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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칼럼] 서울의 미세먼지, 그리고 1만2천명의 목숨 앗아간 '런던 스모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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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칼럼] 서울의 미세먼지, 그리고 1만2천명의 목숨 앗아간 '런던 스모그'

김형근 편집위원
김형근 편집위원
[글로벌이코노믹 김형근 편집위원] 극심한 미세먼지가 일주일 내내 서울 도심을 덮었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갑자기 늘었다. 버스를 탔다.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갑자기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 소식은 많았지만 내리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미세먼지는 결코 물러가지 않을 성싶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분노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가이아의 관용인가. 다행히도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미세먼지가 물러갔다. 하늘에 뜬 밝은 상현달과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바람이 없는 무풍 현상과 대기역전 현상은 대기오염의 피해를 가중시킨다. 오염된 공기는 대부분 공중으로 올라간다. 원래 공기는 더운 곳에서 찬 곳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때로 온도가 낮은 공중으로 올라간 공기가 더욱더 농축돼 지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치명적이다.

1952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해 불과 몇 주 만에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호흡기 질환을 비롯해 심장질환 등으로 무려 1만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과학기술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혔다.

이유는 이렇다. 런던에서 석탄 연소로 발생한 연기가 정제되지 않은 채 대기 중으로 배출됐다. 무풍현상과 기온역전으로 인해 오염된 공기가 대기로 확산되지 못하고 지면에 정체했다. 배출된 연기와 짙은 안개가 합쳐져 스모그를 형성했다. 연기 속에 있던 이산화황은 황산 안개로 변했다. 이러한 스모그 현상은 1주일간 지속됐다.

사건 발생 후 첫 3주 동안에 호흡 장애와 질식 등으로 4000여 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그 이후 만성 폐질환으로 8000명이 더 사망해 총 1만2000여 명이 1주일 동안 심한 대기오염 현상으로 인해 생명을 잃었다. 런던의 대기오염은 공장의 배기 가스, 빌딩이나 일반 가정의 난방으로 인한 매연이 주요 원인이 되었고 항상 짙게 깔리는 안개 또한 한 원인이었다.

영국 정부가 이듬해인 1953년 5월 비버 위원회(Beaver Committee)를 설립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비버위원회의 비버는 동물 이름 비버로 깨끗한 환경에서만 산다고 해서 이 이름을 붙였다. 또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네스북 창시자인 휴 비버 경을 칭하는 이름이다. 그가 이 위원회를 이끌어 실태 조사에 나섰다.

1956년 이 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기오염청정법(British Clean Air Act)이 제정됐다. 또 가정용 난방 연료를 점차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기오염으로 마스크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다.
무풍현상이나 대기역전 현상(atmosphere inversion appearance)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한동안 공기의 순환이 느려지거나 순환이 멈추면서 대기오염물질이 정체돼 오염도를 증가시킨다. 도심지역의 경우에는 대기오염물질의 확산이 잘 되지 않아 도시형 스모그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서울의 경우 차량정체가 심하고 난방용 연료 사용이 증가하고 있어 대기오염물질이 증가하는 겨울철에는 이와 같은 대기역전현상이 자주 나타나 대기 오염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그동안 런던과 같이 치명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오염도가 증가하면 서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서울은 공기 이동이 별로 없는 분지(盆地)에 위치해 있다.

겨울철 서울의 다이옥신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보도는 이제 생소한 뉴스가 아니다. 기존의 스모그보다도 더 해로운 미세먼지는 늘 죽음의 그림자를 대동하고 움직인다. 런던 스모그와 비슷한 사건은 여러 곳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