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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비 해설서,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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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비 해설서,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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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온기동 기자] 경희사이버대학교 김진희 교수(미국문화영어 학과)가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를 출간했다.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페미니즘의 불을 지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석학 앨빈 토플러가 책의 영향력을 두고 “역사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을 정도다.
출간 3년 만에 300만 부가 팔렸으며 13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오늘날까지 각 대학과 매체가 선정하는 ‘논픽션 필독서 100선’에 거의 예외 없이 포함된다. 반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책 10선’ 등의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는 ‘문제적’ 저술이기도 하다.

미국사 연구자가 쓴 베티 프리단과 그의 책을 20세기 미국의 변화 속에서 읽어나가고 있다.

베티 프리단의 성장 배경과 지적 계보를 정리하고 '여성의 신비'를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 의의와 한계, 그리고 그 파장을 친절하게 정리했다. 이름만 친숙한 고전을, 감히 말하자면 “읽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에 고전 해설서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딸, 연인, 아내이기에 페미니즘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읽기를 뛰어넘어 역사적 맥락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배경을 짚고, 내용을 정리하고 파장을 살핀 보기 드문 안내서다.

책 속 한 줄을 소개한다.

여성을 궁극적으로 어머니이자 아내로 한정시키며 헌신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으로 교 육 시키는 성 지향적 교육, 행복한 주부의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여성지, 최신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여성성이 성취될 수 있다며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여성 스스로 여성의 신비의 논리를 내면화시켜 ‘여성의 신비’가 지속되는 데 일조했다(9쪽).
남성과 여성의 활동영역이 다르다고 하는 소위 ‘분리된 영역separate sphere’의 담론은 역사적 발전 과정의 산물이었다. 산업사회 이전 시기와 산업화 초기까지만 해도 여성은 상품생산의 전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영역이 가정으로부터 공장으로 대거 이동되었고 이와 함께 성 역할 분화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다. 미국에서 기혼여성의 역할이 가정 안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분리된 영역’의 담론이 뿌리내린 것은 19세기 중반 무렵이었다(69쪽).

저자인 김진희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빙햄턴에서 미국사로 박사를 받았고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문화영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프랭클린 루즈벨트'(2012)가 있고, 역서로 존 듀이의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이 있다.

‘역사의 물꼬’를 바꾼 책에 관한 명품 해설서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페미니즘의 불을 지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석학 앨빈 토플러가 책의 영향력을 두고 “역사의 방아쇠를 당겼다” 고 했을 정도다. 출간 3년 만에 300만 부가 팔렸으며 13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오늘날까지 각 대학과 매체가 선정하는 ‘논픽션 필독서 100선’에 거의 예외 없이 포함된다. 반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책 10선’ 등의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는 ‘문제적’ 저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오늘날 그 이름값만큼 널리 읽히지는 않는다. 한국에선 특히 그렇다. 여성운동 또는 여성운동사를 이야기할 때 비판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번역서 등의 문제가 겹친 탓도 있지만 50여 년 전 미국 중산층 여성들의 상황이 쉬 와 닿지 않는 이유가 컸다. 때문에 저자와 책명은 익숙하지만 ‘여성의 신비’를 여성 신체 구조와 연결해 오해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미국사 연구자가 쓴 이 책은 베티 프리단의 성장 배경과 지적 계보를 정리하고, 책의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 의의와 한계, 그리고 파장을 친절하게 정리했다. 이름만 친숙한 고전을, 감히 말하자면 “읽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에 고전 해설서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 하나에서 열까지

첫째, 이 책은 베티 프리단과 그의 책을 20세기 미국의 변화 속에서 읽어 나가고 있다. 베티 프리단이 태어난 1920년대, 그가 성장한 30년대 대공황, 대학생활을 했던 인민전선과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가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했던 냉전 시대가 어떻게 베티 프리단과 동시대인들의 사고와 가치, 삶과 문화를 규정지었는가를 드러낸다. 또한 베티 프리단과 그의 활동, 그리고 저서를 통하여 여성 개인(들)이 여성에 대한 사회와 문화의 규정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해 반응/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의 신비'에 대한 독해일 뿐 아니라 20세기 중반 미국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여성사/사회사이다.

둘째, 베티 프리단과 그의 책을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라고 하는 고정된 시각에 가두는 기존 해석을 넘어서고자 했다. 이제까지 베티 프리단의 책과 그가 이끌었던 여성운동은 중산층 백인 중심으로 규정되는 기득권 여성들의 그들만을 위한 운동으로 비판되었다. 그 근거로 베티 프리단은 철저하게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교외 거주 백인 중산층 전업주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베티 프리단의 성장배경과 성인이 된 이후의 활동들을 추적하면서 베티 프리단의 시각을 중산층 백인 기득권 중산층의 틀에 가둘 수 없음을 밝혔다. 저자는 '여성의 신비' 가 지닌 제반 한계들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의 신비'에 대한 기존의 비판을 거부하고 책이 지난 한계와 공헌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셋째, 책에서 꼽는 '여성의 신비'의 저자 베티 프리단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동시대 여성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여성문제를 정확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동시대 여성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고 그들로 하여금 사회에 참여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여성의 신비'가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이후의 변화를 오히려 막고 있다는 페미니즘 일각의 비판과 달리 저자는 베티 프리단의 선택이 20세기 중반이라고 하는 특정 시대 미국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추동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결코 폄하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여성의 신비'가 20세기 중반 미국여성운동을 촉발시킨 역할을 했다고 해도 그의 해법을 오늘날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베티 프리단이 책을 쓰던 당시 그가 지닌 성/젠더에 대한 시각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성/젠더 의식의 한계와 특징을 일정한 정도 반영하고 있다.

'여성의 신비'가 시대를 초월한 남녀차별과 평등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베티 프리단이 분석했던 '여성의 신비'는 냉전기 미국사회 여성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곧 '여성의 신비'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에 대한 해법 역시 구조와 역사, 사회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정치한 관찰과 분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름 없는 문제’에 눈 뜨기까지-베티 프리단의 흥미로운 삶

1부는 베티 프리단의 생애를 정리했다. 책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지은이를 파악하는 것이란 점에서 프리단의 삶을 짚어보는 것은 페미니즘의 배경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유대계 2세로 태어나 인종차별을 피부로 겪은 학창시절, 도로시 더글러스 교수 등에게서 지적 세례를 흠뻑 받은 스미스대학교 시절, 《유이뉴스》 등 진보계 노동신문의 기자로 활약하다 둘째의 출산을 계기로 타의로 떠나야 했던 쓰라린 경험 등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면서도 《여성의 신비》를 깊이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특히 '여성의 신비'를 쓰게 된 계기가 1957년 스미스대학교 졸업 15주년 동창회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시작된 설문조사였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최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젊은 시절의 베티와 노동신문 기자와 진보적 활동가로서의 베티, 그리고 결혼한 뒤 아이를 키우면서 대중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작가 베티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무엇보다 베티 프리단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동창들이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102쪽)

거대한 사회적 담합구조 ‘여성의 신비’에 대한 비판

2부에서는 '여성의 신비'의 내용 자체를 꼼꼼히 분석한다. 집필 계기와 과정은 물론 매카시즘에 따른 냉전시대 합의 문화 등 사회적 배경을 역사적 맥락에서 정리하는 한편 에릭 에릭슨의 ‘인간발달 단계론’,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 등 이론적 토대를 소개한다.

베티 프리단은 스미스대학교 동창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발견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가 남편이나 아이들, 혹은 가정불화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나는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옷을 입혀주고 침대를 정리해줍니다. 언제든 가족이 원할 때 요청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나는 누구죠?”(110쪽)

이렇게 묻는 여성들에게 베티 프리단은 “여성지, 광고, 텔레비전, 영화, 소설, 결혼과 가족 전문가, 아동심리학과 성 상담과 사회학과 심리분석 전문가들의 칼럼과 저서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신비’ 이미지가 오늘날 여성들의 생활을 틀 짓고 그들의 꿈을 반영한다”(118쪽)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여성운동의 물꼬를 튼 베티, ‘전선’에 나서다

3부에서는 '여성의 신비' 관련 논쟁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의미와 한계를 짚고 시민활동가로 나선 베티 프리단의 역할을 다뤘다.

미국 중산층 백인 여성들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각성,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일을 통한 성취, 교육과 재교육, 그리고 제대군인 원호법에 필적하는 교육 지원의 필요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해 마치 ‘자기계발서’와 유사하다는 비판이 있다(187쪽)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적극 옹호에 나선다.

'여성의 신비'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 이론서가 아니라 대중서라는 사실을 들고 무엇보다 책이 세상에 나왔던 1960년대 초반 페미니즘은 이론적 정교함은 차치하고 학문적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비'가 주목받으며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생성되었고 이 관심이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젠더를 중심 개념으로 삼는 학문적 패러다임이 변하는 등 '여성의 신비'가 거대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베티 프리단이 전국여성연합NOW의 창설에 참여하는 과정이라든가 이후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불화하는 사연 역시 오늘의 페미니즘 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결론에 따른 여성학/페미니즘 계보’라는 제목의 보론은 비록 미국에 한정했지만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과 저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기에 알찬 덤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왜 읽어야 하나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수만 명의 여성이 참여한 ‘몰카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페미니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풍경이었다.

종종 “21세기 최후의 식민지가 여성”이라고들 한다. 그 타당성을 논하기 전에 한국 여성이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2017년 현재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는 가장 크고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참여도는 평균보다 낮으며 민간 영역의 여성관리자 비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에 과도하게 몰려 있으며 유리천장 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260쪽)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딸, 연인, 아내이기에 한번쯤 페미니즘의 뿌리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새삼 《여성의 신비》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사학자인 지은이가 텍스트 하버드대학교 슐레징거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프리단 페이퍼’를 검토하는 등 단순하게 읽기를 뛰어넘어 역사적 맥락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배경을 짚고, 내용을 뜯어보고, 파장을 살핀 이 책은 보기 드문 안내서이다.

책 속 한 줄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이 자신 탓이라고 수치스러워하며 마음 깊이 묻어둔 그 문제를 끄집어내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했다. 혼자만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여성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여성을 하나의 역할, 하나의 정체성으로 주조하기 위해 작동하는 힘, 곧 ‘여성의 신비’에 있다고 했다. 그는 ‘여성의 신비’가 냉전이라는 특정한 시대에 특별한 목적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지적했다(7쪽).

여성을 궁극적으로 어머니이자 아내로 한정시키며 헌신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으로 교 육 시키는 성 지향적 교육, 행복한 주부의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여성지, 최신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여성성이 성취될 수 있다며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가 여성 스스로 여성의 신비의 논리를 내면화시켜 ‘여성의 신비’가 지속되는 데 일조했다(9쪽).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은 베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상, 미국 사회의 유대인 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외톨이였던 베티는 자신 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 가를 자문했다. 여학생 치고 지나치게 똑똑해서인가? 유대인이기 때문인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사회적 배제의 원인이라면 유독 고등학교 진학 후 차별을 절감하게 된 것인가?(36쪽)

더글러스 교수는 ‘어린이, 부엌, 교회Kinder, Kuche, Kirche’라는 나치 이데올로기가 가족의 중심에 어린이를 놓고 양육자 역할을 하는 모성을 찬양했음을 지적했다. 여성이 가정의 의무에 적합하게 태어났다는 전제의 결과 사회에서 전문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여성의 열망이나 지적 능력은 간과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분리된 영역separate sphere’의 설정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면서 미국 여성이 처한 상황이 나치 치하의 독일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50쪽).

남성과 여성의 활동영역이 다르다고 하는 소위 ‘분리된 영역separate sphere’의 담론은 역사적 발전 과정의 산물이었다. 산업사회 이전 시기와 산업화 초기까지만 해도 여성은 상품생산의 전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영역이 가정으로부터 공장으로 대거 이동되었고 이와 함께 성 역할 분화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다. 미국에서 기혼여성의 역할이 가정 안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분리된 영역’의 담론이 뿌리내린 것은 19세기 중반 무렵이었다(69쪽).

'현대여성: 잃어버린 성'의 저자들은 여성의 고등교육에 대해 매우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불필요한 고등교육이 여성으로 하여금 여성 본래의 특성을 버리고 남성의 특징을 따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여성의 남성화가 가정생활에 심각한 해를 끼치며 심지어 부부관계의 만족도를 저하시킨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저자들은 여성이 본연의 역할인 아내이자 가정주부로 돌아가는 것만이 여성의 내적 균형을 되살리고 세상과의 적대감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103쪽).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가 발화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미국 여성들의 가슴 속에 묻혀 있었다. 그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성들이 겪는 이상한 동요이자 불만의 감정이며 갈망이었다. 주부들은 혼자 그것과 싸웠다. 침대를 정리하면서, 시장을 보면서, 가구 덮개 천을 고르면서, 아이들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아이들을 자동차로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에 데려다주면서, 밤에 남편 곁에 누우면서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용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것이 전부인가?’(113쪽)

당시 미국 여성 인구의 30퍼센트가 가정 밖에서 일을 했으나 다수의 여성은 일생의 직업을 바라지 않았다. 미혼여성들은 직장을 결혼하기 전 잠시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거치는 단계로 여겼다. 기혼여성에게는 단지 기회가 허락한다면 가족경제에 보탬이 되는 시간제 일자리 정도가 만족할 만했다. 그들에게 궁극적 목표이자 이상적 여성상은 행복한 가정의 현모양처였다. 전문가들은 여성다움을 칭송했고 대중매체들은 행복한 주부의 삶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 세계 여성이 부러워하는 미국의 여성들에게 ‘여성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평론가는 단언했다(114쪽).

“만일 내가 옳다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는 여성성의 상실이나 과도한 교육, 혹은 가정성에 대한 요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여성들뿐 아니라 그들의 남편과 아이들을 괴롭혀온 새롭고도 오래된 문제의 핵심이며 오랫동안 의사들과 교육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문제이다. 그것이 우리 국가, 그리고 우리 문화의 미래의 핵심일지 모른다.”(117쪽)

수수께끼의 벽 안에 존재하는 복잡한 개념.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를 그렇게 표현했다. ‘여성의 신비’는 여성이 추구할 고귀한 가치이자 유일하게 헌신할 목표가 여성다움의 완성임을 설파한다. ‘여성의 신비’의 주창자들은 여성다움이 “매우 신비롭고 직관적이며 생명의 창조와 기원에 가깝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여성다움이 남성의 특징과 다르기는 하지만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며 어떤 측면에서는 더 우월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을 통해 강조된다(122쪽).

‘여성의 신비’가 제시하고 있는 여성의 성취는 단 하나, 주부이자 어머니에 국한되기 때문이다(122쪽).

그들은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을 존중받기 위해 투쟁했다. 여성에게도 내적으로 성장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거릿 풀러의 말처럼 “여성으로 행동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라고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영혼을 가진 자로서 자유롭게 살고 주어진 힘을 간섭받지 않고 펼치는 것”을 원했다(129쪽).

전문가들이 프로이트 이론을 적용하여 가족문제를 분석하는 경향이 늘면서 …… 가족 내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알코올 중독, 자살, 정신분열, 노이로제, 발기불능, 동성애 등 많은 문제의 원인이 어머니를 향했다. 신경증이 있거나 불만족스러워하는 여성, 잔소리가 많고 바가지를 긁는 아내, 자식을 과잉보호하고 지배적인 어머니 등. 결국 여성이 문제였다. 여성이 ‘불필요하게’ 고등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면 자녀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151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 역시 ‘여성의 신비’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보다 남편과 아이를 통해 사는 것이 쉽다. 마침내 성장하여 수동적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여성이 속한 문화가 그에게 성장할 필요도 없고 성장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가 아내이자 어머니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겠는가?”(152쪽)

베티 프리단은 “지적이고 교육받은 미국 여성이 창의적인 인간 에너지를 강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분필가루 같은 음식을 먹고 헬스장 기계와 씨름한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했다. ……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능력이 있음에도 창조적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일에 능력과 시간을 소비하는 여성들의 행위는 낭비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결과 여성은 좌절과 무기력감, 자기 비하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160쪽).

베티 프리단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여성들이 순응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내면의 욕구가 사회의 양심과 통합되는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어머니”가 될 것을 요구했다. ‘여성의 신비’가 부추긴 공생적 관계와 순응은 사회적 양심과 강인한 인성을 갖춘 자녀를 성장시키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168쪽).

베티 프리단은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성장의 고통을 감수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성장이 본질적으로 고통과 의지를 요구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전진하는 모든 발자국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향해 있고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친숙하거나 좋고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다. 결과적으로 안주하고 싶은 이상향과 결별하는 것, 외로움과 탄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하고 손쉬우며 덜 힘든 생활을 포기하고 수고롭고 어려운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171쪽)

베티 프리단의 시대에는 특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여성들은 ‘돌연변이’로 여겨졌다. 그 자신 역시 돌연변이에 속했던 베티 프리단은 돌연변이들의 삶이 쉽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역할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단절과 역할 갈등, 정체성 위기를 겪을 것임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성들에게 돌연변이의 삶을 살 것을 촉구했다. 돌연변이의 삶을 선택하여 겪게 될 고통을 각오하라고 했다(177쪽).

사회로부터 부과된 역할과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극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그 고통은 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고통 받는 여성이 그 혼자가 아님을 인식시켰다. 여성이기에 앞서 인간임을, 가족과 더불어 사는 ‘단란함togetherness’을 이룩하기 위한 자아 소멸이 아니라 자아실현과 성장이 우선임을 일깨웠다. 정체성은 남편이나 아이를 통한 대리인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미래의 자신을 직시할 때, 고통을 감당하며 부단히 헌신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182쪽).

좋았던 시절의 이면에는 냉전 매카시즘과 강요된 합의가 작동했고 그 폐해는 급진주의자로 분류되는 소수가 아니라 미국인 전체로 향했음을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냉전시대를 유지시키는 합의와 순응을 뒷받침하던 문화적 배경에 소비주의와 중산층 가정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냉전, 곧 차가운 전쟁의 시대에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갈망이 컸던 만큼, 안전의 마지막 보루인 가정을 지키는 역할이 중요했고 그 역할이 사회 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것이다(184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을 ‘여성의 신비’에 가두는 거대한 담합구조에 칼날을 들이대었다. 여성도 숨을 쉴 수 있게 하라. 여성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라. 여성을 가정에 머물도록 만드는 그 모든 조작적 행위를 중단하라. 여성을 가두어놓은 여성 지향적 교육과 지식을 생산하고 재생산해 온 지식인과 교육자부터 반성하라. 여성은 여성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여성성을 성취하도록 부추기는 광고와 상품이 지닌 조작적 의도를 직시하라. 젊음을 유지시킨다는 화장품과 다이어트가 아니라 내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여라. 사회에 참여하라. 공동체에 헌신하며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라. 세계를 이해하며 미래를 향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게 교육하고, 또 재교육하라. 정부는 교육과 재교육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한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하라. 베티 프리단의 주장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187쪽).

여성학 연구가 학문적 이론체계를 갖추기 이전인 1960년대 초반에 이 책이 나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은 극소수 연구자들과 진보서클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시기였고 방법론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이 책은 여성문제에 대한 논의가 소수 전문가들과 여성운동가들에 한정되었던 시절에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나갔다는 것에 그 장점이 있다(191쪽).

'여성의 신비'는 여성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길을 텄을 뿐, 그 뒤 물길의 방향을 세세 하게 제시하거나 하나의 정답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 각자의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함으로써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194쪽).

전국여성연합의 약자인 ‘NOW’는 지금 여기서의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를 내포했다. 단체명을 “of Women”이 아니라 “for Women”으로 선택한 것은 여성권을 향상시키는 (여성과 남성이 포괄된) 조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었다. 전국여성연합은 성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을 위해 투쟁했으나 여성과 남성의 동반자적 관계를 인정하고 출발했다(223쪽).

이 책 덕분에 소수 지식인과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사이에서나 공유되었을 여성문제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베티 프리단은 소수 페미니스트들의 경계 밖에 있는 여성들에게 말 걸기를 했고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는 앞길을 향한 큰 그림이나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개인의 마음에 다가가 그들로 하여금 자각하고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자극하여 그들을 시민으로서 새로운 길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258쪽).

***한 챕터만 읽는다면 저자의 ‘에필로그’를 권합니다.

글쓴이|김진희

한림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빙햄턴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위논문은 〈1920~1930년대 뉴욕 주의 노동법과 노동정책〉(1999).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문화영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7~18년 U. C. 산타바바라대학교 ‘일, 노동,

민주주의 연구소’의 비지팅 펠로우로, 노동자센터worker center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 《프랭클린 루즈벨트》(2012)가 있고, 역서로 존 듀이의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대공황기 미국인의 정체성과 문화 형성〉,

〈1938년 뉴딜 공정노동기준법 최저임금제 도입의 의미〉 외 다수가 있다. 미국 뉴딜

질서의 생성과 쇠퇴, 최저임금/생활임금 관련 역사적 논쟁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집필

중이다.

차례

프롤로그

Ⅰ부 베티 골드스타인에서 베티 프리단으로

1장 유대계 미국인 여성 베티 골드스타인

2장 대학 시절

3장 노동신문 기자

4장 냉전시대 교외의 가정주부

Ⅱ부 《여성의 신비》 읽기

5장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

6장 ‘여성의 신비’의 실체에 접근하기

7장 ‘여성의 신비’의 도구들

8장 ‘여성의 신비’의 현상들

Ⅲ부 《여성의 신비》의 파장

9장 《여성의 신비》 해체하기

10장 《여성의 신비》, 그 이후


온기동 기자 16990@g-enews.com