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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류사오보 절친 저우둬, 톈안먼 사건 30년 수기 “개혁은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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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류사오보 절친 저우둬, 톈안먼 사건 30년 수기 “개혁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사진은 30년 전인 1989년 6월 천안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30년 전인 1989년 6월 천안문광장에 모인 시민들.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무력 탄압된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지 4일로 30주년을 맞는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2017년 사망) 씨와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활동한 저우둬(周舵·72) 씨는 일본 언론에 보낸 수기를 통해 “(사건은) 중국 공산당의 근본적인 전환점이었다. 공산당원의 이상이 부정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저우 씨는 “우리 개혁파가 죽지 않는 한 개혁도 죽을 것이 없다”고 호소하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중국 내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89년 사건 당시 민간 전자기기회사 간부인 서기로 일하던 그는 류사오보와 친한 사이였다. 이 두 사람과 대만 출신의 뮤지션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등 4명은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 편에서 단식을 하면서 ‘톈안먼의 사군자’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의 민주화 확대 요구에 대해 공산당 지도부는 군을 동원했고 그 해 6월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광장으로 향하는 부대가 발포하는 등 다수가 사상했다.

4일 새벽 허우더젠, 류사오보 등은 톈안먼 광장을 포위했던 군과 협상에 나섰다. 군은 광장에서 학생들이 철수하기 위해 통로를 비우기로 약속했다. 저우 씨는 수기에서 “우리의 힘으로 수천 명의 학생이나 시민을 무사히 광장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으리라고 나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광장은 유혈 직전이었지만, 그야말로 기적 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사건 약 1개월 후에 그는 구속되고 90년 5월에 석방됐다. 90년대 초반 미국에서 하버드대 객원 연구원으로 약 1년 보낸 뒤 귀국했다. 류사오보가 사망한 이후 ‘사군자’ 중 지금도 국내에서 정치개혁을 목표로 언론활동을 벌이는 사람은 저우 전 서기뿐이다.

저우 씨는 “(사건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당국의 감시를 받고 행동의 제약을 받는 삶을 지냈지만 톈안먼 광장에 있던 수천 명이 피살되는 사태를 회피한 것은 큰 자랑이다. 톈안먼 사태에 연루된 것을 당연히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건 이후 중국은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저우 전 서기는 지도자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수기에는 “공무원에 의한 권력의 남용과 부패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확대되었다”라며 사리사욕에 혈안이 된 공직자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사회 붕괴 양상은 과거 왕조 말기로도 반복돼 왔지만 한 차례의 중대 사건이 이 정도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 전례는 거의 없다”고 개탄했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