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 진단] 뉴욕증시 20% 이상 하락, 베어마켓(Bear Market) 약세장 역사 속 4번의 교훈

기사입력 : 2018-12-26 05:49 (최종수정 2018-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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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 다우지수 블랙 크리스마스 트럼프 쇼크 일파만파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소장]
글로벌 큰손들이 주식에서 채권으로 움직이면서 미국 뉴욕증시가 베어마켓 약세장에 진입한 게 아닌가하는 지적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뉴욕증시에서 말하는 베어마켓 약세장이란 주식가격이 전 고점대비 20%이상 빠지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이 기준대로라면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이미 베어마켓 약세장에 진입했다. S&P500지수는 베어마켓 약세장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는 베어마켓 약세장 징크스라는 것이 있다. 한번 베어마켓 약세장에 빠지면 증시침체가 장기간 이어진다는 것이다. 주가폭락상황을 넘어설 특단의 변수가 나오지 않는 한 주가하락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베어마켓 약세장의 특성이다. 그런 면에서 베어마켓 약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증시 다우지스 나스닥지수의 베어마켓 약세장은 어떤 면에서든 한국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환율 그리고 국제유가 금값 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뉴욕증시에서 역사상 초대형 베어마켓 약세장은 4번 있었다

<1차 약세장>

미국 주식시장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부터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쟁으로 미국기업의 판매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른바 전쟁 특수가 생겼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연합국 측을 지원하면서 군수물자 판매를 크게 늘렸다. 전쟁막판에 참전해 연합국측이 대승을 거두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그 덕에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영향력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곧 미국의 경제적 국부증가와 뉴욕증시 급등으로 이어졌다. 주가는 연일 폭등했다.

주가가 너무 오른 나머지 과열의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2년에 와서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베어마켓 약세장으로 들어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증시 전체를 대표하는 지수가 없었다. 그런 탓에 침체의 폭을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때 유일한 지수였던 다우존스 공업평균주가지수로 볼 때 전고점대비 20%이상 폭락했다. 다우존스 공업평균주가지수는 현재의 다우지수 모태이다.

전후 인플레이션이 전후 디플레이션으로 바뀌면서 1921년에 첫 번째 베어마켓 약세장이 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차 약세장>

1920년 후반에 들어 뉴욕증시가 폭등했다. 다우지수는 1921년 8월 63.9에서 1929년 9월 381.2로 500% 급등했다. 그러다가 1929년 10월 대폭락했다. 이후 1932년 7월 41.22에 이를 때 까지 4년간 바닥을 기었다.

1920년대 후반 증시 호황은 기술혁신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데다 할부판매으로 소비자 신용이 급속 팽창한 덕분이었다. 전기 산업의 급성장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물가상승은 억제됐다. 또 새 전기제품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그러다가 1929년 공급과잉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기업들의 수지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윤이 줄자 기업들은 고용을 줄였다. 고용감소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했다. 결국 수요부족에 의한 디플레가 생겨났다. 2차 약세장은 상당기간 지속됐다. 두 번째 베어마켓약세장은 세계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2차 대전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생산량이 줄면서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에 의한 디플레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 3차 약세장>

세계 2차 대전이후 세계경제는 고황가도를 달린다. 이 와중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올랐다. 물가 상승은 적어도 초기에는 경제의 양적확대와 뉴욕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차대전후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군산복합체가 급성장하고 M&A가 늘어난 영향으로 뉴욕증시는 1960년 초까지 강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1962년 케네디 대통령 당선 직후 침체가 왔다. 이를 뉴욕증시에서는 ‘케네디 조정’이라고 부른다.

케네디 대통령은 철강회사들의 가격인상을 반대하며 기업들과의 전면전에 나섰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뉴욕증시가 급락했다. 여기에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겹쳤다.

케네디 대통령은 경기부양책으로 케인즈 식 공공지출확대정책을 폈다. 그 결과 물가는 계속 올랐다. 이후 1968년 공화당 출신의 닉슨 후보가 1968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주가는 고점을 치고 이후 1982년 까지 14년간의 긴 침체로 들어선다.

닉슨 대통령은 급기야 금태환포기를 하기에 이른다. 달러를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을 그만둔 것이다. 그로인해 금과 달러를 중심으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졌다.

<4차 약세장>

4번째 약세장은 2007년에 왔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촉발한 글롭러 금융위기이다,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됐다. 그 영향으로 미국은 물론이고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이 몰려왔다. 미국 뉴욕증시도 큰폭으로 떨어졌다.
사태의 발단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911테러, 아프간 이라크 전쟁 등으로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초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부동산가격이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주택가격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보전되어 금융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에서 부동산경기가 고공행진을 했다. 증권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며 신용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알려져 거래량이 폭증했다.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SSM 사태가 야기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불능사태에 빠져 손실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기업들이 부실의 늪에 빠진다.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것이 세계적인 신용경색을 가져왔다. 이는 세계 경제를 흔들어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김대호 소장 tiger8280@g-enews.com

김대호 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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