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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상한' 감정원의 무리수? 문제점 비판한 교수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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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상한' 감정원의 무리수? 문제점 비판한 교수 고소

"비전문 감정원직원 공시가격 산정 오류" 지적에 노조 발끈
교수측 "선진국 감정평가, 한국만 산정방식 근본문제 제기"
학계 "연구활동 자유 침해" 법조계 "위법성 사유 해당 안될 것"

한국감정원의 부동산 정보앱 이미지. 자료=한국감정원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감정원의 부동산 정보앱 이미지. 자료=한국감정원 홈페이지
한국감정원이 학계의 정책연구 차원에서 문제 제기한 발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감정적 대응’이나 ‘과잉대응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감정원에 따르면, 이 회사 노동조합은 지난 8일 대구 동부경찰서에 제주대 경제학과 정수연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의 고소 사유는 정 교수가 각종 언론 인터뷰나 정책토론회에서 감정원과 공시제도를 비난하는 등 조합원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정 교수가 ‘공시가격을 감정평가사가 아닌 비전문가인 감정원 직원들이 산정해 오류가 많다’ 등을 발언하며 공시제도도 비난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노조가 정 교수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어 법적대응에 나섰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수연 교수는 감정원의 고소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이 분야에서만 20년 동안 연구해 왔다. 연구결과를 학회나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것을 두고 공공기관이 사과를 요구하고 소송까지 벌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시아부동산학회 사무총장과 한국감정평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 교수는 "한국의 주택 공시가격은 감정평가사가 아닌 비(非)감정평가사가 '감정평가(appraisal)'가 아닌 '산정(calculation)' 방식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감정평가’는 전문 평가방식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과세평가로 사용하는 국제표준이다.

반면에 '산정'은 인근의 실거래 신고가격을 주로 고려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더욱이 문제는 '감정평가' 방식과 비교해 '산정' 방식이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산정' 방식은 저가주택일수록 실제가치보다 높게 계산되고, 고가주택은 실제가치보다 낮게 계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결국, 저가주택일수록 거래량이 많아 실제가격보다 높게 계산되고, 고가주택일수록 거래보다는 증여 등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실제가격보다 보수적으로 계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2006년부터,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2017년부터 감정원이 '산정'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 감정평가사 자격증이 없는 한국감정원 직원 250명이 관여하고 있다는 게 정 교수의 문제 의식인 셈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모든 주택에 공무원으로 고용된 감정평가사가 '감정평가' 방식으로 공시가격을 정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여 설명했다.

감정원 노조의 고소에 학계에서도 독립적인 학자의 연구결과 발표를 두고 공공기관이 명예훼손 운운하는 것은 명백히 연구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감정평가학회 임재만 수석부회장(세종대 부동산학과)은 "학자의 학문적 비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제도개선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요구와 형사소송 등으로 겁박하는 것은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는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며 "공공기관의 정부업무 수행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태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고소 사건을 맡게 될 법조계 역시 감정원 노조의 고소가 무리수라는 시각이 많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 교수의 비판은 학자가 법령 등에 기초해 연구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며 "학회나 정책토론회에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명예훼손의 '고의성'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만에 하나 명예훼손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공시가격은 보유세 등과 직접 연결되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비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 교수측 변호인은 "현재로서는 조사에 충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추후에 무혐의 결론이 나오면 무고죄나 민사상 손해배상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감정원의 무리한 대응에 법적 책임을 지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감정원 노조는 이번 소송이 조합 자체의 판단에 따른 대응으로 소송비용도 조합비로 충당했다고 밝히며 회사 경영진의 의중과는 연관이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