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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샌드위치론' 우려가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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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샌드위치론' 우려가 현실로

2007년 주장… 조선업·자동차 등 구조조정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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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이던 당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샌드위치론’을 폈다. 2007년이었다.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 장관이 발끈했다.

“IMF 외환위기 때의 ‘넛크래커(호두까기)론’이 ‘샌드위치론’과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는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우려가 지나쳐 자칫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를 비판하는데 급급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 차관도 한마디 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증권투자가 2700만 달러에 이르고, 국내총생산(GDP) 면에서도 11번째 거대경제권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단순한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 경제의 현재 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따른 것 아닌가.”

○○○ 국장도 이 회장을 ‘성토’했다.
“지난 1∼2월 중국의 선박 수주량이 우리나라를 추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조선 4사의 수주량이 생산능력을 이미 초과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선업계는 주문이 너무 밀려서 제대로 소화를 할 수 없었다는 반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우리를 추월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청와대는 ‘참여정부 4년 평가와 선진한국 전략’ 자료집을 내겠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수출실적이나, 주가지수 등 ‘지표로 본 참여정부의 경제성적표’가 나름대로 잘했다고 자부심을 느낄 정도는 된다는 자료집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샌드위치론’은 ‘진화’를 했다. 대한상의는 ‘신(新)샌드위치론’을 내놓았다.

종전에는 중국이 가격경쟁력으로 추격하고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샌드위치 구조’였지만, 이제는 신흥국의 추격과 선진국의 공세적인 제조업 부흥정책으로 고강도의 양면 협공을 받고 있다는 논리였다.

전경련은 ‘샌드백론’을 펴기도 했다.

‘중국에는 기술 우위, 일본에는 가격 우위’가 있다는 공식이 깨지고,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읽어 가는 샌드백 신세로 전락했다는 우려였다.

지금은 어떤가. 이 회장이 ‘샌드위치론’을 내놓은 지 10년 조금 더 지나면서 우려가 현실로 닥치고 있다.

○○○ 국장이 성토했던 조선업은 벌써부터 ‘구조조정’이다. 많은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다. 대우조선은 회사 이름마저 사라질 위기다. “현대중공업 도크를 고래 30마리가 헤엄치는 사파리로 만들어 관광 자원화하자”는 비아냥거림 비슷한 아이디어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생산량이 3년 연속 감소하면서 멕시코에도 밀렸다. ‘5대 자동차 강국’에서 7위로 추락했다.

‘니케이 아시안 리뷰’라는 경제 전문잡지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중국과 멕시코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로 전략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계 LCD TV 시장에서 지난해 우리나라가 중국에 처음으로 밀렸다는 분석보고서도 있었다. LCD 패널에 이어 LCD TV까지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면서 TV 시장의 ‘메이드 인 코리아’ 아성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보고서였다.

잘 나가던 반도체까지 꺾이면서 우리나라 전체 수출까지 어려워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출 부진이다.

이 회장의 ‘샌드위치론’ 이후, 정부가 발끈하는 대신 ‘기업 때리기’만이라도 자제했더라면 오늘날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이정선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