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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의 교훈, 소득주도성장과 정부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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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의 교훈, 소득주도성장과 정부규제의 역설

 김대호 박사는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이다. 고려대 경제학과와 미국 미주리대 등에서 공부했다. 매일경제신문 MBN 한국경제TV 동아일보 등에서 경제부장 금융부장 보도본부장  워싱턴 특파원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학 기업경영연구원 연구교수와 고려대 MOT 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010 2500 2230 tiger8280@gmail.com
김대호 박사는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이다. 고려대 경제학과와 미국 미주리대 등에서 공부했다. 매일경제신문 MBN 한국경제TV 동아일보 등에서 경제부장 금융부장 보도본부장 워싱턴 특파원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학 기업경영연구원 연구교수와 고려대 MOT 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010 2500 2230 tiger8280@gmail.com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오늘은 12월 12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12월12일을 군사 쿠테타 12 12 사태가 일어난 날로 기억하고 있다.
39년전인 1979년 12월12일 서울에서 실제로 군부 구테타가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장군등이 주도하여 정권을 찬탈했다.

이 12 12 사태는 이듬해 광주 민주혁명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역사의 큰 변곡점인 셈이다.

경제계에도 1212사태가 있었다.

12 12 사태로 집권한 군부실세 중 한 명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12월 12일 초대형 증시 부양책을 발표했다.
이를 경제계에서는 ‘증권판 1212 사태’라고 부른다.

지금으로 부터 꼭 29년 전의 일이다.

1212 사태 부양책의 골자는 나랏 돈 즉 정부 재정을 무제한으로 풀어 주식을 사는 것이었다.

지금 기획재정부의 전신이었던 재무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을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재무장관은 이규성이었다.

1989년 12월 12일 이었다.

장소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 이규성 장관은 대한상의 회의실에서 증시부양책을 발표했다.

이규성 재무부 장관이 발표한 12 12 증시부양조치는 ▲시가발행 할인율 30%까지 자율조정 ▲ 고객예탁금 이용율 1%에서 5%로 인상 ▲기관투자가 확대 등의 수퍼 메가톤급 부양조치가 담겨있었다,

요약하자면 한은의 금고를 활짝 열어 증시가 안정될 때까지 주식매입자금을 무제한 지원하는 것이다. 금고에 있는 돈으로 부족하면 통화량을 더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표 이후 우리나라의 3개 투자신탁회사는 당시 시가총액의 2.8%에 이르는 무려 2조7000억원을 시중은행에서 빌려주었다.

그 돈으로 로 주식을 닥치는 대로 매입하도록 했다

경제 1212 사태가 나오자 코스피는 초기 사흘동안 100 포인트 정도 반짝 했다.

증시 부양책의 효과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 결과는 아주 참담했다.

경제12 12사태는 군부 구테타인 12 12 사태에 못지않게 후유증이 컸다.

주가가 이내 곤두박질쳤다.

증시 부양책을 틈타 오히려 손을 털고 빠져나간 투자자들이 많았다.

이규성 장관은여기에 또 4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을 추가로 투입했지만 역 부족이었다.

코스피 지수는 1992년 8월 456포인트 까지 하락했다.

1212사태이후 3개 투신사는 끝내 파산했다.

정부가 나서 투신사를 망친 꼴이다.

이 파격적인 1212 증시 부양조치에 대한 평가는 평가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로서는 그런 극약 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주가가 폭락하자 증권투자자들이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아우성을 쳤다"면서 "폭동 직전의 상황이 연출됐다'고 술회했다. 정치적 불안을 돌파하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규성 장관은 평소 적극적인 증시부양책에 반대해왔다. 그런 이 장관이 평소의 소신을 바꾸어 증시부양에 나설 정도로 사태가 참으로 심각했다는 것이다.

경제 1212 사태는 경제기획원이나 한은 과도 사전 협의없이 청와대와 재무부가 결정한 조치였다.

조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김건 한국은행 총재에게는 이규성 장관이 전화로 조치 내용을 알려주었다.

조순 부총리나 김 총재는 설명을 듣고 반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규성 장관은 훗날 1212조치와 관련하여 " 증시 정책이란 매우 이해관계가 민감하고 보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12 12사태의 진원지였던 재무부는 오늘날 기획재정부로 바뀌었다.

그 후배들의 평가는 좀 다르다. 정부으ㅟ 무모한 개입이 부른 참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제 1212 사태는 무모한 증시부양책의 전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997년의 IMF 외환위기가 12 12사태에서 잉태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잘못 개입할 때 나라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요즈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에 올인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한 이후 실업자가 오히려 늘었다.

취업자는 오히려 줄었다.

1212의 교훈을 되새겨 볼때이다.

시장의 실패는 정부의 개입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정부의 실패는 누가 수습해 줄 것인가?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