중국정부 간 사용자 정보 빼내기와 협력 관계, 기술절도 사례들을 쏟아냈다. 미국은 전세계 우방을 통해 보안위협이 있는 이 회사와 거래 관계를 끊으라고 주문했다. 심상치 않았다.
#조마조마하게 사태를 주시하던 우리 업계에도 마침내 불똥이 떨어졌다. ‘트럼프의 입’이랄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 5일 한 행사에 국내 IT기업들을 불러 모은 후 반(反)화웨이 압박에 동참할 것을 공개 요구했다. 그는 “5G보안은 동맹국 보호의 핵심이다. 비용에 솔깃하면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다.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도 지난 4일,5일 잇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MS, ARM 등 각국 주요 기술업체들을 소집했다. 참석 기업들에게 “미국 요구대로 중국 기업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 “기업 다변화 차원을 넘어서는 중국 내 생산시설 해외 이전 움직임도 강력히 응징할 것”이라는 말이 떨어졌다. ‘블랙리스트’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두 회사의 지난해 전체 매출의 18%와 39%가 중국서 나왔다. 게다가 중국서 반도체 반독점 조사까지 받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며칠 전까지 청와대와 외교부는 “기업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기업 간 의사 결정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할 수는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었다. 나몰라라 하던 정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10일 외교부가 미·중 무역분쟁 관련 외교전담 조직을 신설해 대응키로 했다. 뒤늦게 나마 다행스럽다. 어떻게든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협조과 대안마련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받아온 반(反)기업적인 정권이라는 기업들의 정서를 다독이고 무너진 신뢰감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사태별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등 미·중 양국을 설득할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


이재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k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