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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우리 곁에서 사라질 직업 17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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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우리 곁에서 사라질 직업 17개는?

보험설계사·농민·영양사·기자·소셜미디어전문가 등 손꼽혀

전통적인 인류의 직업 농업. 그러나 농부는 곧 없어질 직업 3위에 꼽혔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전통적인 인류의 직업 농업. 그러나 농부는 곧 없어질 직업 3위에 꼽혔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이코노믹 임성훈 기자]

유럽의 뉴스포털 더로컬이 ‘곧 없어질 직업 17개’를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른 직업군들이 대거 등장하고 또 그만큼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게 될 직업 17가지를 꼽은 것이다.
1위는 화물선적 종사자다. 카고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은 이제 컴퓨터가 로봇을 통제해 할 일이지 더 이상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2위는 보험설계사다. 이미 IBM의 왓슨 같은 인공지능은 사람이 하는 업무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정확히 처리해 고객을 돕고 있다.

3위는 다소 의외이지만 농부다. 농장은 이미 기계들이 장악하고 있다. 온도, 습도는 물론 파종과 수확까지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농부는 적어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조금 더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의 모든 논과 밭이 다 기계화 되기에 세상은 너무 넓으니까.

4위는 영양사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이 훨씬 더 정확하게 영양을 분석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과연 '맛'도 신경을 써줄지는 모르겠다.

5위는 운동경기 심판이다. 지금도 테니스 같은 경기는 센서가 사용되곤 한다. 앞으로는 거의 100% 인간을 대체할 정확한 심판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오심도 스포츠의 일부이고 가끔 일어나는 벤치클리어링 등도 볼거리인데 조금 아쉬울 것 같다.

6위는 조립라인의 노동자들이다. 헨리 포드가 처음 도입했던 조립 라인도 이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게 됐다.
7위는 소셜미디어 전문가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터이니 자연스럽게 없어질 직업이다.

8위는 출판사와 인쇄소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테블릿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면 종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인쇄소도 곧 문을 닫게 될 것이 자명하다.

9위는 신문배달부다. '지금도 있나' 싶을 정도로 이미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직업인 것 같다. 이제 신문을 돌리며 고학하고 고시에 합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10위는 기자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분석 정도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창작하는 일까지 맡게 될 것이니 기자라는 직업도 없어질 직군 중 하나다. 풍자나 해학 같은 일까지 인공지능이 해낼지는 모르겠다.

11위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시피한 직업인데 외국엔 의외로 많은 택시 배차원이다. 우리나라는 길에서 택시를 잡기가 수월하지만 외국에서는 택시회사로 전화해서 배차를 받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이 일도 역시 사람의 영역이 아니게 될 것이다.

12위는 택시운전사. 앞으로는 자율주행차가 대세일 것이다. 굳이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될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와 담소하며 목적지까지 가던 그런 낭만도 함께 사라진다는 얘기다.

13위는 여행사다. 여행사들이 이미 고전을 한 지는 오래됐다.

14위는 텔레마케팅 직원이다. 여행사와 마찬가지로 이미 사람들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갖가지 상품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15위는 변호사다. 특히 서류더미에 묻혀사는 변호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분석력과 변론은 훨씬 승소에 가까운 것일 게 분명하다.

16위는 캐셔다. 요즘 슈퍼마켓에 가면 이미 3분의 1쯤은 본인이 직접 계산하고 돈을 내는 자동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마지막 17위는 은행 창구직원이다. ATM이 있으니 굳이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낭만이 있을까. 어디 이 17개 직업 뿐일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이 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칼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철학초고』에서 4가지 소외를 논했다. 인간의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자기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종(種)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소외가 그것이다. 이 중 두 번째 소외는 그가 1844년에 썼다고 보기엔 지금 상황과 너무도 맞아떨어진다. 물론 마르크스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를 예견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런 소외가 결코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숙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엔 적나라하게 숙명이 되어가고 있다.


임성훈 기자 shyim9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