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기업 경영권을 크게 제한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하 상법개정안)을 내놓아 재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이끄는 현행 지배구조를 바꿔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소액주주도 보호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 지배구조개선과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상법개정안을 이번에 꼭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 아닌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이사를 2명 이상 선임할 때 주당 이사수와 같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한다면 주당 3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이는 3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1주를 가진 주주 의결권은 3주가 된다는 얘기다.
이때 주주는 특정이사에 집중적으로 투표하거나 후보 여러 명에게 분산해 투표할 수 있다. 소액주주도 의결권을 활용해 자기가 원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줘 엘리엣 매니지먼트와 같은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해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던 일본도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자 1974년 의무화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칠레, 멕시코, 러시아 등 3개국 뿐이다.
대주주 의결권은 감사위원 선임 단계부터 3%로 제한된다. 다시 말하면 지분을 3% 이상 보유한 대주주라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의결권 제한 규정을 받지 않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대기업 감사위원 자리를 모두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현대모비스(지분 20.8%), 정몽구 회장(5.2%), 정의선 부회장(2.3%)이 주요 주주다. 이들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총 28.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적용되면 현대모비스 3%, 정몽구 회장 3%, 정의선 부회장 2.3%로 의결권이 8.3%로 뚝 떨어진다.
만약 외국계 투기자본이 손을 잡아 이사회를 장악하면 무리한 배당이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해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을 줄게 뻔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채택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도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이사회와 지분율을 분석한 결과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7곳 이사진 절반이 투기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외국계 투기자본이 손을 잡으면 30개 기업 가운데 19개 기업 감사위원을 전부 선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취재=김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