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데스크칼럼] 규제의 역습, 한국치아은행

공유
1

[데스크칼럼] 규제의 역습, 한국치아은행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글로벌이코노믹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치조골 즉 잇몸뼈가 한번 녹게 되면 재생이 불가능하다. 잇몸뼈를 녹게 하는 주요 원인은 흡연이다. 담배의 니코틴이 뼈를 삭게 만든다. 요즘 인기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예외는 아니다. 젊었을 때 담배를 많이 피웠다면 나이들어 분명 치아에 문제가 생긴다. 틀니를 착용할 확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서너배는 높다. 물론 대안은 있다.

치과의사들 그중에서도 한국 치과의사들은 전세계적으로 솜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해외 학술대회 연자로 참석해 수많은 제자들을 키웠다. 치과의사들은 손만 안 떨면 여든의 고령에도 환자를 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손 기술이 좋은 장인정신은 한국 치과의사들이 해외 선진국에서 이름 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녹아 내린 잇몸뼈는 솜씨 좋은 치과의사들에 의해 재건된다. 물론 돈은 좀 든다. 치과는 비싸다. 어쩔 수 없다. 치솟은 임대료에 인건비 등은 치과 경영에도 예외는 아니다. 도심 번화가에 너댓개의 치과가 경쟁하듯 진료한다. 급여항목보다 비급여항목이 더 많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어쨌든, 녹아 내린 잇몸뼈를 재건할 때도 마찬가지다. 잇몸뼈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뼈이식재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이 재료 또한 비싸다. 국산 재료도 있지만, 수입 재료가 더 많이 사용된다. 자기치아뼈를 이식재료로 쓰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동물, 사체의 뼈를 이용하거나, 인공적으로 합성한 뼈이식재를 사용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예후를 좋게 하기 위해선 자기치아를 이식재로 사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보관이 여의치 않아 쉽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게 한국치아은행이라는 곳이다. 사랑니처럼 필요없는 치아를 뽑아 저축한다. 충치나 치주염으로 인해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자가치아 뼈이식재를 사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국치아은행은 2008년 발치한 치아를 임플란트 시술시 뼈이식재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사업화를 가시화하고 있다. 개발 10년동안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의료폐기물은 모두 폐기하도록 돼 있다. 신기술은 그대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이 기술을 만든 엄인웅 치과의사(치의학박사)는 10년동안 국회와 보건복지부 등에 하소연을 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검은 제안도 들어왔다. 일본에서 엄박사의 신기술을 이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던 신기술을 일본은 알아본 것이다. 알아보는 것까지는 좋았다. 일본사람 특유의 마이너한 근성이 기어 올라왔다. 헐값에 신기술을 사가겠다는 거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약점을 발목 삼았다. 홧김에 던질 법도 한데, 엄박사는 참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관련 공무원들에게도 신기술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얼마 전 엄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규제개혁위가 한국치아은행에 관해 관심 있게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기술개발보다 규제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실효성을 거뒀다. 규제하면서 혁신하라는 엇박자를 규제개혁위가 스스로 해결에 나선 것이다. 한국치아은행의 발목을 잡은 규제는 그렇게 첫 매듭을 풀고 있다. 아직 규제가 풀린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희망고문은 줄어들게 됐다.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치아은행은 이제 한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조규봉 기자 ckb@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