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보잉 737 맥스 사태 일파만파, 윌리엄 보잉(William Boeing)의 선택 … 1조1000억 투입 보잉 737 맥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전면 업그레이드

기사입력 : 2019-03-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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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보잉 737 맥스 사태 일파만파, 윌리엄 보잉(William Boeing)의 선택 … 1조1000억 투입 보잉 737 맥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전면 업그레이드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보잉 737 맥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보잉 737 맥스를 만든 보잉이라는 항공기 제조회사는 윌리엄 데드워드 보잉(William Edward Boeing)이 창업했다. 윌리엄 데드워드 보잉(William Edward Boeing)의 아버지 빌헬름 보잉(Wilhelm Böing)은 원래 독일 사람이었다. 빌헬름 보잉(Wilhelm Böing)은 1868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노동자로 일했다.

미국으로 이주할 때 빌헬름의 아버지와 갈라져 유산을 받지 못했다. 미국 이민후 맨몸으로 시작한 빌헬름 보잉(Wilhelm Böing)은 슈피리어 호 근처의 노쓰 우드(North Woods) 지역에서 삼림의 벌목권, 광물 채굴권을 얻어 큰 부를 이루었다.

아들인 윌리엄 보잉은 1881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윌리엄보잉이 9살 때 아버지 빌헬름 보잉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윌리엄보잉의 어머니 마리(Marie M.)는 곧 재혼했다.

윌리엄 보잉은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빠져 살았다. 시애틀에서 기계공업 일을 배웠고, 1916년 시애틀 대학에서 만난 조지 콘래드 웨스터벨트(George Conrad Westervelt)와 "B & W"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보잉사의 전신인 퍼시픽 에어로 프로덕츠(Pacific Aero Products Co.)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첫 번째 비행기가 바로 보잉 모델 1(Boeing Model 1: B & W Seaplane) 이다.

윌리엄 보잉 1917년 회사이름을 보잉 항공기로 바꾸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을 위한 훈련기 생산을 하였다.

1923년 전투기인 Model15를 생산하였고 1927년에는 미국 최초의 항공우편 배달용 항공기인 Model40A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항공기를 이용하여 보잉항공사(Boeing Air Transport)를 설립하였다. 1933년 제작된 보잉-247은 근대 수송기의 원형이 되었고 1935년 ‘하늘의 요새’로 불리는 B-17 폭격기의 원형을 완성했다.

1934년 대공황 이후 반독점법이 항공기의 제작과 운영을 같은 회사가 영위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자 그는 항공운송부문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즈(United Airlines)로, 미국 동부의 제작부문은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United Technologies)로, 미국 서부의 제작부문은 보잉 에어플레인 컴퍼니(Boeing Airplane company)의 세 회사로 분할했다.

윌리엄 보잉은 여생을 종마 육종에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상담역으로 보잉사에 자원 근무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보잉사가 제트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본 다음 1956년 사망 하였다.

잇단 추락사고로 도처에서 비행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는 가운데 보잉 737맥스(Max)' 기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이상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보잉사가 보잉 737 맥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에 들어갔다.

우리 돈으로


김대호 소장 tiger8280@g-enews.com

김대호 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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