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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하는 저축은행 예금 '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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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하는 저축은행 예금 '6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돈을 인출하려고 몰려든 예금자들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돈을 인출하려고 몰려든 예금자들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지난 1982년 봄,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규모 금융사고가 터졌다. 속칭 ‘장영자 사건’, 또는 ‘장여인 사건’으로 일컬어졌던 ‘거액어음사취사건’이었다.

사고 금액이 3276억 원에 달했다. 경제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규모였다. 시중은행장 2명을 포함해서 무려 31명이 구속되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검토된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금융실명제, 또 하나는 예금자보호제도였다.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하고, 그래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예금자에게 예금을 보상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예금자보호제도는 사건이 터진 이듬해인 1983년 ‘신용관리기금’이 발족하면서 이루어졌다. 금융기관들이 기금을 출연, 적립해두었다가 스스로 돈을 내주지 못할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금에서 돈을 갚아주기로 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 사기꾼’ 덕분에 생겼던 셈이다.

예금자보호제도가 있기는 했다. 지급준비율제도다. 은행 예금 가운에 일정 부분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예치하도록 하는 제도다. 은행이 예금을 한은에 강제로 예치하면 ‘지급불능’ 사태를 일부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신용관리기금이 갚아주기로 한 돈은 1인당 1000만 원까지였다. 그리고 ‘한 세대’, 자그마치 33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5000만 원까지만 예금보험공사가 갚아주도록 하고 있다.

그 바람에, 이 5000만 원이라는 한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늘어난 것을 감안, 한도를 올려야 할 것이라는 논란이다.
실제로 예금자보호제도가 추진될 당시였던 1982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구당 평균소득은 월 28만여 원이었다. 이를 고려한 한도가 1000만 원이었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의 10배를 훨씬 넘고 있다. ‘3만 달러 소득 시대’다. 물가도 그 사이에 ‘엄청’ 치솟았다. 그런데도 보장받을 수 있는 돈은 2001년이 되어서야 5배로 늘린 뒤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에도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원금과 이자를 합쳐서 5000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만 강조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도 있었다. 한도를 1억 원으로 올리자는 내용의 개정안이었다.

우리나라의 예금보호 한도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도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6배 수준인데 비해, 미국은 4.5배, 독일은 2.7배, 영국은 2.6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저축은행 예금 가운데 ‘예금자보호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돈이 6조 원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6월말 현재 저축은행 79곳에 5000만 원 넘게 맡긴 예금자는 7만2487명으로 이들의 예금은 9조625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예금 중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순초과예금’이 6조14억 원에 달했다. 3월말보다 3385억 원, 6%가 늘었고 2년 전인 2016년 6월말의 3조447억 원과 비교하면 갑절로 증가했다.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의 숫자도 2016년 6월말 4만1000명에서 올해 6월말에는 7만2000명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예금보험공사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진행한 ‘예금 보호 한도 조정 및 차등화’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가 공개됐다. KDI는 이 보고서에서 은행과 보험은 예금 보호 한도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액 예금이 늘어나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예금이 2001년에는 전체 은행 예금의 33.2%였지만, 지금은 25.9%밖에 보호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도를 올리면 예보료 부담이 커지고 자금이동도 상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이정선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