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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시사의 창]사법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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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시사의 창]사법부의 비극

양승태 전 대법원장 후배 법관 앞에서 영장실질심사 받게 돼

[글로벌이코노믹 오풍연 주필] 사법부의 비극이다. 법원검찰을 친정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더욱 착잡하다. 나는 수습기자를 마친 뒤 1987년 9월부터 법조를 출입했다. 지금도 출입할 때 인연을 맺은 분들과 종종 만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개인적으론 모른다. 워낙 잘 나가던 판사여서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판사였다.

그런 사람이 까마득한 후배 법관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18일 양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나는 그동안 양 전 원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해 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처벌받는 게 마땅하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지는 알 수 없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기각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것 같다. 앞서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이미 조사를 마친 마당에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하겠다. 그런 논리로만 본다면 구속당할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양 전 원장은 사법농단의 정점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차장은 그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둘을 공범으로 본 것이다.

양 전 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법리논쟁도 치열하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번 영장청구는 형사법의 대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 그는 불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우리 검찰은 87년 헌법개정 이후 꾸준하고 일관되게 불구속수사 원칙과 무죄추정원칙을 정착 발전시켜 왔다고 했다.

그는 “그점에 긍지를 갖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다”면서 “그런데 최근 불과 일이년 사이에 인권보장을 위한 적법절차 준수나 불구속수사원칙이 경시되고 여론재판이 난무하게 된 세태로 인해 법치주의의 본질이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 문명국가에서 형사책임은 모든 법적책임 가운데 가장 엄중한 것이며,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우리 헌법의 본질이며, 법앞에 만인의 평등은 마땅히 여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형법의 보충성에 비추어 보아도 마치 자갈돌을 쌓아놓고 바위라고 우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들어왔다”면서 “법률전문가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이번 영장실질심사에서도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후배 법관이 영장을 발부하면 쇠고랑을 차게 된다. 기각하면 불구속 수사를 받는다. 대법원장의 구속(?). 법원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법농단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도.


오풍연 주필 poongye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