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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시사의 창]어머니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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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시사의 창]어머니의 유언

"술을 끊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유언 남기고 10년 전 세상 떠나

[글로벌이코노믹 오풍연 주필] "둘째야 너는 술만 끊어라.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이니" 2008년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나에게 한 말이다. 그 때는 서울신문 법조大기자로 있을 때다. 당시 내 나이는 49살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던 셈.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유언을 7년 뒤 지킬 수 있었다. 2015년 2월 통풍으로 2박3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하면서 술을 끊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그 뒤부턴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어머니가 기대했던 큰 일(?)을 못 했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
오늘 어머니 10주기 제사다. 조금 이따가 아들을 데리고 세종시 형님 댁에 제사 지내러 내려간다. 아버지 제사는 음력 12월 12일. 그 때는 방 제사 대신 고향 산소에 모여 간단히 제를 올린다. 동지 섣달에 행사가 많다. 부모님 제사, 그리고 구정. 이 때 형제들을 만난다. 가족이 최고다.

내가 고향(충남 보령)을 떠난 것은 1971년 늦가을이다. 12살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직전이다. 대전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도회지로 나가 좋은 고등학교에 가라는 취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1976년 지역 최고 명문인 대전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숙직을 하다가 갑자기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의 고교 입학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법대나 경영대에 가기를 바랐다. 그래야 출세하거나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나는 진로를 바꿔 철학과에 들어갔다.

1986년 12월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6년 10월까지 만 30년 동안 신문사에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며칠 있으면 내 나이 60이다. 모두 은퇴할 즈음이다. 그런데 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회사 고문, 신문사 주필, 인터넷 신문 대표, 전문 강사 등 1인 다역을 을 하고 있다. 주변의 부러움도 산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41살에 혼자 돼서 우리 5남매 중 넷을 대학에 보내셨다.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품성을 물려주셨다.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유산이라고 할까.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식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나 역시 지금껏 살면서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다.

어머니 말씀처럼 큰 일은 아니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나는 70까지 현역으로 있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다시 10년을 연장한다. 이제 목표는 80 현역이다. 사람은 바람대로 이뤄진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오늘 제사에는 5남매 모두 참석했다. 10주기라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세종서 제사를 지내고 올라와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거듭 각오를 다진다.



오풍연 주필 poongye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