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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애플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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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애플이 안 보인다

MWC 2019 불참해 입방아에 올라...‘제2의 모토로라‧노키아’ 길 가나

아이폰 실적 부진에 고민하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아이폰 실적 부진에 고민하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김민구 기자]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느림보 나라 같으니…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나무 아래에서 계속 달려 숨이 찬 앨리스가 고통을 호소하자 거울나라를 다스리는 붉은 여왕은 이와 같이 일갈한다.

‘붉은 여왕의 가설(The Red Queen hypothesis)’은 이렇게 탄생한다. 미국 진화생물학자이자 시카고대학 교수 리 반 베일른이 1973년 논문 ‘새로운 진화 법칙’에서 다룬 이 가설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경쟁상대에 맞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조락(凋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세계적 정보기술(IT) 업체 애플의 최근 행보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시가총액(시총)이 1조 달러(약 1124조 원)를 달성해 세계 1위를 거머쥐고 삼성전자와 함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호령해온 애플이 최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애플은 시총 1위를 아마존 등 다른 업체에 넘겨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 4분기 아이폰 매출액이 15% 급감하는 수모를 당했다. 아이폰이 애플 매출액의 60% 이상 차지하는 ‘효자’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좌절감에 빠져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굴욕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애플은 미래 첨단기술의 향연장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9'에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삼성전자가 MWC 2019에서 차세대 스마트폰 ‘폴더블폰’을 선보이며 위용을 떨쳤지만 애플은 이번 행사에 폴더블폰을 선보이지 못했다. 애플은 차세대 스마트폰 전쟁에서 삼성전자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900여 년 전 남송(南宋) 시인 양만리(楊萬理)의 싯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따로 없다. 열흘 이상 붉게 유지하는 꽃이 없듯이 그동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쥐락펴락해 온 애플은 ‘권불십삼년’(權不十三年)이라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애플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희생물이다. 경로의존성은 기업이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알아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글로벌 IT업계에서 '졸면 죽는다'는 말이 정설이 된지 오래다. IT업계는 3개월이 멀다 하고 첨단 하이테크로 갈아입은 새 제품이 등장하고 기존 제품은 썰물처럼 퇴조하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혁신을 도외시한 채 타성에 젖은 경로의존성만 고집한다면 홍수처럼 밀려오는 첨단기술제품에 떠밀려 표류할 수밖에 없다. 기존 인기 제품에만 집착하는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는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죽음의 처방전’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도 기술혁신을 등한시한 채 자신들만의 표준만 고집해 쇠락의 길을 걷지 않았는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혁신자의 딜레마‘에서 세계 우량기업이 노키아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달콤한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을 일궈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플레이어도 애플의 교훈을 박장대소하며 좋아할 때가 아니다. 승자의 샴페인에 취해 정보기술(IT)혁명에 한 걸음만 머뭇거리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김민구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